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드 창의 소설집이 나왔다. 이후 17년 만이다. 과학소설 거장의 귀환을 환영하는 모습이 숫자에도 역력하다. 5월7일 미국에서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 수위에 올랐고, 한국에서도 예약 판매로 종합 2위(인터넷 서점 알라딘)를 기록했다. 과학소설로는 이례적이다. 에 실린 8편, 의 9편 등 ‘지나치게’ 작품 수가 적은 작가지만, 수상 경력은 어느 작가보다 많다. 최연소 네뷸러상을 포함해 네뷸러상 4번, 휴고상 4번, 로커스상 4번을 받았다. 모두 명망 있는 과학소설상이다. 작가는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소프트웨어 기업에서 기술 저술가로 일한다. 는 드니 빌뇌브 감독이 영화 의 원작으로 삼았다.
은 17년의 세월이 여실하게 중후하다. 단편집을 목표로 쓰이지 않은 9편은 길이와 형식이 불균질하고 태생도 다양하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과학학술지 에 발표되었고, ‘데이시의 기계식 자동 보모’는 전시회를 위해 쓰였고. ‘옴팔로스’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은 이번 책을 통해 처음 선보인다.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는 한국에 단행본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표제작 ‘숨’은 테드 창의 독특하고 치밀한 상상력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숨’이라는 행위는 문학 작품에서 ‘인간임’을 드러내는 은유로 주로 쓰인다. 실제로는 산소를 들이마시고 이산화탄소를 내쉬는 호흡이다. 작가는 ‘숨’을 개념적 의미만 가져와 완전히 다른 세상을 상상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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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은 해부학자의 내레이션으로 시작된다. 인간이 공기를 공유하듯 이들은 허파를 공유한다. 이들은 하루에 아르곤을 채운 허파를 두 개씩 소비한다. 이들의 숨은 지하의 파이프와 연결돼 있다. 평화로운 일상에 의문이 싹튼다. 정확한 시계가 조금씩 빨라진다는 소문이 떠돌고 해부학자는 이것을 확인하기 위해 자신을 해부한다. 그러고는 숨이 만들어내는 기압 차이가 우주를 유지하는 근본 원인이라는 추론에 다다른다. 인간이 멸망한 뒤 탄생한 기계 인류인지, 다른 우주의 존재인지 등의 궁금증을 이어가던 독자는 여기서 새로운 ‘우주’를 만나게 된다. 우주 탐험자를 향한 간절한 호소가 지구인의 것일 수 있음은 당연하다. ‘숨’은 아주 인간적인 ‘숨’일 수 있는 것이다.
굳어진 인간 실존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인간의 가치를 낱낱이 분해하는 것이 그의 장기다. 이례적으로 긴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는 가상공간에서 태어난 디지털 애완동물을 훈련하는 과정을 인간의 교육에 빗댄다. ‘데이시의 기계식 자동 보모’는 기계와 인간의 이분법적 사고를 한 번 더 비튼다. 우주 원리를 우화와 설화로 풀어내는 것은 데뷔작 ‘바빌론의 탑’부터 그만의 독특한 작법이다. 시간과 우주에 관한 일화를 운명을 믿는 이슬람 문화와 연결한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은 같다. 컴퓨터의 미래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에서는 성경이 아프리카 부족에게 전해진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이 기존 구독제를 넘어 후원제를 시작합니다. 은 1994년 창간 이래 25년 동안 성역 없는 이슈 파이팅, 독보적인 심층 보도로 퀄리티 저널리즘의 역사를 쌓아왔습니다. 현실이 아니라 진실에 영합하는 언론이 존속하기 위해서는 투명하면서 정의롭고 독립적인 수익이 필요합니다. 그게 바로 의 가치를 아는 여러분의 조건 없는 직접 후원입니다. 정의와 진실을 지지하는 방법, 의 미래에 투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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