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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키퍼’는 지고 싶지 않다

문화인류학자 김관욱, 콜센터 노동의 현실을 파헤친 르포 <사람입니다, 고객님>
등록 2022-01-29 02:45 수정 2022-01-29 09:19

“사랑합니다, 고객님.” 10여 년 전 ‘114 전화안내’에서 여성노동자들이 첫 응대 때 써야 했던 인사말이다. 일부 이용자는 노골적인 성희롱을 일삼았지만 노동자들은 속수무책이었다. 지금이라고 달라졌을까? 대리운전부터 텔레마케팅, 민원안내 등 디지털 시대의 콜센터 노동자는 폭증하지만 노동환경은 최악이다. 노동자의 절대다수는 여성이다.

가정의학 전문의이자 문화인류학자 김관욱의 <사람입니다, 고객님>(창비 펴냄)은 10년간 업태 연구와 심층 인터뷰, 이론 연구를 병행하며 콜센터 노동의 현실을 파헤친 르포이자 생생한 현장과 학문적 이론을 접목한 보고서다. 서울 구로디지털단지 콜센터들의 노동현장을 직접 관찰하고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1970~80년대 산업화 시대와 어떻게 달라졌을까? 구로공단 ‘공순이’는 디지털단지 ‘콜순이’로 바뀌었을 뿐이다.

콜센터 노동은 파놉티콘을 방불케 하는 물리적·전자적 감시체계로 지탱된다. 관리자가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배치된 자리에서 상담사의 모든 콜 상황뿐 아니라 휴식과 이석 현황까지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초 단위로 확인된다. 급여는 철저히 실적에 연동된다. 2020년 3월 서울에서 첫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곳도 고밀집 밀폐 환경의 콜센터였다. 확진 판정을 받거나 자가격리됐던 상담사들은 그 기간 급여가 깎였다. 콜센터 재떨이는 “한숨들의 무덤”이다. 상담 중에는 한숨 소리조차 꾹꾹 눌러두고 ‘미소 띤 음성’으로 연기한 뒤 흡연실에서 담배 연기와 함께 비로소 그 한숨을 내뿜는다. 한 상담사는 몸과 마음이 위축된 자신을 “뜨거운 불판 위 마른오징어”에 비유했다. ‘디지털 현모양처’를 강요하는 곳에서 상담사들은 래퍼 제리케이의 곡 <콜센터> 가사처럼 “매일 아침 투구를 쓰듯 쓰는 헤드셋”을 끼고 “전화해 전화해 난 웃을 수 있어”라고 다짐하지만 현실은 완강하다. 이들은 심리적 외상뿐 아니라 근골격계질환 등 온갖 질병을 달고 살기 일쑤다.

지은이는 ‘감정노동’ 개념만으로 포획되지 않는 콜센터 노동자들을 ‘하우스키퍼’(전업주부)에 빗대어 ‘콜키퍼’로 표현한다. 여전히 열등한 지위, 소비자 정보 전달자, 진짜 관리자와 고객 사이의 차단자, 플랫폼노동자라는 뜻을 두루 포함한 신조어다. 지은이는 ‘콜센터 인류학’을 쓴 이유를 “지고 싶지 않아서”라고 했다. 상대는 “폭언하는 고객, 강압적 상사, 외면하는 동료가 아니라, 이런 개인들을 확산하게 만드는 사회와 문화”다. 성소수자(LGBT) 고용보호법이 있는 필리핀에선 “콜센터가 트랜스젠더 여성을 위한 혁명적 일자리”가 되기도 한다. 그곳에서 “헤드셋은 자유의 횃불처럼 희망의 상징”이다. 지은이가 말미에 던진 질문은 지극히 현실적이고도 절실하다. “한국에서 콜센터는 어떤 가능성까지 꿈꿀 수 있을까?”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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