
“너 T야?”
한동안 한국 사회에서 이런 물음이 유행했다. 여기서 말하는 ‘T’는 성격유형검사인 엠비티아이(MBTI)에서의 T(사고형)를 가리킨다. 이 말은 ‘공감 능력이 없다’는 뜻으로 쓰였지만(아직도 이렇게 쓰이는 경우가 많다), 실제 엠비티아이에서 F(감정형)와 T를 가르는 것은 공감 능력 여부가 아니라 상황을 판단하는 관점의 차이다. T가 공감 능력이 없는 게 아니다. 다만 T의 관점으로 공감할 뿐이다. 그러니까, “너 T야?”라는 물음은 F의 관점이 투영된 규정인 것이다.
“안녕, 주말 잘 보냈어?”
이 간단한 물음에도 관점은 있다. 이 질문은 정말 주말을 잘 보냈는지, 잘 보냈다면 어떻게 잘 보냈는지, 잘 보내지 못했다면 무엇 때문인지 등을 묻는 게 아니다. 주말을 지낸 뒤 직장에서, 학교에서 처음 본 동료들에게 건네는 ‘인사말’이다. 여러 문화권에서 공유해온 일종의 ‘사회적 규칙’이지만, ‘자폐인’(자폐스펙트럼장애를 진단받은 사람)의 관점에선 알기 어려운 규칙이다. ‘비자폐인’ 사이에서만 통용되는 규칙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자폐인이 이 물음에 대답하고 싶지 않은 건 아니다. ‘나에겐 너무 어려운 스몰토크’(임슬애 옮김, 윌북 펴냄)의 지은이 피트 웜비는 자폐인 처지에서 왜 이 인사에 답하기 어려운지를 이야기해준다. 남들과 똑같다고 생각하고 34년을 살다가 자폐스펙트럼장애를 진단받은 지은이는 책을 통해 비자폐인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를 유쾌하게 풀어낸다.
이를테면 그는 비자폐인의 ‘스몰토크’를 “규칙 안내서를 본능적으로 이해한 비행기 조종사가 자동 주행 시스템에 일을 맡긴 것”에 비유하면서, 자폐인의 대화는 “자동 조종장치도 없고 훈련도 거의 받지 못한 채 안개 속에서 대도시를 통과하는 항공기를 조종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비자폐인과는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른 자폐인으로서 비자폐인과 나누는 대화가 이렇게 느껴지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럼에도 자폐인의 취미와 일, 연애, 우정 등 모든 일상생활은 비자폐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지은이는 300쪽에 걸쳐 설명한다. 자폐인도 공감력을 발휘하고, 연애하고, 우정을 나누고, 취미를 즐긴다. 그 방식이 비자폐인과 다를 뿐이다. 지은이는 비자폐인이 대본을 쓰고 연기하는 방식으로 자폐인을 재현하면서 비자폐인의 ‘저질화된 고정관념’을 만들어냈다고 지적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자폐인인 레이먼드 배빗(더스틴 호프만)이 연애에도 성에도 관심이 없는 것처럼 묘사된 영화 ‘레인맨’이다.
지은이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건 자폐인과 비자폐인의 차이가 엠비티아이 E(외향형)와 I(내향형)를 나누는 이야기처럼 일상적으로 다뤄지는 사회다. 그곳에선 자폐인에게 손을 내밀며 인사하는 비자폐인에게 이런 대답이 돌아올 것이다. “아, 악수는 생략해도 될까요? 있죠, 제가 자폐인이라서.” 300쪽, 1만8800원.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우리는 작가를 출판합니다
지크프리트 운젤트 지음, 한미희 옮김, 유유 펴냄, 3만3천원
책은 상품일까, 작품일까. 출판인이 머리를 쥐어뜯는 이 질문에 길을 제시하는 책. 헤르만 헤세부터 브레히트, 아도르노, 베냐민 같은 사상가, 하버마스와 페터 한트케의 저서까지 양서를 출판해온 ‘독일 지성의 광장’ 주르캄프(주어캄프)의 2대 출판인인 저자가 주르캄프 특유의 출판 철학을 담았다.

돌봄의 목소리들
N인분, 돌봄과 미래, 빠띠 엮음, 이매진 펴냄, 1만7천원
담배 말고 돌봄을 주는 ‘돌봄 편의점’이 있다면? 돌보는 사람들 100명이 모여 돌봄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모든 정치인이 돌봄을 말하고 돌봄 정책·예산은 늘어나는데 돌보는 삶들은 왜 여전히 힘겨울까? 100명의 목소리에서 돌봄의 과거를 보고, 현재를 듣고, 미래를 말했다.

종말이 차오르는 중입니다
서윤빈 지음, 열림원 펴냄, 1만7천원
힙합 같은 글을 쓰고자 하며 유머를 잃지 않기 위해 늘 수련한다는 과학소설가 서윤빈이 쓴 첫 연작소설집. 유례없는 폭우, 기록적인 폭염 등 기후위기로 인한 사건과 재난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썼다. 종말은 먼 미래의 파국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밀려드는 파도처럼 차오르는 중이다.

헬터 스켈터
빈센트 부글리오시·커트 젠트리 지음, 김현우 옮김, 글항아리 펴냄, 5만5천원
1969년 8월8일. 이틀 밤에 걸쳐 일어난 테이트-라비앙카 살인 사건과 이후 1971년 1월까지 이어진 수사, 법정 공방, 최종 판결까지를 사건 담당 검사 빈센트 부글리오시가 정확하고 굳건하게 썼다. 범죄의 디테일이 보여주는 당시 미국 사회의 솔직하고 세밀한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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