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23일 ‘국립 20세기(근대) 미술관을 원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연 3차 토론회엔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참석해 인사말을 했다. 이 모임은 2021년 4월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의 유족이 2만3천여 점의 미술품과 문화유산을 기증한 직후 결성돼 현재까지 400여명의 미술계 인사들이 참여했다.
이날 유 장관은 “조금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우리가 이제는 그런 부분(국립근대미술관)이 필요할 때가 됐다. 이건희 미술관(기증관) 설계 공모가 나간 상태고, 이런 와중에 근대미술관의 필요성에 대해서 미술계에서 많은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의견을 주면 저희도 앞으로 잘 받들어 모시겠다”고 말했다. 이날 유 장관의 참석과 발언은 국립이건희기증관과 국립근대미술관 문제와 관련해 의미심장한 변화처럼 보였다. 2021년 4월 이건희 회장의 미술품 기증 직후부터 서울의 미술계는 근대미술관 건립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문재인 정부는 자체 위원회를 꾸려 논의한 뒤 2021년 7월 ‘이건희기증관’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미술계의 요구와 크게 달랐다. 이건희 회장의 기증품 가운데 지방 미술관에 기증한 102점을 뺀 2만3181점을 모두 이건희기증관에 소장, 전시하겠다는 것이었다. 여기엔 책과 도자기, 역사 유물, 글씨, 그림, 조각, 사진, 동영상 등 다양한 소장품이 포함됐다. 애초 이건희 회장 유족은 시대와 유형에 따라 국립중앙박물관(2만1693점)과 국립현대미술관(1488점)으로 나눠 기증했다. 그런데, 굳이 이것을 한군데 모으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문체부 장관으로 이건희기증관 사업을 결정한 황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당시 위원회에서 미국 뉴욕의 메트로폴리탄박물관처럼 종합박물관으로 가는 것이 시너지가 난다고 판단했다. 또 기증자를 기념하는 별도의 시설도 필요하다고 했다. 물론 근대미술관 이야기도 나왔는데, 근대-현대 미술관을 나눌지에 대해, 또 그 시기 구분에 대해 미술계의 의견이 갈렸다”고 해명했다.
당시 국립현대미술관장을 맡고 있던 윤범모 미술평론가는 “당시 나도 반대했다. 기증자가 기증품의 성격을 고려해서 박물관과 미술관으로 나눠 기증했는데, 그것을 다시 합치는 것은 맞지 않는다. 기증자를 예우하려는 것이지만, 오히려 기증자의 뜻을 훼손했다. 또 이건희 기증품은 시대와 유형이 다양한데, 한 기관에서 그것을 모두 다루는 것은 매우 비효율적”이라고 말했다.
서울의 미술계는 ‘국립근대미술관’ 건립을 일관되게 요구하면서 2021년 5월 첫 토론회를 열었고, 2024년 1월과 7월 2~3차 토론회를 열어 내용을 더 구체화했다. 이들의 핵심 주장은 몇 가지로 정리된다.
먼저 현재 한국에 시급히 필요한 문화시설은 국립근대미술관이라는 점이다. 한국은 1969년 처음 국립미술관을 설립할 때부터 ‘국립근대미술관’이 아닌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시작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까지의 미술을 건너뛰었다. 부모가 없이 자녀가 태어난 꼴이다. 1955년 당시 가장 유력한 미술평론가이자 뒤에 국립현대미술관장을 지낸 이경성이 ‘조선일보’에 쓴 글에서 요구한 것도 명확히 ‘국립근대미술관’이었다. 그러나 미술계의 생각과 달리 ‘국립현대미술관’부터 만들어졌다.
이로 인해 한국에선 근대 미술(19세기 말~20세기 중후반) 작품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미술관이 없다. 대표적 근대 화가인 이중섭과 박수근, 김환기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볼 수 없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이 근대미술관 노릇을 하지만, 규모가 작고 상설 전시가 없다. 어쩌다 덕수궁관에서 근대 미술전이 열리면 관람객이 미어터진다. 유럽의 경우, 영국 런던의 테이트브리튼, 프랑스 파리의 오르세, 독일 뮌헨의 노이에 피나코테크에 가면 언제든 풍부한 근대 미술 작품을 볼 수 있다.
왜 이렇게 됐을까? 근대에 대한 부정적인 기억이 원인 중 하나다. 한국의 근대는 강요된 개항과 식민지, 전쟁, 분단, 군부독재 시대에 걸쳐 있다. 미술가들에게도 친일행위 논란이 따라붙었고, 미술계도 좌우와 남북으로 갈렸으며, 그 과정에서 많은 작품이 흩어지고 사라졌다. 혼란 속에서 미술도 안정적으로 발전할 수 없었다. 최열 미술사가는 “근대는 국민국가의 정체성이 만들어지는 시기였는데, 우리는 식민지와 전쟁, 분단을 겪었다. 물론 고통스러운 시대였지만, 좋은 화가들과 작품들도 많이 나왔다. 근대미술관이 생긴다면 급변한 시대의 다양한 측면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중앙정부가 보유한 근대 미술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2천여 점, 이건희 기증품 1500여 점 등 3500점가량이다.
둘째는 이건희기증관의 종합박물관 형태가 점점 분화 , 전문화하는 미술관의 흐름과는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 프랑스 파리의 경우 애초 루브르에 집중돼 있던 미술 작품들을 그 시대와 주제에 따라 오르세 ( 근대 ), 퐁피두센터 ( 현대 ), 팔레드도쿄 ( 동시대 ), 기메 ( 아시아 ), 케브랑리 ( 아프리카 , 아메리카 , 오세아니아 ) 등 다양한 미술관과 박물관으로 나눴다. 영국도 국립미술관에 있던 작품들을 테이트브리튼 ( 근대 ), 테이트모던 ( 현대 ) 으로 차례로 분산했다 .
심지어 유럽에선 고대·중세-근대-현대 미술만 나누는 것이 아니라, 현대 미술조차 현대-동시대로 나누기도 한다. 프랑스 파리의 퐁피두센터-팔레드도쿄, 독일 뮌헨의 피나코테크 데어 모데르네-하우스 데어 쿤스트가 그런 사례다. 그러면 시대에 따른 미술관은 고대·중세-근대-현대-동시대 등 4단계가 된다. 반면, 이건희기증관은 고대부터 동시대까지 모두 한자리에 모으겠다는 것이다.
정준모 국립현대미술관 전 학예연구실장은 “근현대 미술의 범주가 광범위해서 과거의 종합박물관에서 특정 시기와 장르에 집중하는 미술관으로 바뀌고 있다. 시기에 따라 20세기, 21세기 미술관으로 부르기도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20세기(근대) 미술관이다. 20세기 미술관은 역사 속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을 통합하고 치유하는 공간도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셋째로 국립근대미술관 신설은 쏟아지는 미술 수요에도 잘 맞는다. 2021년 이건희기증관의 유치는 무려 40여 개 도시가 신청했다. 현재 대전과 대구, 진주도 국립미술관 건립을 추진 중이며, 광주도 국립미술관 건립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20세기 미술가들의 작품도 경매나 기증을 통해 점점 더 많이 세상에 나오고 있다. 미술계의 연구 인력도 매년 꾸준히 배출되고 있다.
현재 문체부가 추진 중인 이건희기증관의 성격을 ‘근대미술관’으로 전환하면, 전통 미술품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근현대 미술품은 국립현대미술관과 신설되는 국립근대미술관으로 가게 된다. 그런데 이 정도 변경을 하려면 적어도 유인촌 문체부 장관이나 그 이상의 결단이 필요하다. 이건희기증관은 2021년 결정된 뒤 3년 동안 진행돼왔기 때문이다.
국립근대미술관의 입지와 관련해선 현재 이건희기증관이 추진돼온 송현공원이 1순위로 꼽힌다. 이 모임에선 송현공원 외에도 정부서울청사, 용산기지, 청와대 관련 부지 등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이미 만들어진 4개의 국립현대미술관, 대전, 대구, 진주에서 추진 중인 국립미술관과 연계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그러나 유인촌 장관의 적극적 의사 표명과 달리 현재까지 문체부의 공식 입장엔 아무런 변화가 없다. 문체부의 강수상 대변인은 “이건희기증관을 국립근대미술관으로 전환하는 문제에 대해 아직 검토한 바 없다. 현재로서는 이건희기증관으로 그대로 진행한다”고 말했다.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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