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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프로스트> 어쩌다 10년 연재? … 웹툰 작가 이종범 인터뷰

[21WRITERS 이종범①] 음악· 강의· 방송 등 다재다능 작가의 12년 연재 그 이후
등록 2024-05-25 09:51 수정 2024-05-31 07:59
웹툰 작가 이종범. 박승화 기자

웹툰 작가 이종범. 박승화 기자


2016년 이른 봄에 이종범 작가를 대학에서 처음 만났다. 화려한 언변을 가졌지만 겸손했고 예의가 발랐다. 당시 <닥터 프로스트> 시즌3을 완결하고 대학에 임용돼 교수로서 첫발을 내딛는 때였다. 그의 연구실은 과거부터 좋아해온 것과 현재 관심을 기울이는 것들로 채워졌고 이후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것들이 자리를 차지했다. 웹툰 작가 이종범의 이름을 각인시킨 <닥터 프로스트>를 완결하고,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잘해낼 줄 알며 늘 다음을 보고 있던 사람, 이종범 작가는 지금 무엇을 채우는 중일까? 이종범의 지금과 미래에 대하여, 그의 인생에서 뺄 수 없는 ‘만화’에 대하여 이야기 나눠봤다.

웹툰 작가에서 총괄프로듀서로

2021년에 <닥터 프로스트>를 완결하고 청강문화산업대학교에서 퇴직한 뒤 다양한 일을 해왔다.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나. “교수 직함을 내려놓고 스타트업 게임회사로 자리를 옮겼다가 현재는 제이큐코믹스(JQ comics)스튜디오의 총괄프로듀서(CCO)를 맡고 있다. 서울웹툰아카데미(SWA·Seoul Webtoon Academy)에서 강의도 한다. <닥터 프로스트> 완결 후 차기작 준비를 늘 하고 있어서 웹소설과 만화, 영화를 공부 삼아 보고 게임도 하며 지낸다.”

총괄프로듀서는 혼자 <닥터 프로스트>의 글과 작화를 모두 도맡아 만들던 웹툰 작가의 일과 비교했을 때 무엇이 다른가?

“웹툰 작가는 하나의 작품을 기획하고 스토리를 쓰고 콘티와 작화까지 만드는 창작자라면 총괄프로듀서(Chief Creative Officer)는 작품 하나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일을 종합하는 일이다. 웹툰으로 만들 좋은 원작을 고르고 원작자와 만나 웹툰으로 만들어질 수 있도록 조율하며 창작할 팀을 구성하기도 한다. 또 어떤 방향으로 만들면 좋을지 함께 회의하며 고민하는 창작 영역에서도 일한다. 프로듀싱하는 작품을 잘 알아야 하기 때문에 작년에는 5500화, 재작년엔 5200화 정도의 웹소설을 읽었다.”

<닥터 프로스트>를 2011년부터 2021년까지, 무려 10년 이상 연재했다. 시즌3과 시즌4 사이 공백이 길었기 때문이기도 한데 연재 기간이 10년이 될 거라고 예상했나.

“자기가 어느 정도 분량으로 어느 정도 길이의 작품을 할지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경험 쌓인 관록 있는 작가들만의 기술인 것 같다. 신인일 때는 자기 파악이 덜 된 상태여서 작품을 얼마나 연재하게 될지를 예측하기가 어려웠다. <닥터 프로스트>를 연재하는 과정에서 내가 진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을 알아버렸는데 완결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완결을 내고 싶진 않았다. 공백 기간이 길었던 건 잘 끝내야 한다는 부담이 생겨서다. 1년 정도 연재한 작품을 완결할 때는 예상과 달리 탐탁잖은 결말이 나타나도 다음에 잘하면 된다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5년간 연재한 작품이라면 부담이 커진다. 10년 연재하면 더하다. 독자를 데리고 10년간 패키지여행을 하며 이쪽저쪽을 가이드했는데 집에 돌아갈 시간에 잘못해버리면 10년 동안의 좋은 기억이 퇴색될 것 아닌가. 완결을 잘 내고 싶다는 부담감으로 고민하는 기간이 길었다.”

이종범 작가가 <닥터 프로스트>의 닥터 프로스트를 태블릿에 그리고 있다. 박승화 기자

이종범 작가가 <닥터 프로스트>의 닥터 프로스트를 태블릿에 그리고 있다. 박승화 기자


장기 연재의 사회적 책임과 부담

그런 부담을 느껴서인지는 몰라도 <닥터 프로스트>는 잘 완결됐다. 긴 연재 기간을 거쳐 완결한 후 어떤 생각이 들었나.

“아쉬움과 홀가분한 가운데 무서운 마음도 들었다. <닥터 프로스트>는 총 4개 시즌으로 완결했는데 시즌1과 2를 합쳐서 총 3개 시즌으로 구성해야 했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시즌1과 2는 만화 애호가로 살았던 20대 때 내 모습을 보는 것 같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들을 탐색하기도 하고 즐기며 만들었다. 시즌3은 만화가 지망생 시절의 고민이 담겨 있다. 지망생 시절에 왜 만화를 그리는지를 고민하고 만화가로서 취약하고 미성숙한 부분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 부분을 파고들면서 괴로워하던 그때의 내 모습이 많이 투영됐다. 시즌4에는 작가가 된 뒤 느낀 것이 반영됐는데 작가로서 사회에 좋은 영향을 주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 가장 하고 싶은 일이었음을 완결 뒤 깨달았다. 완결한 뒤에 다시는 만화를 그리고 싶지 않을까봐 무서웠다. 그토록 원하던 만화가가 됐고 하고 싶은 만화를 그리니 달콤하고 좋았는데 시즌4 연재할 땐 너무 고통스러웠다. 괴롭게 시즌4를 만들고 완결하니까 너무 행복하더라. 완결 후 한 달간 벼르던 것들을 하나씩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보니 이젠 다시 연재의 고통 속에 뛰어들고 싶지 않을까봐, 만화를 그리고 싶지 않을까봐 걱정되더라.”

이종범 웹툰 작가의 <닥터 프로스트>. 이종범 제공

이종범 웹툰 작가의 <닥터 프로스트>. 이종범 제공


이종범 작가는 만화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작가라는 이미지가 각인됐는데, 사랑하는 만화를 연재하는 동안 아주 큰 고통 속에 있었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그렇게 고통스러웠나.

“<닥터 프로스트>는 이 사회에 필요한 이야기라는 생각을 담아 만들었다. 기본적으로 나는 사람들을 좋아하고 예찬하는 장르를 좋아하는데 그 반대의 내용을 그려야 해서 힘들었다. 혐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그리다보니 단어에 대한 규정이 필요했고, 표현해야 했다. 사회에 필요하기 때문에 혐오에 대해 고민하고 공부하며 만들었지만, 그런 내용을 그리다보니 오히려 누군가에게 혐오의 대상이 돼버리기도 하더라.”

<닥터 프로스트>의 기획의도는 ‘천재 심리학자가 자기에 대해 알아가는 이야기’였다. 이종범 작가는 왜 ‘자기 이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스스로 자기 이해를 통해 괴롭고 힘든 상황에 많이 노출됐다가 해소된 경험이 있어서 그렇다. 내가 괴로운 이유가 타인이나 상황, 환경 때문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있는데 자신에 대해 잘 몰라서 그런 경우가 더 많다. 동시에 자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세상은 병들어간다고 생각한다. 본인이 무언가를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몰라서 분노로 표출하기도 하더라. 그래서 작가로서 좋은 세상을 위해 이런 게 필요하다고 작품으로 제안하는 거다. 이야기를 통해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 몹시 필요하고 중요하고 유용하고 때로는 매우 안전하다고 말하는 거다.”

이종범 작가는 본인이 진행하는 팟캐스트나 유튜브에서 종종 “사람들이 당신의 작품에 관심 갖기를 원한다면 당신도 세상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해왔다. 이종범 작가야말로 세상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작품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의 일상이나 삶, 가치관 같은 여러 가지 것을 마치 인류학자가 부족사회에 들어가는 것 같은 마음으로 알고 싶다. 사람들이 무엇을 제일 무서워할까, 무엇을 바랄까, 무엇에 제일 분노할까 이런 것들에 관심이 많은데 아직 작품으로 만들지는 잘 모르겠다. 연재라는 지옥으로 날 밀어줄 만큼 강력한 이야기일지는 나도 관심 갖고 지켜보는 중이다.”

홍난지 청강문화산업대학교 교수

◆ <닥터프로스트> 작가 이종범의 인터뷰는 다음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

‘소년 덕후’에서 ‘천재 만화가’

https://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55549.html

팁박스-다 잘하는 이종범

이종범 작가의 다재다능함은 만화와 악기 연주, 말하기 분야에서 탁월한 성취를 이뤄내고 있다. 20대 시절 밴드의 드럼 연주자로 일하기도 했고 휘슬아티스트로서 싱글앨범을 낸 경력도 있다. 동료 만화가들과 만화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것을 즐기며 다양한 팟캐스트 콘텐츠를 만들었는데 대표적으로 2017년부터 2022년 2월까지 만든 ‘이종범의 웹툰스쿨’이 있다. ‘이종범의 웹툰스쿨’ 팟캐스트는 더는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지 않지만 동명의 유튜브는 2019년부터 지금까지 매주 월요일 구독자들과 만나고 있다. 라디오 프로그램의 패널로서 <배성재의 텐(TEN)>에 오랜 기간 출연했고, 다양한 방송 프로그램의 멘토와 강사, 패널 등으로 출연한 바 있다. 이종범 작가의 여러 분야에 걸친 활동은 만화를 만드는 이유와 맞닿아 있다. 스스로 만화에 감화받고 영향받아 성장한 것처럼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고 싶다는 욕망이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영역에서 활동하는 이유다. 차기작으로 웹소설을 선택한 것도 스토리텔러로서의 이종범이 웹소설이란 도구로 독자들에게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다. 다만 스토리텔러 이종범의 뿌리는 만화이며 가장 잘해내고 싶은 지향점에 항상 만화가 있다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작품목록

<소왓툰> 2008년 재즈 잡지 <재즈피플> 연재. 밴드 드러머로 활동한 작가 경험을 살린 재즈음악 소재의 만화.

<투자의 여왕> 2009년 <스투닷컴> 연재. 재테크, 투자라는 경제 지식을 세 명의 캐릭터를 통해 전달하는 작품.

<시그넷> 2017년 <버프툰>(구 NC코믹스) 연재. 영생을 꿈꾸는 소년이 낙원이라 여겨지는 세계에 의문을 품으며 진실에 다가가는 내용의 에스에프(SF) 액션 웹툰.

<닥터 프로스트> 2011∼2021년 네이버웹툰 연재. 2011년 독자만화대상 온라인만화상, 2012년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2021년 오늘의 우리만화상 수상. 타인의 심리를 꿰뚫는 천재 심리학자가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이야기로 총 4개 시즌으로 구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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