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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처럼 살지 않겠다’는 스무 살 즈음의 바람은 30여 년이 지나고 ‘엄마처럼 죽지 않겠다’는 바람으로 변했다. 페미니스트 저널 편집장 출신 권혁란씨의 (한겨레출판 펴냄)는 세상을 떠난 어머니에 대한 애도일기이자, 장수 시대에 달라진 죽음의 풍경에 대한 기록이다.
구순을 2년 앞둔 어머니는 요양원에 입소하던 날 밤새 울다가 잠이 들었다. 버려졌다는 느낌 때문에.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스텐트 시술을 받은 어머니에겐 돌봄노동이 필요했다. 하지만 여섯 명의 딸과 아들들 또한 이미 아프거나 늙었고, 멀리 살거나, 집이 좁거나, 나 벌어 먹고살기도 어렵다는 각자의 사정이 있었다. 또래 할머니들과 체조도 하고 노래도 부르며 요양원 생활에 적응하던 즈음, 어머니는 고관절이 부러져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후 2년간 수술실과 응급실, 집중치료실, 중환자실로 옮겨다녔다. 헛것을 보고 헛소리를 하는 섬망 증세가 무시로 찾아와 염치와 존엄을 잃은 채 흐릿하게 하루하루 목숨을 이어갔다. 하루걸러 한 번씩 위급하다는 전갈을 받을 때마다 자식들이 달려갔다. 하지만 어머니는 죽음으로 가는 길로 들어서는 듯하다 다시 되돌아 나오는 과정을 수차례 반복했다.
어머니의 투병 과정 2년은, 그야말로 불합리하고 무의미한 고통을 연장하는 과정이었다. 몸에 연결된 인공호흡기와 각종 의료기기는 환자를 살게 하는 게 아니라 고통을 조금 더 길게, 더 잔인하게, 고생만 더 하게 할 뿐이었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몸 안의 모든 것을 다 빼내고 쏟아내고 더 썩어갈 때까지 임종도 못 하는 그런 가혹한 마지막 날들. 어머니는 자기 몸에, 자기 병에, 자기 죽음과 삶에 관해 단 한 가지도 결정할 수 없는 무력한 존재로 널브러져 있어야만 했다. 죽는 건 본인인데 그 죽음의 과정에서 철저히 소외된 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 이 시대의 죽음이다. 자식들의 단체대화방에선 수시로 울음이 터져나왔다. 어머니의 고통을 지켜보는 죄의식과 한탄, 무력감. 자식들이 할 수 있는 건 병원 앞 밥집에서 목구멍으로 밥을 삼키고 소주를 들이붓는 것 외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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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저렇게 죽지 말아야지.” 지은이는 장례를 치르자마자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등록하고 유언장을 쓰고 장기 기증 서약도 하고 장례 계획을 세우는 등 엄마처럼 죽지 않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두 딸을 앞에 두고 ‘내 인생의 마침표는 내가 찍겠다’는 자신이 겪고 싶은 죽음에 대해서도 선언했다. 지은이는 기자와 한 서면 인터뷰에서 “고령화 시대에 죽음의 방식, 죽음의 의미, 죽는 나이, 죽음의 장소, 케어의 방식이 다 변했다”며 “엄마의 죽음을 통해 장수 시대의 지옥, 장수 시대의 연옥 풍속을 하나부터 열까지 다 겪으면서 이것이 내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기에 기록했다”고 말했다.
“부모를 지고 간 지게에 내가 오를 것이고 그 지게를 내 자식이 지게 될 것이고 그 아이 또한 지게를 지게 될 것이다.” 이것만큼 자명하고도 슬픈 명제는 없다. 하지만 죽음을 향한 작가의 고민과 실천을 따라가다보면, 아름답고 존엄한 죽음이 그리 막연하지만은 않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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