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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일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떠오르는 키워드 ESG, 동네서점엔 오래된 미래

제1383호
등록 : 2021-10-12 00:07 수정 : 2021-10-13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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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코로나19 당시 대구에 보내달라며 사람들이 보낸 책과 간식. 1500권의 책이 대구로 갔다. 정현수 제공

ESG가 시장의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 간과하면 밀려난다고 한다. 환경, 사회적 책임, 거버넌스 측면에서 서점을 본다면 어떨까.

추천책 서비스를 실시하며 고객 관심분야 분석을 체크하는 문항을 넣었더랬다. 환경을 빼놓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환경에 예민하기는 서점 주인도 마찬가지다. 동네서점이 부활하기 시작했다는 5~6년 전부터 작은 책방에 가보면 어김없이 환경, 비건 코너를 만날 수 있었다. 10평 남짓 작은 공간에서는 책장 한 칸, 매대 하나가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 하나하나에 서점 주인과 고객의 지향이 담겨 있다.

온라인몰을 운영하는 서점에선 기업이 변화하기 훨씬 전부터 포장을 고민해왔다. 국내 제품이 없어 가격이 상당히 높을 때도 출혈을 감수해가며 종이 완충제를 사용했다. 손님들도 비슷해 봉투와 포장, 심지어 사은품까지 거절하는 사람이 많았다. 섬에 있는 서점에선 바다 쓰레기를 줍는 모임이 열렸다. 플로깅이라는 용어가 유행하기 전부터, 위기를 느낀 세상이 급하게 환경에 관심 갖기 훨씬 이전부터였다.

사회적 책임이야 말할 것도 없다. 책 읽는 사람들은 인권부터 동물권까지 살아 있는 모든 것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에 민감하다. 책방 피드(게시물)에는 매일 관련 서적이 추천된다. 사회정의를 공부하고 고민하는 모임도 늘 열린다. 책방은 동네 활동가들과도 연결돼 있다. 벼룩시장을 열고 자체 굿즈(팬 상품)를 팔아 수익금을 사회단체에 기부한다. 거버넌스는 어떤가. 일하는 서점이 어려울까 주인보다 걱정하고 열심히 뛰는 서점원이란 책방계에 흔한 캐릭터다. 내 동네 유일한 책방이 사라질까 자원봉사를 자청하는 지역 작가들이며 단골은 어떤가. 근처 창작자들과 협업해 함께 성장하기를 꿈꾸는 책방 주인도 역시나 흔한 캐릭터다. 그들은 함께 성장하길 꿈꾼다.

‘연결돼 있다’. 책 읽는 사람들을 말해주는 문장 중 하나다. 이웃과 지구와 우주와 자신이 이어져 있음을 안다. 사라졌던 동네서점이 부활하자 그들은 책방을 중심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ESG라고 따로 유행하는 용어를 붙여 말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오래전부터 환경과 사회를 고민했다. 평등하고 투명하기 위해 자주 분노하고 투쟁하는 그들은 사실 다정한 사람이다. 책이 있어 가능한 연결이다. 책이 만드는 아름다움이다.

2020년 코로나19 당시 대구에 보내달라며 사람들이 보낸 책과 간식. 1500권의 책이 대구로 갔다. 정현수 제공

2020년 초, 대구가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모르는 아이디로 메시지가 왔다. ‘저는 대구 사는 정기구독자 박○○의 친구입니다. 매일 마스크 찾고 먹을 거 찾으며 절박해하던 ○○가 택배 상자에서 책을 꺼내며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았어요. 전염병 시대에도 책을 사는 사람이 있고 보내는 사람이 있구나 싶었습니다. 제 친구를 웃게 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연초에 정기구독 가입을 하면 1년 내내 매달 1일 책이 배송된다. 신청은 박○○님이 했고 나는 보내야 할 책을 보냈을 뿐인데 감사 인사까지 받아야 쓰겠나 생각하다 대구를 상상했다. 우리 모두 생애 처음 겪는 상황이었다. 얼마나 당혹스러울까. 다들 집에 갇혀 어쩌고 있을까. 얼마나 갑갑할까.

책을 더 보내기로 했다. 한 번 읽고 쌓아둔 책이 많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글을 올렸다. ‘살고 계신 대구 주소를 적어주면 책을 보내드립니다.’ 1분에 하나씩 주소가 날아왔다. 금세 갖고 있던 책으로 감당 안 될 수준이 됐다. 다시 글을 올렸다. ‘대구 보낼 책이 부족합니다. 같이 해주실 수 있을까요?’ 동네 주민들이 책을 들고 뛰어왔다. 봉투에는 다양한 간식도 들어 있었다. 책 포장을 돕겠다는 메시지가 매일 날아들었다. 전국에서 매일 책이 여러 박스 도착했다. 마스크를 구하려고 길게 줄 서던 시절인데 ‘먼지 먹으며 일하지 말고 쓰세요’라며 마스크를 한 묶음 보낸 분도 있었다. 아이들 읽으라고 아동 도서에 쪽지와 사탕을 붙여 보낸 분도 있었다. ‘많이 갑갑하지? 책 읽으면서 엄마 아빠랑 재밌게 보내렴.’ 몇몇 출판사, 커피 회사에서 책과 커피를 보내주었다. 1500권의 책이 대구로 갔다. 울고 웃으며 책을 포장했다. 울적한 상황이 축제처럼 되었다.

대구 상황이 나아진 뒤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온라인 구매가 급격히 늘었다. 주소에 대구경북이 특히 많았다. 글 몇 줄 적어 올렸을 뿐 모든 것이 서점 손님들로 이루어졌는데 고맙다는 인사를 받아도 되는 걸까 어리둥절하고 민망했다. 그래도 확인할 수 있어 좋았다. 우리는 연결돼 있다. 분명하게. 누군가는 ESG가 새로운 기준인 듯 강조하고, 전략일 뿐이면서 특별한 철학이나 가치인 듯 팔고 있지만 전혀 새롭지도 특별하지도 않다. 우주와 지구와 우리와 내가 연결돼 있으며 모두가 소중하고 평등하다는 인식이란 책 읽는 사람들에게 오랜 전통이다. 자연스럽고 당연하다. 책이 있어 가능한 연결이고, 책이 만드는 아름다움이다.

정현주 서점리스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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