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미의 세포들> <조조코믹스> 이동건 작가의 이야기가 앞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먹고 꿈꾸고 사랑하라, 세포여’ (https://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55523.html)◆
―세포들을 보면 아기 같기도 하고 스머프 같기도 합니다. 평소 즐겨 보는 작품을 소개해주세요.
“<드래곤볼>의 도리야마 아키라, <러프>의 아다치 미쓰루, 데즈카 오사무, <땡땡의 모험>의 에르제, <도라에몽>의 후지코 F 후지오 작가님들의 작화를 무척 좋아합니다. 물론 작품도 좋아하고요. 이 작품들의 그림을 보면 지금의 제 그림 스타일이 어디서 영향을 받았는지 쉽게 아실 것 같아요. 그림체가 풍부하지 못했기 때문에 주인공 유미와 최대한 다르게 그리려고 노력한 결과가 지금의 세포 캐릭터입니다. 사실 비율만 다를 뿐 이목구비는 거의 비슷해요.
되도록 컬러를 적게 쓰는 게 만화에서 좋은 효과를 준다고 믿고 있었어요. 단순한 컬러는 쉽게 사람들이 기억해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세포는 파란색으로 유미는 노란색으로, 그렇게 컬러로 기억할 수 있도록 말이죠. 그림 스타일을 확정해두지는 않아요. 지금도 <조조코믹스> 초반과 후반은 그림체가 변하고 있거든요. 그저 좀더 잘 그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감정 표현을 더 디테일하게 할 수 있게 그리고 좀더 다양한 인물들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가장 많이 보는 콘텐츠는 영화입니다. 최애 취미생활이자 연재 중에 그나마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머리에 떡볶이를 달고 다른 세포들보다 압도적으로 큰, ‘식욕’을 상징하는 출출이세포의 탄생 과정이 궁금합니다.
“원래는 다들 똑같은 크기에 비슷한 모습이었지만 식욕을 담당하는 세포를 크게 그려 넣는 순간 아내가 아주 재밌어했습니다. 누가 봐도 직관적으로 이 캐릭터를 알 수 있었던 거죠. 왠지 자신의 모습과 비슷하게 느꼈다면 더 성공이고요. 머리 위 떡꼬치는 이 세포의 정체성을 보여주기 위해 다소 급하고 단순하게 붙여둔 것입니다. 생각 없이 디자인한 것치고는 귀엽게 보여서 다행이죠.”
―유미, 바비, 웅, 순록 등 캐릭터 이름은 어떻게 정했나요. 정하는 방식이 있나요.
“여자 주인공은 평범한 인물을 그릴 것이기에 최대한 흔한 걸 하지만 제목에 들어갈 이름이니까 (부르기 편하도록) 받침이 없는 쪽으로 찾다가 선택한 이름이 유미였습니다. 생각보다 빠르게 찾았어요. 웅이는 어딘지 곰과 같은 느낌을 떠올려서 웅이였고 특이해서 기억에 쉽게 남길 수 있도록 일부러 구씨 성을 붙였어요. 세련된 도시 느낌의 바비는 영어 이름을 붙였고, 순록이는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느낌을 찾으며 떠올린 이름입니다. 생각보다 작명에 고심하는 편입니다. 독자들은 늘 친근하게 인물들 이름을 불러주며 댓글을 달거든요.”
―연재 초기(2015년) 유미를 1983년생 다소 나이 든 여성처럼 묘사했다가 이후 그 설정을 지우지 않았나 짐작했습니다. 작품을 그리면서 이성에 대한 이해도가 더 높아진 게 아닐까, 작가도 성장하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맞아요. 다만 이성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진 것이 아니라 캐릭터를 만드는 이해도가 높아졌다고 생각합니다. 풀어내고 싶은 소재가 있는데 예민한 소재라면 주저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남자든 여자든)이 나이가 들어 우울해하는 구간을 묘사하는 것은 아주 좋은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쓸쓸함과 과거에 대한 그리움 혹은 잃어버린 자신감 등을 표현하기에 너무나 좋지 않나요? 다만 밈(meme)처럼 가벼운 공감을 위해 우스꽝스러운 이미지만 소비한다면 그건 캐릭터로서 아무런 의미가 없죠. 정작 제가 포인트를 잡은 것은 나이 먹는 것에 대한 쓸쓸함, 그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인데 둘은 전혀 다르죠. 과거에는 어떻게 풀어낼지 몰라서 그러한 묘사를 피했다면 지금은 어떻게 풀어야 할지 알게 된 것이라고 느낍니다. 최근 <조조코믹스> 시즌3를 통해서 조지나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진행했는데 제가 나이 들어감을 표현하고 싶은 건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조조코믹스>에서 게임회사 기획총괄인 35살 조지나는 나이 들어감에 민감한 인물이다. 이동건 작가의 씁쓸하면서 유쾌하고 현실적인 설정에 많은 독자가 공감하는 캐릭터다. 프로필사진으로 꽃 사진을 찍다가 ‘잠깐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조지나! 우리 엄마처럼 행동하잖아! 어뜨게 나 진짜 늙었나봐ㅠㅠ’라고 독백하며 화들짝 놀란다. 회식 자리에서 어울리던 후배들의 ‘안 가시나’라는 속마음을 읽어내는 ‘초능력’을 갖고 있다. 그러면서 ‘한때는 내가 저런 자리의 주인공이었는데요ㅠㅠ 나는 늙어가고 있다. 아무리 관리하고 생난리를 쳐도 그건 막을 수가 없는 거지’라며 체념한다.
―캐릭터 설정에서 후회하는 점은 없을까요.
“장기 연재를 했던 작품이라서 대부분은 즉흥적이고 라이브하게 진행된 만화였습니다. 심지어 작가 또한 경험이 많이 부족했고요. 그래서 아쉬운 부분이 정말 많습니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바비 캐릭터를 어딘가 의심스러운 인물로 표현할 수는 없었을까. 왜 완벽하게만 그리려고 했을까. 상대방의 단점은 마이너스로만 작용하지 않고 더 많은 서사와 감정을 끌어낼 수 있는데 완벽이라는 단어를 그 당시의 저는 전혀 잘못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루비를 보면 알 수 있죠. 미운 모습을 실컷 보여준 뒤 그렇지 않은 면을 드러내는 순간 더 러블리하게 느껴져요. 단점을 드러내지 않은 사람이 매력적으로 보일 리가 없죠.”
―20∼30대 독자의 호응을 보면서 젠더 감수성이 높은 작가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제가 특별히 고민하지 않고 살기에 젠더 감수성이라는 단어에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가끔은 뉘앙스와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질문에 답을 강요하는 것 같아 불편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게 보였다면 다행입니다. 저는 어쩌면 그런 감수성을 가진 사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설레는 만남과 담담한 이별을 보면서 작가 개인 경험이 얼마나 반영됐을지 궁금했습니다. 작가 경험을 어떻게 작품에 반영해야 할지 <유미의 세포들>을 보고 배우고 싶은 후배 웹툰 작가들에게 조언해줄 수 있을까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경험인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섬세한 감정을 표현할 때는 분명 제가 느꼈던 감정을 토대로 작업했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경험해보지 않은 감정을 이야기로 만들지 못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겪지 않아도 왠지 공감할 수 있는 게 있잖아요. ‘아… 내가 겪어보지는 않았지만, 그 마음 알 것 같아’라고 할 때와 같은. 그렇게 인물을 만들고 빙의되어 이야기를 써나가는 쪽이 저는 쉬웠어요.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길게 답했지만 결국 캐릭터에 몰입하라는 말 같기도 하네요.”
―후속인 <조조코믹스>가 왜 조씨들이 등장하는 ‘조조’가 됐는지 궁금합니다. <유미의 세포들>과 비교해 어느 쪽을 더 선호하나요.
“조조라는 단어가 너무 귀여웠습니다. 후보로는 호호도 있었지만 조조만큼 다양한 이름을 만들기엔 한계가 있어 보였어요. 다양한 인물들이 나오는 옴니버스 작품을 기획하여 만든 것이라 수많은 인물을 만들어볼 수 있어서 좋습니다. 다양한 모습의 연애와 관계를 그릴 수 있어서도 좋고요. 저는 긴 호흡보다는 짧은 이야기를 선호하는 편입니다. 보는 것도 만드는 것도요. 그런 점에서 제가 하고자 하는 이상적인 작품에 가깝습니다. <유미의 세포들>보다 <조조코믹스> 쪽을 훨씬 더 선호합니다. 저는 호흡이 짧은 일상적인 현대물(로맨스로 단정하지 않겠습니다)을 계속해서 그려내고 싶습니다. 제가 즐거워하며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조조코믹스> 속 캐릭터 간의 케미가 흥미진진합니다. 스토리 전개에서 특별히 신경 쓰는 노하우가 있나요.
“절대로 안 사귈 것 같은 어떤 두 사람의 연애 소식을 듣는다면 정말 호기심이 발동할 것 같아요. 어떻게 만났는지 왜 둘이 가까워졌는지 등등. 이야기는 늘 그런 단순한 호기심에서 출발합니다. 캐릭터에 충분한 서사와 성격이 부여되면 행동과 대사는 쉽게 나오는 것 같습니다. 그다음부터는 어떻게 행동할지 따라가면 되니까요.
<유미의 세포들>에서 유미는 자신의 일순위가 ‘구웅’(남자친구)에서 ‘유미’(자신)로 바뀌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이동건 작가 역시 “작품 연재 초기 일순위였던 ‘원고’가 후반기엔 바뀌었다”고 돌이켰다. “당연히 일순위니까 무빙건(이동건 작가의 별명, 이름 앞자 ‘이동’을 ‘무빙’(moving)으로 음차한 표현)의 24시간 중 15시간을 원고에 내줍니다. 거기에 잠잘 시간을 빼면 남는 게 없지요. 하지만 유미처럼 판사세포(오직 유미를 위해서 편파적인 판결을 하는 세포)를 보유한 뒤 <유미의 세포들> 후반부에는 출퇴근 시간을 만들어 작업했고, 아프면 쉴 줄도 압니다. 누군가에겐 너무나 당연한 이것을 <유미의 세포들>을 연재하면서 배우게 됐습니다.”(제511화 ‘후기’ 편)
이동건 작가에게 일과를 물었다. “아침 8시에 일어납니다. 빠르게 준비하고 9시에 맞춰 근처 작업실로 가서 작업을 시작해 오후 5시(늦어지면 6시)까지 작업하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집에 오면 가족들과 저녁을 먹고 아이 숙제를 봐주고 같이 닌텐도게임이나 보드게임을 하다가 9시에 책을 읽어주며 재웁니다. 10시부터 12시까지 추가 작업을 합니다. 이때는 주로 최종적인 원고 조립(대사 수정, 효과를 넣는 작업)을 합니다. 집중을 많이 해야 해서 제가 굉장히 싫어하는 시간입니다. 12시 넘어서 잠을 자는 편입니다. 평일에는 다 이런 패턴이며 주말에는 밤 10시부터 12시까지만 작업합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이렇게 들으면 제가 굉장히 가정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런 것은 아니고 그저 남들 일하는 시간에 일하고 남들 쉴 때 저도 쉬기 위해서입니다. 여름휴가 시즌에 아빠가 일하느라 우리 가족만 어디 놀러 못 가는 것도 서글픈 일이고 남들 일하는 비시즌에 텅 빈 휴양지에 있는 것도 썩 즐거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어찌 보면 ‘당연한 것들’을 새롭게 배움으로써 유미도 이동건 작가도 그리고 독자들도 한 뼘 더 성장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한겨레21이 사랑한 웹툰 작가’ 21명을 인터뷰한 ‘21 라이터스 ④’는 한겨레 네이버스토어에서 낱권 구입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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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인생> 2011년 9월~2013년 4월 네이버웹툰에 연재.
소소한 일상 속에 녹아든 씁쓸하지만 달콤한 이야기를 잡아낸 옴니버스식 웹툰.
<별을 부탁해> 2014년 1~2월 네이버웹툰에 연재.
서툰 딸바보 아빠의 에피소드.
<유미의 세포들> 2014년 4월~2020년 11월 네이버웹툰에 연재.
2015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주관하는 ‘오늘의 우리만화상’, 2018년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 만화 부문 대통령상’ 수상. 30대 초반 직장인 여성 유미의 평범한 연애와 일상을 ‘유미의 세포들’을 통해 표현한 작품.
<조조코믹스> 2021년 7월~현재까지 네이버웹툰 연재 중.
자신을 불편하게 한 사람들을 ‘아무도 모르게’ 갚아주는 허당기 다분한 조쉬의 직장생활을 그린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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