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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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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 없는 성관계는 범죄인가 아닌가

#미투 운동으로 성폭력 범죄 인정 확대 요구 분출…

형법 학자 조국이 제기한 ‘비동의간음죄’의 쟁점들
등록 2018-09-22 18:19 수정 2020-05-03 04:29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무죄 선고 나흘 뒤인 8월18일 ‘제5차 성차별 성폭력 끝장집회’에 참가한 이들이 서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무죄 선고 나흘 뒤인 8월18일 ‘제5차 성차별 성폭력 끝장집회’에 참가한 이들이 서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권력형 성폭력’의 전형으로 여겨지는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수행비서 성폭행 사건을 통해 성폭력 범죄를 처벌하는 현행법의 ‘위력 성폭력’ 개념이 다시 떠올랐다. 안 전 지사는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간음’(형법 제303조)과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성폭력처벌법 제10조)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2018년에야 비로소 사회적으로 주목받은 성폭력 범죄의 유형이지만 1997년부터 작성된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상담통계는 ‘위력 성폭력’이라는 형사처벌의 공백이 있음을 웅변해왔다.

2017년 전체 상담통계를 보면, 전체 3건 중 1건(29.8%)은 직장 업무 관계에 있는 사람에 의한 성폭력 피해였다. 이 가운데 압도적 다수(64.8%)가 고용주(14.7%)와 상사(50.1%)로 권력관계 상위에 있었다. ‘안희정 사건’에 대한 1심 재판부(서울서부지방법원 형사합의 11부, 부장판사 조병구)의 무죄 선고에 여성들이 ‘여성에게 국가는 없다’며 사법부를 비판하는 대규모 집회를 연 것은 ‘범죄화’해야 할 영역을 ‘비범죄화’한 국가에 대한 절망이 반영됐다.

범죄와 비범죄의 경계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은 2003년 출간해 최근 전면개정판을 낸 (박영사)에서 판례 분석은 대법원 판결 이후로 미루면서도 1심 판결의 한계를 간단히 짚었다. “1심 재판부는 ‘위력’ 여부에 대한 ‘종합 판단’을 하면서 피해자의 진술에 신빙성이 부족하다고 판단하였는바, 통상의 성폭력 범죄 재판에서의 문제점인 재판 과정에서 피고인보다는 피해자가 더 의심받는 현상이 발생하였다. …재판부가 ‘저항’ 여부를 유무죄 판단의 중요한 근거로 삼았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강간죄 관련 대법원 판결의 변화와 배치된다.”

‘위력’ 개념을 강간죄 판례보다도 좁게 해석해 처벌 영역을 축소한 안희정 1심 재판부가 성폭력을 더 광범위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비동의간음죄’ 논의를 촉발했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서울서부지방법원은 선고 당일 보도자료를 통해 안희정 사건은 ‘위력 성폭력’ 사건이 아니며 ‘비동의간음죄’가 있을 경우 해당 규정을 적용할 여지가 있지만, 이는 사법이 아니라 입법의 영역이라고 떠넘겼다. 범죄로 인식되지 않은 성폭력이 비로소 범죄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에서 #미투 운동의 의의를 찾는다면, 안희정 1심 재판 결과가 ‘비범죄화된 성폭력’을 어디까지 ‘범죄화’할지를 화두로 던졌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이 문제와 관련해 전면개정판 은 일종의 ‘답안’이다. 조국 수석은 개정판 머리말에서 “미투 운동이 2017년 미국에서 폭발적으로 전개되고, 2018년 한국에서도 전개되는 양상을 접하면서 전면개정판을 발간하기로 마음먹었다”고 썼다. 형법 연구자로서 조 수석은 2000년대 초반 ‘아내 강간’을 인정해야 한다는 논문을 발표했고, 2002년 한국 최초로 미국의 ‘강간피해자보호법’에 대한 논문을 쓰기도 했다. 이런 연구 성과 등을 반영해 형법체계의 ‘남성 편향’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룬 책이 2003년 펴낸 이다.

일찍이 남성 편향의 형법 체계를 비판해온 형법 연구자의 모범 답안은 뭘까. 그는 현행 강간죄 규정의 해석을 확장하는 방식으로 성폭력 범죄의 범위를 넓히고, 현행법에 규정되지 않은 ‘비동의간음죄’ 신설은 하지 말자고 주장한다. 강간죄 해석 확장은 여성계의 요구와 일치하지만, 비동의간음죄 부분은 2003년 초판이 발간된 뒤부터 지금까지 내내 여성계와 입장을 달리하며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비동의 성교’ 미국은 3급 강간죄

‘최협의(가장 좁은 의미) 폭행·협박설’은 강간죄 유죄 수준의 폭행·협박에 미달하는 강제력을 동원한 강제성교가 ‘무죄’가 되는 ‘비범죄화’ 비판을 끊임없이 받아왔다. “피해자의 거부 의사를 폭행·협박으로 제압하고 성교를 하였음이 확인된 피고인이 형사책임에서 완전히 해방된다는 것은 과소범죄화이다. 사용된 폭행·협박의 정도는 유·무죄가 아니라 양형에서 고려되어야 할 문제이다.”

비동의간음죄 신설 요구는 폭행·협박이 수반되지 않으나 피해자의 동의가 없는 간음 행위를 처벌하지 않는 또 다른 공백을 메우려는 노력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자료(제20차 젠더와 입법포럼 ‘#미투 입법 과제’)를 보면 #미투 운동 국면에서 발의된 5건의 형법 개정안 가운데 4건은 비동의간음죄를 신설하자는 법안이다. ‘폭행이나 협박’만 규정된 현행 강간죄 구성 요건에 비동의 요건(‘사람의 의사에 반하여’ 또는 ‘상대방의 명백한 동의가 없는 상태에서’)을 추가하거나 비동의 요건만 남기자는 내용이다. 기존 강간죄는 그대로 두고, ‘동의 없이 사람을 간음한 경우’를 규정한 ‘비동의간음죄’를 신설하자는 방안(천정배 의원 대표 발의)도 있다. 미국 뉴욕주와 워싱턴주의 형법은 비동의 성교를 3급 강간죄로 규정한다. 조 수석은 역시 ‘경(輕)한 강간죄’를 신설하는 방법을 제안한다.

반면 조 수석은 ‘비동의간음죄’ 신설에는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여성의 ‘동의’ 여부가 범죄 성립의 관건인데 이를 입증하는 것이 쉽지 않고 더불어 “성교에 대한 동의에 대한 판단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1990년대 초반 성폭력처벌법이 입법될 때부터 비동의간음죄에 대해 제기된 우려였다. 최근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으로 자리를 옮긴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994년(당시 경원대 법학과 교수) 당시 이렇게 지적했다. “(비동의간음죄와 관련해) 동의의 개념이 포괄적이고 애매하지 않는가 하는 점이 있다. 그러나 형법에서 이런 정도의 불확정 개념은 매우 많다. 가령 촉탁 또는 승낙, 폭행, 음란, 위계 또는 위력 등. 이러한 개념은 해석론을 통해 판례를 통해 구체화되어지는 것이다.”

조 수석은 또 비동의간음죄가 “남성의 자기통제를 요구하고 여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는 여성의 의지와 능력을 폄하하는 것”이며, “폭행·협박·위력 등이 사용되지 않은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의 경우에도 피해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 무조건 형법이 동원되어야 한다는 것은 오히려 여성주의의 ‘적’인 가부장주의의 관념의 산물일 수 있다”고도 했다. 이에 대해선 2006년 형법 개정을 위해 만든 여성인권법연대에서 활동한 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당시 한국외대 법학과 교수)의 지적이 맞선다. “동의 없는 성적 행동을 처벌함으로써… 여성이… 나약한 존재로 상정되는 것이 아니라, 남성 중시의 성담론과 해석에 의하여 여성의 언어와 의사가 왜곡되어 해석되는 현실에서 자신의 No(거부 의사)가 그 진정성을 의심받지 않으면서 No로 존중될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법적 자원을 제공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여성인권법연대 토론회 자료집, 2007)

과잉범죄냐 과소범죄냐

비동의간음죄가 기존에 과소범죄화된 성폭력 범죄를 정상화하는지, 아니면 과잉범죄화인지를 놓고 논쟁은 계속될 것 같다. 특히 피해자가 동의를 사후에 비동의로 뒤집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우려(“합의 성교 후 관계가 나빠져서 ‘비동의간음’이었다고 고소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충분히 예상된다”)는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5월 한국여성정책원의 ‘#미투 입법 과제’ 포럼에서 발제된 장다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내지 동의가 없는 성적 침해의 범위를 확정하기 위해서는 비동의 요건의 규정 방식, 법정형의 설정, 유형력 내지 무형의 지배력과의 체계, 비동의에 대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 및 피고인의 고의에 대한 판단 기준에 대한 설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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