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감하다. 두꺼운 ‘벽돌책’을 읽기란 원래 쉽지 않다. 하물며 여성을 혐오하는 남자들의 이야기라면? 이미 미디어·집·직장에서 남자들 이야기를 넘치도록 듣는데, 1144쪽에 달하는 책으로까지 접해야 할까? 하지만 <스티프트>(아르테 펴냄)는 ‘믿고 읽는’ 페미니스트 저널리스트 수전 팔루디가 쓰고 손희정이 번역했다. 전작 <백래시>, <다크룸>으로 생생한 현장·인터뷰, 촘촘한 팩트, 날카롭고 대담한 분석, 유려한 번역을 맛본 독자라면 이 책도 그냥 지나치기 어려울 테다.
<스티프트>는 저자가 6년 동안 미국 전역을 돌며 만난 베이비붐 전후 세대 남자들의 이야기를 모아서 1999년 최초 출간한 책이다. 한국판은 2019년 나온 20주년 기념판을 번역했다. 1991년 출간한 <백래시>가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를 주듯 <스티프트>도 지금까지 이어지는 페미니스트들의 질문을 품고 있다. 어째서 페미니즘 투쟁에 불안해하며 나아가 “분개하고 두려워하며, 지독한 열정으로 맞서 싸우는 남자들이 왜 그토록 많을까?” “남자들은 어째서 (여성들의 싸움에 반대하는 대신) 그들 자신의 싸움을 시작하지 않는가?”
저자는 일·스포츠·결혼·종교·전쟁, 엔터테인먼트 산업 등에서 ‘남자 되는 법’에 대한 남성 안내자의 이야기를 경청한다. 대량 해고로 실직했는데 여전히 이직 지원 사무소로 ‘출근’하며 회사가 다시 불러주길 기다리는 엔지니어, 여성 사관생도의 입학을 격렬하게 거부하는 사관학교 남학생, 여성을 강간한 횟수를 점수로 환산해 즐긴 사실이 드러나 사회적 파문을 일으킨 무리의 남학생 등이 저자의 인터뷰이다.
‘보통의 평범한’ 군인 또는 노동자로 충성스럽게 일하면 국가·회사·언론·아내로부터 ‘남자’로 인정받고 살 수 있던 시대는 지나갔다. 남자들이 여자에게 느끼는 배신감은 그들이 국가, 회사, 미디어, 아버지 등으로부터 느낀 겹겹의 배신감 맨 바깥에서 표출된다.
과거 ‘페미니즘을 읽는 시간’(제1313호 참조)에서 남성 성폭력 가해자들을 연구한 책을 읽고 ‘유해한 남성성’에 대해 “참으로 찌질하고 피로한 사회적 구성물”이라고 표현한 적 있다. <스티프트>를 읽고 생각이 바뀌었다. ‘찌질하다’는 판단은 취소한다. ‘유해한 남성성’이란 명명만으로는 부족하다.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남성의 과제는 결국 어떻게 남성다워질 것인가를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남성성이 어떻게 인간다워질 것인가를 알아내는 데 있기 때문이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여기서는 여기서만 가능한
이연숙 지음, 난다 펴냄, 2만원
2016년부터 6년 동안 작가 이연숙, 닉네임 리타가 블로그와 메모장에 쓴 일기다. 예술가, 여성, 퀴어, 가난, 섹슈얼리티 무엇보다 마음대로 안 되는 일상에 대한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줄줄이 흘러나오는데, 그 리듬감에 빠져들게 된다. 그의 ‘다변’에는 ‘무엇이 끝까지 남는지 보려는’ 집요함과, ‘쓰는 동안에 (…) 아무것도 아닌 일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안도감이 동시에 작동한다.
고립된 빈곤
박유리 지음, 시대의창 펴냄, 1만8천원
1980년대 자행된 국가폭력 문제인 ‘형제복지원 사건’을 2014년부터 취재한 저널리스트의 10년 기록을 담은 논픽션.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22년 이 사건이 국가에 의한 중대한 인권 침해라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개별적으로 국가 상대 소송에 나설 수밖에 없는 처지다. “진실은 성실하게, 지루하게 흘러간다.”
아무튼, 데모
정보라 지음, 위고 펴냄, 1만2천원
‘환상 문학’을 쓰는 소설가가 쓴 작품 중 가장 ‘사실적’인 책이다. 아무튼,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다. 온갖 데모에 출현하는 그는 배우자도 노동조합 활동을 하다 만났고 <저주토끼> 번역가도 ‘퀴어퍼레이드’에서 해후한다. 차별금지법·이태원특별법 제정을 위한 오체투지를 여러 번 했고 광화문 찻길에도 앉아보았으니 데모라면 더 이상의 적임이 없다.
사이렌과 비상구
오유신 지음, 이매진 펴냄, 1만6800원
초등학교 교사인 저자는 청소년기 학교폭력, 빈곤, (부모의) 이혼 등을 겪었고, 교사가 된 뒤 자신과 비슷한 환경에 처한 학생을 여럿 만났다. 그는 삶의 아픔을 어떻게 더 나은 삶을 향한 자원으로 삼을 수 있는지 탐구하고자 “돌봄, 교육, 몸을 다르게 여행한 사람들”을 찾아서 인터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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