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자이씨툰> 엄유진 작가의 이야기가 앞 기사에서 계속됩니다.◆
가족 이야기가 지긋지긋하다고? 따뜻한 ‘한 방’을 보여줄게https://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55554.html
온라인서점을 검색하면 엄유진 작가의 책이 여럿 나온다. 최근의 만화 작업 이전 작품들은 대부분 다른 작가들의 이야기에 그림을 보탠 것이다. 그 책들을 다 사 모아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읽었다. 그런데 인스타툰 이전의 그림들은 어린이책 작업이 많아서 그런지 작가의 독특함을 찾기 어려웠다.
“영국에서 공부하면서 그림을 잘 그린다는 기준이 바뀌었어요. 저는 그림을 아주 오래 그렸지만 저만의 스타일이 없었거든요. 최근에는 만화를 그리기 전까지 이상하게 흉내는 잘 내고 칭찬도 제법 받았지만 딱 ‘제 그림이다’ 그런 것이 없었어요. 그런데 런던에서 만난 친구들은 자기가 속한 나라의 문화를 반영하면서도 자기 성격에 맞는 스타일을 빠른 시간 안에 찾아갔어요. 저는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여전히 스타일을 찾는 데 애먹었죠. 동화나 학습지 삽화, 기사와 광고의 그림을 고객의 요구에 맞춰 그리는 동안에는 계속 헤맸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엄유진의 그림은 그가 그의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었을 때 생겨났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다음에 일이 다 끊겼습니다. 당분간 외주를 받기는 틀렸다고 생각하고 늘 쓰던 일기장을 이야기로 만들었어요. 시작은 허술했지만 제가 좋아하고 잘 아는 이야기가 사랑받기 시작하면서 독자들과 소통이 시작되었고, 비로소 제 스타일이 생겼어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좋아하는 길로 쭉 걸어가보는 거죠.”
매체로 분류하지 않고 내용으로 분류해본다면 <펀자이씨툰>은 가족 만화다. 나는 원래 가족 만화 가운데 홍승우의 <비빔툰>을 좋아했다. 지난 세기말부터 10년 넘게 <한겨레>에 연재됐고 책으로 묶인 것만 9권이다. <야야툰>과 같은 스핀오프도 제작됐다. <비빔툰>을 이루는 가족은 아빠, 엄마와 두 살 터울의 남매다. 표준적인 4명 가족의 티격태격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편수로 3300편, 책은 70만 권 팔렸다. 표준적인 가족상이 있고 인기 장르였다는 말이다. 20세기 감성이 물씬한 설정과 감성인데, 한국에서 가족의 모습은 그 후로 급격한 변화를 겪는다.
주변 상황도 많이 달라졌다. 잔잔한 가족 장르보다 액션이나 스릴러 같은 신나는 장르의 인기가 높다. 로맨스도 인기가 만만치 않지만 가족은 대체로 방해물 쪽에 가깝다. 거기에 더해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출산율이 낮은 나라고 급격한 인구 감소도 유례가 없다. 결혼하는 사람도, 태어나는 아이의 숫자도 적다. 다른 한편으로 세계화로 인해 나라를 넘어선 결혼도 늘었다. 심지어 동성 간의 결합도 허용하는 추세다. <펀자이씨툰>의 가족은 한국 여자 유진과 타이 남자 파콘 부부, 그리고 딸 짠이. 여기에 철학자 할아버지와 소설가 할머니가 있다. 아이를 가진 결혼한 부부가 이 시대에 평범한 가족의 모습일까?
<펀자이씨툰>은 읽는 내내 마음에 따뜻함을 느끼는 만화다. 이런 이야기를 읽으면 그 달달함에 결혼하고 싶어질 것 같고 아이도 힘껏 낳아 기르고 싶어질 것 같다. 부모님 모시는 것도 고생으로 여기지 않고 섬길 수 있을 것 같은 사랑이 가득하다. 오히려 나는 작가에게 이 작품은 시대착오적이지 않냐고 물었다. 가족의 정의와 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는 시대에 이 만화는 어떤 메시지를 던지는 것일까?
“<펀자이씨툰>과 관련해 제가 핵심적으로 생각하는 키워드는 ‘가까이 있는 이들과의 관계와 마음’입니다. 사회에 다양한 역할이 존재한다면 제 역할은 ‘연결자’ 또는 ‘전달자’에 속할 것 같습니다. 일상 속 관계 안에서 소소한 가치를 발견하고 기록하는 일이 저를 안정되고 즐겁게 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라는 말 자체가 ‘사람 사이’를 뜻하는 것을 보면, 좋든 싫든 관계라는 것을 배제하고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사람 사이’를 잃어가는 사회에서 점점 많은 이들이 삶을 포기하게 되는 것은 기현상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제게는 잊혀가는 그 ‘사이’를 들춰보는 작업이 의미 있습니다. <펀자이씨툰>에서는 인간관계에 대한 당위나 도리보다는, 보통의 가족관계 안에서 생겨나는 보편적 문제를 살짝 다르게 바라보며 풀어가는 과정을 다루기 때문에 쉽게 웃음과 공감을 얻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는 단순하게 자기 가족 이야기를 보고하는 사람이 아니다. 애써서 오늘을 사는 독자들이 마주 선 문제들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고 있다.
“저는 가족 이야기가 끈적하고 지긋지긋하기만 한 이야기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어려운 관계들 속에서도 생겨나는 단단하면서도 유연한 연결성을 찾아보고 싶습니다. 혼자만의 경험으로는 이야기를 끌어갈 지혜가 부족하지만, 캐릭터 간의 대화 속에서 새로운 해법과 시너지가 생기기도 합니다. 어떤 이야기를 믿을지가 중요한 세상에서, 오랜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일상을 대하는 부모님의 유쾌한 태도가 사람들에게 삶의 힌트를 주고 사랑을 받았습니다.
새로 태어나서 자라나는 손주와 인문학적 소양이 풍부한 조부모 간의 일상 이야기는 세대 간을 잇는 이야기이자 삶과 죽음을 연결 짓는 이야기가 됩니다. 가장 먼 곳에서 만나 가장 가까운 삶을 공유하게 된 타이인 배우자와 저의 일상 이야기는 서로 다른 문화를 잇는 이야기가 되면서도 평범한 부부간의 애정과 갈등을 다루는 이야기가 됩니다. 생로병사를 겪으며 비극이 희극으로 연결되기도 하고, 큰 동물과 작은 사람 사이에 시나브로 우정이 생겨나기도 합니다. 기억을 잃어가는 이의 시선, 철학자와 소설가의 시선, 같은 부모 아래서 자랐지만 다른 경험을 가진 형제들의 시선을 교차시키며 일상 속의 모든 것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변화합니다. 제 일상 속 장면들이 낯선 이들 안에서 익숙한 행복으로 발견되는 순간은 늘 흥미롭습니다. 살아 있는 한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끝이 없을 것입니다.”
엄유진 작가가 만화를 연재하는 매체의 특성상 독자들과 소통이 활발하다. 만화에 붙는 댓글들을 보면 그의 만화를 거꾸로 이해할 수 있다. 엄유진의 만화는 내용과 형식 면에서 독자들과 함께 울고 웃으면서 성장하고 있다. 엄유진 작가가 다루는 이야기가 결혼, 육아, 돌봄 등의 문제에 직면한, 동시대를 사는 독자들에게 큰 울림을 주고 있다.
요즘 엄유진 작가의 인스타그램을 보면 사진이나 동영상 같은 것이 그림에 붙어 있는 경우가 눈에 띈다. 아마도 새로운 표현을 위한 형식을 실험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출간 준비 중인 기억을 잃어가는 어머니에 관한 책도 또 다른 양식을 실험하는 중이다.
“진짜 감독이 된 것처럼 스토리와 기승전결의 구조, 그리고 바라보는 시선 같은 것을 다양하게 해보려고 해요. 책 작업은 인스타툰과는 다르게 구성해보려고 연구하고 있죠. 아직은 주변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 <펀자이씨툰> 작업을 우선적으로 진행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완전한 창작에 바탕을 둔 그림책이나 만화책을 만들고 싶어요.”
지금 준비하고 있는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책들이 어떻게 출간될지 몹시 기대된다.
주일우 만화애호가
<펀자이씨툰>의 가족들은 불행을 행복으로 바꾼다. 남편 파콘은 사랑을 찾아 아내의 고향 서울에서 산다. 사랑이 여기에 있지만 그의 뿌리는 멀리 있다. 여기서 그가 장인, 장모와 신뢰와 애정을 쌓으며 새로운 뿌리를 내리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으리라. 세상이 바뀌었다지만 국제결혼에 대한 편견도 여전하고 문화적 차이를 견디지 못하고 갈라서는 부부의 비율도 생각보다 높다. 엄유진 작가도 파콘의 노력과 어려움을 알기에 더 마음을 쓴다. 이들 앞엔 역경도 사랑의 배경일 뿐이다. 어머니는 치매를 앓는다. 기억을 잃어가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딸 유진은 ‘세상에 대한 창의적인 해석’으로 받아들인다. 철학자 남편은 자주 잊어버리는 아내를 위해 외출을 삼가지만 특유의 끈기와 혜안으로 행복한 결혼을 이어가고 있다. 이 가족이 치매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이 담긴 엄유진 작가의 신간에 기대가 큰 것은, 그 작품에서 보여줄 형식적 변화가 줄 즐거움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같은 어려움에 처한 혹은 처할 독자들에게 따뜻한 불을 밝힐 등대가 되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언제나 그렇듯,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짠이가 가장 큰 희망이다.
소제 : ‘격공’ 독자 댓글
<펀자이씨툰> 인스타그램에 붙은 댓글들은 엄유진 작가의 이야기가 얼마나 독자들의 격한 공감을 끌어냈는지 보여준다. 직접 몇 개를 골라 소개한다.
“저는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지만, 짠이 이야기를 보며 엄마 미소를 짓게 되네요.”
“죽을 작정이었는데 할머니 이야기를 보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었어요. 자살을 기도하던 제가 지금은 제주에서 씩씩한 할머니들을 돌보는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있답니다.”
“아버지와 잘 지내시는 것에 제가 대신 감사드립니다. 저도 아버지를 사랑하고 싶었습니다.”
“파콘과의 다음 이야기를 어서 내어놓으세요. 쿠키라도 구울 테니까요.”
“암 투병을 하며 아들과 심각한 불화를 겪고 있었는데 3년 전 어머니께서 해주신 한마디로 관계가 바뀌었습니다.”
“제 아버지도 표현을 못했을 뿐 같은 마음이셨을 것 같아요. 당장 부모님께 전화드려야겠어요.”
“119 구급대원입니다. 종일 사건이 생겨 지쳤었는데 이야기에 힐링됩니다.”
“입을 벙긋거리며 한글 공부를 하는 화전민 아이들 이야기를 보며 눈물이 나네요. 밝은 장면인데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습니다.”
“작가님도 넘어질 때가 있군요. 괜스레 위로받습니다.”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일상 이야기를 나누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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