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20대 끝마무리부터 지금 남편을 만나 결혼하기까지 함께한 작품이었어요. 덕분에 너무 행복했어요.”(검깨미) “유미와 함께 일과 인간관계 등 다방면으로 성장하면서 비슷한 상황이 많아 공감하고 위로받았어요.”(별빛이 내린다) “‘내 이야기 남자 주인공은 없다. 주인공은 나 혼자다.’(제194화에서 게시판세포가 유미에게 한 말) 얼마 후면 30대를 맞는 저에게 이처럼 큰 힘이 되는 말이 또 있을까 싶네요.”(크리수달)
2015년 4월 연재를 시작한 웹툰 <유미의 세포들>의 ‘엔딩’ 편(제510화·2020년 10월9일)에 달린 베스트 댓글들이다. 5년7개월 동안 연재된 데 이어 영화·드라마 등 창작물과 다양한 캐릭터 상품, 전시회 등으로 번져나가고 있는 생명력의 저변에는 이런 깊은 공감들이 버티고 있다. 조용히 듣기보다는 제대로 반응하고 추임새를 넣는 ‘청중’이 소리꾼·고수(북 치는 사람) 못지않은 판소리 장르의 주인공인 것처럼, 독자들의 반응·공감을 담은 댓글은 웹툰이라는 장르의 ‘프라임세포’(세포 중 가장 강력한 세포) 중 하나임이 틀림없다. 2024년 5월 초 두 차례에 걸쳐 <유미의 세포들>을 쓰고 그린 이동건 작가와 서면으로 만났다.
―<유미의 세포들>로 많은 대중과 공감대를 형성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영감을 주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장르와 상관없이 인물의 감정에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곧 이야기를 만드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의미냐고 물으시니 답하기 어렵네요.(웃음) 가상의 상황에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지금 제가 하는 작업의 목적입니다. 더 나아가서 영감을 받는다는 건 독자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영역인 것 같아요. 저도 어떤 곡을 듣고 있으면 단순한 가사임에도 제 경험이 오버랩되면서 터질 것 같은 감정을 일어나기도 하거든요. 그리고 그 곡이 의도하지 않은 영감을 받기도 하죠. 제 작품을 통해 그런 영감을 받았다면 괜히 뿌듯한 느낌입니다.”
이동건 작가는 2020년 11월13일 마지막 화(제511화 ‘후기’ 편)에서 ‘저는 엔딩 이후의 댓글, SNS에 올라온 독자들의 소감을 읽고 몹시 찡했습니다. <유미의 세포들>은 저에게도 많은 변화를 갖게 해준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 다른 사람의 세포에게 도움을 받은 적도 있습니다. (…) <유미의 세포들>에겐 컷 댓글이 존재하기 때문에 설명하는 세포가 등판해주었습니다. 부족한 작가를 대신해 설명해준 네오(독자 필명)와 수많은 설명세포들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라고 했다.
―작품을 제작하면서 독자와 ‘이런 점을 공감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점이 있을까요.
“선택의 자유를 가질 때 진정한 자유를 느낀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염두에 두고 이야기가 기획된 것은 아니지만 작가 본인의 이런 생각이 많이 녹아든 것입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오직 내가 판단하고 선택하는 과정을 외부에서 볼 땐 별거 아니겠지만 내부에서는 얼마나 많은 투쟁이 일어났을까 생각하면 굉장히 재미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원하는 것을 자유롭게 선택했을 때의 짜릿함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만화에 ‘운명은 없어, 선택만 있을 뿐’이라는 대사가 있는데 바로 그 선택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겪는 고민을 공감하기 바랐던 것 같습니다.”
<유미의 세포들>이 남긴 명문구 중 하나로 꼽히는 “운명은 없어 선택만 있을 뿐이야, 네 마음대로 하면 돼”는 제61화 ‘게시판 관리자’ 편에 등장한다. 새로운 만남을 시작하고 싶지만 한편으로 또 다른 사람에 대한 감정을 정리하지 못한 유미에게 ‘게시판 관리자 세포’가 한 말이다. 게시판 관리자 세포는 여러 세포가 하루 동안 자유롭게 의견을 올린 게시판을 관리하는 세포다. 쓸데없는 의견은 휴지통에 버리고 중요한 정보는 위쪽으로 잘 보이게 옮기는 일을 한다.
―본격적으로 작품에 대해 말씀 나누겠습니다. <유미의 세포들> 장르는 로맨스 같으면서도 성장 드라마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인간의 마음을 들여다본다는 점에서 심리·철학으로도 분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비밀스러운 유미의 마음속은 지금 무슨 생각 중일까?’로 출발해 ‘그 감정이 지금 어떻게 작동하고 사용되는가’로 확장해가며 이야기를 써갔던 작품입니다. (작품 활동을 위한) 제 관심 분야는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이며 이것을 어떻게 하면 만화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작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일상 안에 포함된 로맨스가 이 만화의 장르처럼 보일 뿐이지만 고민과 선택 그리고 변화하는 모습이 늘 주제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무거워 보이지만 실제로 읽어보면 가볍고 유쾌한 작품입니다. 그런 의도로 만들었고요. 장르를 어떻게 불러도 상관없지만 편의상 로맨스라고 해두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개성이 뚜렷한 세포들이 사회를 이루고 그 속에서 한 사람의 복잡한 생각·정서·행동이 결정된다는 발상은 참 독창적인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의 말·행동을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죠. 작품을 보면서 우리 몸속 세포들의 역학관계·사정·경험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감정이나 욕망도 순위가 있죠. 물론 때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무리 배고파도 잠을 이길 수 없는 사람도 있고 일보다는 사랑이 최우선순위인 사람도 있고. 말씀하신 것처럼 겪어온 경험과 환경에 따라 사람들은 조금씩 다르다는 것도 살면서 느낀 것들이라 이런 정보가 섞여서 세포들을 만들어냈습니다. 세포가 캐릭터라는 설정은 데뷔작 <달콤한 인생>에 이와 비슷한 단편이 있었습니다. 밤에 야식을 먹고 싶어 하는 주인공의 몸속 세포들이 서로 싸우는 이야기인데, 결국은 배고픔이 이긴다는 그런 스토리였던 것 같은데. 그 이야기가 확장된 것이기도 합니다.”
<달콤한 인생>의 제54화 ‘잠 못 이루는 밤’ 편(2012년 4월2일)에는 월요일 출근을 앞두고 잠을 이루지 못하는 한 직장인 여성이 결국 야식을 먹고 밤을 새우게 되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때 정말 최악의 위기가 찾아오더라고요. 배고파. 근데 저는 밤에 라면 먹고 뭐 그런 타입은 아녜요. 근데 의지가 좀 약해요. 그래서 아예 날을 새기로 했죠. 제가 풋내기 사회초년생이 아니기에 날 새는 건 자신 있었거든요. 이래 봬도 6년차 프로 직장인이잖아요?” <유미의 세포들> 세계관으로 보면, 출출이세포와 이성세포, 수면세포가 격한 갈등을 벌인 장면으로 해석할 수 있다.
―유미가 바비와 헤어진 뒤 사랑세포가 분노에 차서 이글거리는 모습에 유미가 직접 나타나 사랑세포를 다독입니다. 눈물이 나며 깊은 여운을 느꼈다는 독자가 많습니다. 2024년 4월3일 개봉한 영화 <유미의 세포들 더 무비>에서도 이 장면은 클라이맥스 대목에 차용됐습니다. 의미를 설명해주세요.
“나 자신도 갈팡질팡할 때는 내 다짐을 항상 외부에 알렸던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나 이제부터 ○○할 거야’ ‘나는 앞으로 ○○하기로 했어’ 마치 ‘나를 더 독려해줘’라는 느낌처럼? 하지만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강력한 선택은 늘 나의 내부에 말하는 것 같습니다. 유미가 세포마을에 들어가서 세포들을 만나는 장면은 그런 느낌을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무겁고 진중한 결심, 굳이 누군가에게 말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결심을요.”
―유미와 바비가 짧게 재결합한 뒤 바비의 3년 뒤 모습이 속도감 있게 전개됩니다. 몰입감이 상당하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이 전개를 구상한 의도는 무엇인가요.
“연출이라기보다는 스킵에 가깝습니다. 필요한 이야기이지만 30컷 만화에 많은 부분을 할애해줄 수 없기에 저는 늘 빠르게 넘겨버리곤 합니다.(웃음)”
―사람과 사람의 만남 속 감정선을 깊이 있게 또 재미있게 그려낸 것 같습니다. 어디서 영감을 받으셨나요.
“때로는 리얼하게 표현해야 할 때도 있고 장난스럽고 가볍게 표현해야 할 때가 있다는 걸 느끼는데 곰 모드(다른 사람의 말을 서로 불편하지 않게 못 알아듣고 싶을 때 하는 변신 모드. 유미와 연애를 시작한 구웅에게 서새이가 관심을 보이자 구웅은 곰 모드로 대처한다)의 경우가 그런 것 같아요. 해당 편에서 원하는 것은 ‘구웅이 참 처신을 잘했네’인데 자칫 표현이 잘못되면 서새이가 안쓰럽게 느껴질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최대한 유쾌하고 가벼운 느낌으로 만화적인 표현을 적극적으로 썼던 것 같아요. 영감을 받았다기보다는 늘 보는 게 만화이기 때문에 저는 이런 식의 생각을 일상에서도 자주 합니다.”
◆ <유미의 세포들><조조코믹스> 이동건 작가의 인터뷰는 다음 기사로 이어집니다. ‘출출이 세포는 어떻게 탄생했나’ (https://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55524.html)◆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유미의 세포들> 독자들에게 가장 논란이 됐던 장면 중 하나는 ‘바비’가 ‘다은’과 결혼해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사는 미래 모습을 그린 장면(제437화)이다. 떡볶이집 사장이자 유미의 남자친구인 바비가 아르바이트했던 다은에게 연애 감정을 느낀 것이 바비와 유미가 헤어진 계기가 됐다. 그런 바비를 왜 행복하게 그렸느냐를 두고 2019년 11∼12월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다. 화가 난 독자들 반발이 거셌다. 해당 편에는 “<유미의 세포들> 보면서 위로받았는데 이번엔 상처받은 느낌이에요. 따뜻하게 그려줄 수 있는데 이렇게 아프게 날 서게 그려서 독자들 상처 주고 ‘이게 연애야’라고 굳이 알려주시는 건가요?”(gooo****) “누가 봐도 사귀는 사이에서 매너 없는 행동이 운명이었다고 정당화해주면서 둘의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는 게 어이없는 겁니다”(고쳤다메롱)라는 댓글이 큰 공감을 받았다.
이에 다음 편(제438화)에서 이동건 작가는 3년 뒤 작가로 성공한 유미가 방송에 나와 ‘지우고 싶은 순간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답하는 장면을 구성한다. 유미는 “첨부터 만나지 말았어야 했어라는 연애. 하지만 제가 너무 행복했던 기억들도 포함된 거라 바꿀 수 있어도 그냥 놔둘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그런 경험들이 도움되기도 했고요”라고 답한다. 이후에 “결말이 아픈 연애였어도 유미한테 소중한 추억이었으니까 결국 바비와의 연애에서의 교훈은 (…) 정말 유미와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유미에게 바비는 좋은 사람이 아니었던 거죠.”(왜들그래요) “좀 납득이 가기도 해요. 원래 현실에서도 만나는 사람마다 마지막 종착지일 거라며 연애하잖아요. (…) 배신감이 크긴 한데 바비도 결국 ‘전남친1’이었어요.” 등등 작품 전개를 이해하는 의견이 많아졌다. ‘운명은 없어, 선택만 있을 뿐’이라는 주제의식에서 나온 작품 전개였지만, 독자들의 유미에 대한 애정과 작가의 사려 깊은 대응 등이 돋보인 대목이었다.
<달콤한 인생> 2011년 9월~2013년 4월 네이버웹툰에 연재.
소소한 일상 속에 녹아든 씁쓸하지만 달콤한 이야기를 잡아낸 옴니버스식 웹툰.
<별을 부탁해> 2014년 1~2월 네이버웹툰에 연재.
서툰 딸바보 아빠의 에피소드.
<유미의 세포들> 2014년 4월~2020년 11월 네이버웹툰에 연재. 2015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주관하는 ‘오늘의 우리만화상’, 2018년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 만화 부문 대통령상’ 수상.
30대 초반 직장인 여성 유미의 평범한 연애와 일상을 ‘유미의 세포들’을 통해 표현한 작품.
<조조코믹스> 2021년 7월~현재까지 네이버웹툰 연재 중.
자신을 불편하게 한 사람들을 ‘아무도 모르게’ 갚아주는 허당기 다분한 조쉬의 직장생활을 그린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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