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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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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장사하는 삶

출판편집자의 솔직담백한 인터뷰 <출판하는 마음>
등록 2018-05-29 22:33 수정 2020-05-03 04:28

처음 출판사에 입사한 것이 2005년 12월이니, 이제 만 12년하고도 6개월이 지났다. 어느덧 13년차 출판편집자(12월부터 시작했으니 햇수로는 14년!). 여전히 책 만드는 게 어렵고 실수투성이다. 과연 이 길이 내 길인가 묻고 또 묻기만 벌써 몇 년째인지. 특히 책을 너무나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열등감은 경력이 쌓여도 사라질 줄 모른다.

사실 나는 어쩌다보니 편집자가 된 경우다. 인문학부에 입학해 철학을 전공하던 시절 막연하게나마 대학원 진학과 학자로의 전망도 모색해봤지만, 이내 ‘진학보다 취업’을 선택했다. 얼마간의 언론사 지망생 시절을 거쳐 이런저런 공채 사이트를 전전하다 만난 게 어느 대기업 계열사의 ‘편집 직군’이었고, 그제야 ‘편집자’라는 직업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운 좋게 그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기자나 PD가 되고 싶었던 건 ‘세상을 공부하면서 월급도 받는 일’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는데, 막상 출판편집자가 되고 보니 이 일이야말로 그랬다. 어떤 면에선 더 깊이 공부할 수도 있고, 일상의 안정성(적어도 집 밖에서 잠들 일은 거의 없었으니까)에서도 훨씬 나았다. 물론 상대적으로 낮은 급여나 경우에 따라 근로기준법에서 벗어난 노동환경 등의 문제는 있었다. 거기다 매년 갱신하는 ‘단군 이래 최악’이라는 출판시장의 상황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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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였을까? 주변에는 ‘월급 따박따박 나오는 좋은 직장’이어서 다닌다는 사람은 드물었고 ‘책이 너무 좋아서’ 이 일을 한다는 사람이 많았다. 그들은 늘 좋은 책, 매력적인 작가 이야기를 했고, 앞으로 어떠어떠한 책을 내고 싶다며 행복해했다. 그럴 때면 나 역시 그런 듯 맞장구쳤지만, 한편으론 어딘가로 숨고 싶었다. 내가 과연 이 사람들 사이에서 책을 만들어도 되나 하는 의문과 함께.

(은유 인터뷰집, 제철소 펴냄)을 읽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 건 이 책이 나의 그런 열등감을 다시 한번 건드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출판하는 마음은 얼마나 뜨겁고 또 진지할 것인가. 하지만 결국 집어들었다. 언제까지 피할 수도 없고, 영 그렇게 괴롭기만 하다면 이참에 판을 뜨면 될 것 아닌가 하는 마음으로.

이 책에서 유독 자주 나오는 ‘장사’라는 단어 때문이었을까? 책을 읽고 난 지금 내 마음은 오히려 홀가분하다. 인터뷰어가 각기 자기 자리에서 엄숙주의를 깨고 다른 사람과 더 많이 공감하고 소통하고 싶은 마음으로 분투하는 모습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더 뜨겁고 진지한 마음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각자 출판하는 마음이 있을 뿐이라는 생각도 든다.

“삶이 바뀐다는 것. 만나는 사람이 바뀌고 돈 쓰는 데가 달라지는 일이다.” 이렇게 쓰인 서문의 문장이 새삼 떠오른다. 책동네 사람을 만나고, 책에 돈을 쓰는 삶. 아직은 바꾸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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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회엽 원더박스 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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