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 불평등’이 심각하다. 세계 전역에서 부의 쏠림과 빈부 격차가 갈수록 악화하는 추세다. 2015년 유엔은 192개 회원국 만장일치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채택했다. 2030년까지 완수하기로 결의한 이 프로젝트의 핵심 과제 중 하나가 “국내, 국가 간 불평등 감소”다. 그러나 자본주의사회에서 ‘불평등’은 불가피하고 ‘부의 대물림’은 당연하다는 게 지배적인 통념이다. 그 밑바탕에는 사적 소유의 정당화와 능력주의 신화가 깔려 있다. 과연 그럴까? <21세기 자본>(2013)과 <세계 불평등 보고서 2018>(공저)로 세계적 주목을 받은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신작 <자본과 이데올로기>(안준범 옮김, 문학동네 펴냄)에서 “그렇지 않다”고, “더 평등하고 더 정의로운 체제는 여전히 가능하다”고 웅변한다.
피케티는 전작들에서, 지난 300년간 자본주의 체제에서 경제적 불평등이 지속해서 확대됐음을 다양한 시계열 통계 자료와 간명한 수학 공식으로 입증했다. 또 지금 추세가 이어지면 세계는 세습 자본주의로 돌아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최소한 19세기 이후 내내 ‘자본소득률이 경제성장률을 앞지르며’(r>g) 소득 불평등 격차가 커지고 이를 만회할 기회가 갈수록 사라진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런 불평등이 ‘소유주의 이데올로기’라는 강고한 주술로 정당화되고 견고해진다고 우려한다.
피케티는 <21세기 자본> 이후 6년 만에 낸 이 책에서, 주로 ‘근대 이후 부유국 경제’에 머물렀던 서양 중심의 시야를 노예제부터 21세기 세계화 시대 자본주의까지의 사회역사적 구조와 정치로 크게 넓혔다. 그렇게 확장된 시공간에서 “불평등은 경제적 또는 기술공학적인 게 아니라 이데올로기적이고 정치적인 것”임을 확인한다.
“역사상 가장 오래되고 널리 퍼진 불평등주의 체제”로 피케티는 삼원사회를 꼽는다. 이 사회는 사제(지적·도덕적 규범을 제시하는 지배계급), 귀족(질서와 안위를 책임지는 전사계급), 제3신분(노동하는 평민계급)으로 이뤄졌다. 전제군주인 왕은 신분을 초월한 존재인데 1789년 프랑스혁명 이전 ‘앙시앵레짐’(구체제)이 그 전형이다. 근대 시민혁명은 전체 인구의 1~2%에 불과한 사제와 귀족이 소유와 권력을 독점하는 신분세습 체제를 무너뜨렸다.
불평등 체제 배후로 ‘브라만 좌파’와 ‘상인 우파’ 지목
그러나 만인의 법적 평등이 경제적 평등을 동반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예컨대, 18세기 이후 인류의 평균소득과 인구는 10배 이상 늘었는데, 2018년 전세계 소득 상위 10분위의 총소득 점유율은 35~55%로 집중됐다. “불평등의 증대는 특히 가난한 50%를 희생시키며” 이뤄졌다. 극단적 불평등 체제는 20세기 들어 사회주의혁명과 대공황,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유럽식 사회민주주의 출현으로 ‘위기’를 맞는 듯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보수 혁명과 사적 소유의 절대적 신성화는 이런 흐름을 급반전시켰다.
피케티는 형식적 평등의 외피에 감춰진 새로운 지배계급과 불평등주의 체제의 본질을 파악해낸다. 바로 ‘브라만 좌파’와 ‘상인 우파’가 역할을 나눠 통치 정당성을 구현하는 ‘다중 엘리트 체계’다. 브라만 좌파는 학력·지식·인적자본 축적을 지향하는 고학력층이다. 상인 우파는 화폐와 금융자본의 축적을 좇는 부유층이다. 양쪽은 “특정 지점에서 분쟁을 겪을 수도 있지만, (서로에게) 매우 큰 이득이 되는 현행 경제 체계와 세계화 양상에 대한 강한 애착심을 공유”한다. 이들이 “교대로 집권하거나 연합의 틀로 함께 통치”하며 권력과 자원을 독점한다.
앞서 삼원사회의 전사계급(귀족)이 현대 자본주의에선 상인 엘리트로 대체됐고, 노동자계급을 대변했던 좌파 지식인은 고학력 중산층을 대변하는 이익집단으로 변질됐다는 게 피케티의 진단이다. 두 집단은 상호보완적이며, 선거와 이데올로기로 정당성을 획득한다. 나머지 제3신분은 여전히 소외되고 심하면 ‘개돼지’ 취급을 받으며, 유권자로서만 호명된다. “불평등은 자유롭게 선택된 과정에서 유래하기 때문에 정당하다”거나 “시장과 소유에 대한 접근의 기회가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진다”는 논리는 허구에 가깝다. 이는 오늘날 많은 나라에서 보편화한 ‘양당정치’의 맹점과 최근 도드라지는 정치적 포퓰리즘의 배경에서 명료하게 드러난다. 피케티가 오늘날 불평등 구조의 동역학으로 ‘정치’와 ‘이데올로기’에 주목한 이유다.
현대판 삼원체제를 극복할 수 있을까? 피케티는 그 대안 모색을 “정의로운 사회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으로 시작한다. 그에 따르면 정의로운 사회는 “구성원 전체가 광범위한 기본 재화에 접근할 수 있고,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시민적 정치적 삶의 다양한 모든 형태에 완전한 참여”가 가능한 사회다. 이런 정의를 바탕으로 대안 모델이 자연스럽게 도출된다. 바로 ‘참여사회주의’와 ‘사회연방주의’다.
참여사회주의는 자본의 ‘사회적 소유’와 ‘일시적 소유’가 핵심이다. 기업 권력을 종업원이 나눠 갖고, 강력한 누진소유세로 사회적 부의 사적 세습과 집중을 막는 장치다. “급진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시작된 진화와 동일선상에 있다.” 또 사회연방주의는 이런 변화의 실현을 위해 세계 국가들이 “초민족적이고 지구적인 정의”를 향해 연대하는 민주주의 모델이다. 국경·이민·민족·종교 등의 경계를 둘러싼 균열을 극복하자는 것이다.
피케티는 무려 1300쪽(번역본)에 이르는 이 책에서 “분석한 경험을 토대로 확신하건대, 자본주의와 사적 소유를 넘어서서 참여사회주의와 사회연방주의에 기반한 정의로운 사회를 수립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말한다. ‘정의로운 세계화’를 향한 새로운 국제적 틀을 제안하고, 동의하는 나라들부터 공동발전조약을 체결하며, 이 기획에 합류하길 원하는 나라들에 문을 열어두자고 했다. 다양한 이견이 있을 수 있다. 피케티 또한 “토론을 끝내는 것이 아니라 여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봄길 박용길
정경아 엮음, 삼인 펴냄, 1만5천원
고 문익환 목사의 반려자이자 평생 동지였던 박용길(1919~2011) 장로의 일생을 담은 첫 전기. 그는 문 목사와 함께 민주·통일 운동에 앞장섰으며, 남편이 여섯 차례에 걸쳐 10년 넘게 감옥에 있는 동안 거의 매일 손편지(3천여 통)를 써서 격려한 다정다감한 투사였다.
철도원 삼대
황석영 지음, 창비 펴냄, 2만원
황석영 작가의 일제강점기, 해방 전후, 오늘날까지 한반도 100년 근현대사를 꿰뚫은 대하소설. 이백만-이일철-이지산으로 이어지는 철도 노동자 3대와 이백만의 증손자이자 공장 굴뚝에서 고공농성 중인 노동자 이진오까지 4대에 걸친 한집안 이야기가 거대한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전염병, 역사를 흔들다
마크 해리슨 지음, 이영석 옮김, 푸른역사 펴냄, 3만5천원
영국 옥스퍼드대학 교수(의학사)인 지은이가 14세기 유럽의 페스트부터 19세기 중동 콜레라, 20세기 동북아 페스트, 21세기 코로나바이러스에 이르기까지 700년에 걸쳐 지구촌 곳곳에서 치명적 피해를 준 전염병 팬데믹을 ‘무역’에 방점을 찍어 톺아보고 대응의 변천사를 짚는다.
올드 코리아
엘리자베스 키스 그림, 엘스펫 키스 로버트슨 스콧 글, 송영달 옮김, 책과함께 펴냄, 3만8천원
20세기 초 일제강점기 한국을 수차례 방문한 영국 화가와 잡지 편집인 자매가 당시 사람들의 모습과 풍속, 문물과 사회상을 섬세하게 묘사한 목판
화·수채화·드로잉 등 85점 모두를 컬러로 싣고, 자세한 서술을 붙였다. 2006년 초판(절판)의 개정증보판으로 사료 가치가 높다.
철학 vs 실천 -19세기 찬란했던 승리와 마르크스의 테제
강신주 지음, 오월의봄 펴냄, 3만8천원
동서양 인문학을 종횡하는 철학자 강신주가 전체 5권으로 낼 ‘역사철학·정치철학 강의’ 시리즈의 첫 권. 파리코뮌 전사들, 동학 농민군, 시인 랭보와 신동엽, 마르크스 등 억압체제에 맞서 싸워온 ‘등불의 패밀리’들의 장엄하고 거대한 면모를 복원하고 현재적 의미를 짚는다.
은희
박유리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1만3800원
<한겨레> 기자인 지은이가 직접 취재한 기록을 바탕으로, 1975년부터 1987년까지 최소 513명이 살해당한 ‘형제복지원 사건’을 소설로 재구성했다. 영문을 모르고 끌려간 가공의 주인공 은희와 은수 남매의 눈으로 군사정권 시절 참혹한 인권유린의 민낯을 드러낸다.
화이트-백인 재현의 정치학
리처드 다이어 지음, 박소정 옮김, 컬처룩 펴냄, 2만8천원
서구 백인을 인류 위계의 정점에 올려놓은 ‘백인성’ 신화의 배경과 전개, 의미를 기독교·인종주의·식민주의의 맥락에서 분석한 책. 영국 영화학자인 지은이는 고전문학, 대중음악, 르네상스 회화와 사진, 20세기 할리우드 영화 등에 재현된 백인 우월성의 허상을 폭로한다.
흰 당나귀를 만나보셨나요
박미산 지음, 채문사 펴냄, 9천원
“존재의 기원과 사람의 심연을 찾아가는”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지독한 가난과 불운을 이겨내며 “비상을 꿈꾸다 생을 포기하는 사람들”을 살리는 그, “사분사분하는 별을 부수어 마당에 깔아놓”는 당신, “녹슨 구리거울처럼 아팠”던 사람 등을 보듬는 눈길이 부드럽고 시어는 단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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