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트 부산금정점에서 일하는 정승숙(52)씨에게 일요일은 아들과 ‘데이트하는 날’이다. 대형마트에서 일하는 그가 한 달에 두 번 쉬는 일요일, 장성한 스물넷 아들은 한 번씩 엄마에게 “영화 보러 가요”라고 먼저 말을 꺼낸다. 정씨는 “아들이 하라는 연애는 안 하고 엄마 꽁무니를 쫓아다닌다”고 웃지만, 아들이 안쓰럽게 느껴질 때도 있다.
얼마 전 엄마와 술을 마시면서 아들은 초등학교 2학년 때 어린이날의 기억을 꺼냈다. 당시 마트에서 일하던 정씨는 쉬지 못했다. 마트가 문을 여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대신 이모들이 아이를 데리고 놀이공원에 갔다. 정씨가 퇴근한 그날 밤, 아이는 대성통곡했다. “다른 애들은 엄마아빠랑 놀이동산에 왔는데 나만 이모들이랑 왔다”고 울었다. ‘엄마 없이 이모들이랑만 어린이날에 놀이공원에 두 번 다시 가지 않겠다’는 아이의 말에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정씨의 이야기가 담긴 책 <0개의 일요일>(민플러스 펴냄·1만6천원)은 대형마트 노동자에게 일요일 의무휴업일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담은 마트 노동자의 수기집이다. 2022년 3∼4월,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마트산업노동조합(마트산업노조)은 마트 의무휴업일과 마트 노동자의 삶·노동 등을 주제로 한 문학공모전을 열었다. 책은 출품된 100여 편의 시와 산문 가운데 60여 편을 묶어 만들었다. 정씨의 글 ‘어린이날 의무휴업’은 대상 수상작이다. 정씨는 2010년 마트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자신이 “가족 구성원 속에 존재는 하지만, 보이지 않는 사람”이 됐다고 적었다. 가족이 함께 모일 수 있는 주말에 “가족여행 한번 제대로 가지 못했고, 주말 가족모임에 참석할 수도 없었다. 언제나 가족들로부터 한 발 떨어져 제외된 삶을 살았다”고 했다.
2012년 유통산업발전법을 개정해 한 달에 두 번의 의무휴업일이 생긴 뒤 10년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정씨는 처음으로 쉰 일요일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첫 일요일은 가족과 함께 집에 있었다. 마트에서 일한 뒤부터 온 가족이 모여 제대로 된 외식 한 번 못했다. 그날은 다 함께 집에서 고기를 구워 먹었다. 생생하게 기억하는 이유에 대해 정씨는 “가족과 같이 밥 먹는 자리가, 남들한테는 쉬울지 몰라도 저희한테는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교대로 일하는 마트 노동의 특성상 저녁밥을 함께 먹기조차 쉽지 않았다. 오후부터 마트를 이용하려는 사람이 몰리기 때문에 마트 노동자들은 마감 근무를 더 많이 배정받았다. 오후 2시에 출근해 밤 11시에 돌아오면 아이는 이미 잠들어 있었다. 그랬기에 한 달에 두 번, 온전히 쉴 수 있는 일요일이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둘째·넷째 일요일에 쉬는 게 일상이 되면서 지금은 가족·친구 모임을 휴일 위주로 정한다. 때때로 같이 일하는 동료들과 등산을 가거나 영화를 보기도 한다. 심지어 아버지 기일도 휴일에 맞춰 기리는 것으로 바꿨다. 의무휴업일을 폐지하거나 일요일 대신 평일에 쉬면 되지 않느냐는 정부·지방자치단체 공직자의 말을 들을 때면 정씨는 “간이 콩닥콩닥거린다”고 했다.
2022년 정부는 대형마트 정기 의무휴업일 규제 완화를 추진했다. 대형마트 영업규제가 정작 소상공인의 매출 증대 등 골목상권 활성화로 이어지지 못하고, 오히려 소비자의 불편만 커졌다는 취지에서였다. 10년 사이 온라인 판매가 확대되면서 대형마트 매출이 감소했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대통령실은 국민제안 누리집에서 이 안건을 온라인 투표에 부쳤으나, 첫 투표 과정에서 중복 투표가 문제가 돼 안건 선정이 무산됐다. 그러나 2023년 2월 대구시에 이어 4월에도 충북 청주시가 의무휴업일을 일요일에서 평일로 바꾸면서 관련 논의가 서울시 등 다른 지자체에서도 떠오르고 있다.
‘평일에 쉬니 휴식권은 보장되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들 수 있다. 이 질문에 마트 노동자들은 공통적으로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내지 못하는 휴일을 진정한 휴일로 볼 수 있느냐고. “늦은 아침까지 사랑하는 딸래미와 부둥켜안고 뒹굴거리며 티브이(TV)를 보기도 하고, 시장을 거닐며 취향에 따라 먹고 싶은 것도 먹고, 오랜만에 외식도” 할 수 있는(안수용), 형제들과 함께 시간을 맞춰 아픈 노부모를 보러 갈 수 있는 날(김미정), 자라나는 자녀들과 종종 공원·롤러장·놀이동산·캠핑 등을 갈 수 있는 날(이가영)이라는 것이다. ‘쉼, 그 이상’이라는 글로 우수상을 받은 정연성씨는 “우리에게 평일 휴무는 ‘그냥 쉬는 휴일’ 외에 다른 의미가 없다”고 단언한다. 평일엔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어려워 진정으로 마음의 행복을 충전하는 게 어려운 탓이다.
그럼에도 소비자 편의가 우선이라는 이들에게 마트 노동자들은 말한다. “사람들은 본인이 겪지 못한 타인의 일에 대해 인색하기만 하다. 한 달 2회 의무휴업이 마트 노동자들에게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를 수 있다.”(이태옥)
공정감각
나임윤경 외 지음, 문예출판사 펴냄, 1만8500원
2022년 5월, 연세대 일부 재학생이 교내 청소노동자의 집회가 수업권을 침해한다며 청소노동자들을 업무방해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이후 문화인류학과 나임윤경 교수는 ‘사회문제와 공정’이라는 강의를 개설하며 청년들의 비틀린 공정감각에 의문을 제기했다. 수강생들이 수업시간에 쓴 페미니즘·친노동 관점의 글은 대학교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 올라가자마자, ‘빛의 속도’로 신고돼 삭제됐다. 책에는 이 글들이 모였다.
사랑과 혁명 1·2·3
김탁환 지음, 해냄 펴냄, 각 권 1만8800원
1827년 조선시대 전남 곡성에서 시작해 전국적으로 천주교도 500여 명이 체포된 ‘정해박해’ 전후 상황을 배경으로 한 김탁환의 장편 역사소설이다. 19세기 조선의 천주교도들은 조정의 탄압에도 자생적으로 신앙공동체를 꾸려나가는 등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다.
제정신이라는 착각
필리프 슈테르처 지음, 유영미 옮김, 김영사 펴냄, 1만8800원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무 자르듯 나눌 수 있을까? 누가 제정신이고, 누가 제정신이 아닐까? 우리는 자신의 이성을 철석같이 믿지만, 세계적인 신경과학자이자 정신의학자인 저자는 뇌의 기능상 ‘정상’과 병리적 사고 사이에 명확한 선을 긋기 어렵다고 본다. 그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왜 자기 속 세계에서 살아가는지에 대한 이유를 풀어나가며 정상과 비정상 같은 이분법적 분류가 타당하지 않음을 들려준다.
연결된 위기
백승욱 지음, 생각의힘 펴냄, 2만2천원
1945년 2월 미국·소련·영국 정상이 모인 얄타회담에서 나온 의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국제질서를 결정하는 데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다. 저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얄타체제’의 붕괴를 보여준다고 본다. 책은 우크라이나 침공과 중국의 대만 점령, 더 나아가 한반도 핵위기와 연결될 가능성을 제시한다.
서혜미 기자 ham@hani.co.kr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단독] 관저 유령건물 의혹에 “스크린 골프 검토했다 취소” 말바꿔
[영상] 박정훈 대령 “윤 격노는 사실…국방부 장관 전화 한 통에 엉망진창”
“교단에 서는 게 부끄럽다”…‘나는 왜 시국선언에 이름을 올렸나’
푸틴 “우크라에 ICBM 아닌 중거리미사일 발사”…러 “미국에 사전통보”
음주운전·징계도 끄떡없던 강기훈 행정관, 결국 사의 표명
“우크라군, 러시아 ICBM 발사”
[단독] “창고→경호시설” 의혹 더 키운 경호처…그럼 왜 숨겼나
관저 ‘유령 건물’의 정체 [한겨레 그림판]
[속보] 우크라 공군 “러시아, 오늘 새벽 ICBM 발사”
성범죄 의혹 미 법무장관 후보 사퇴…국방장관 후보 성폭력 내용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