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우정 검찰총장이 2025년 3월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한겨레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윤석열 탄핵은 내란사태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점이어야 한다. 더 나은 한국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성찰과 방향, 밑그림, 과제 등에 대해 진보적 필자들의 연속 기고를 싣는다._편집자
평온했던 일상이 무너졌다. 겨울이 지나고 다시 봄, 여느 때와 같이 꽃이 피고 프로야구는 개막했지만 아직도 꽁꽁 얼어붙은 세상은 언제 녹을지 알 수 없다. 프로야구 응원가로 귀를 씻고 싶지만, 아무리 애쓰고 막아보려 해도 그날의 충격적인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북한 공산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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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이후였다. 차마 입에 올리기 어려웠던 개소리들의 향연이 시작됐다. 이번 계엄령은 국민을 일깨우기 위한 계몽령이었다는 말장난은 기본이고, 대통령의 비상조치는 사법심사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유신헌법 제53조 제4항이 아직도 살아 있는 현행 헌법 조항처럼 읊조려졌다. 비상계엄 당일 계엄군이 미군과 공동작전으로 선거연수원을 급습해 중국 국적자 99명의 신병을 확보했다는 식의 개소리 뉴스는 외국인 혐오 정서에 기름을 붓고 있다.
혼란은 언제나 있었다. 범죄자와 그를 옹호하는 세력들의 개소리도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시민들은 이런 혼란을 대비해 범죄자를 붙잡아 단죄하고 감옥에 가두는 권한을 국가기관에 일임했다. 경찰, 검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법원이 바로 시민들로부터 권한을 받은 국가기관들이고, 서로 협력해 일사불란하게 이 혼란을 잠재우는 것이 그들의 존재 이유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가 목도하는 건 혼란을 잠재우는 그들의 유능함이 아니라 내란범 윤석열을 풀어주는 무모함이다.
12·3 비상계엄 이후 전 국방부 장관 김용현부터 내란에 가담했던 군인, 경찰들이 줄줄이 구속돼 재판에 넘겨졌다. 대통령이라는 신분을 유지하고 있던 윤석열은 경호 방패를 이용해 체포영장 집행을 막아서려고 했지만 2025년 1월15일 체포영장이 집행됐고, 1월26일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기소됐다. 그러나 3월7일, 법원은 지난 70년 동안 시간이 아닌 날짜로 계산했던 구속 기간의 계산방식이 틀렸다며 구속 취소 결정을 했고, 검찰은 27시간 만에 법원의 결정을 존중한다며 즉시항고를 포기했다. 이렇게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은 체포 52일 만에 풀려났다.
지금껏 70년 동안 수많은 범죄자를 붙잡아 단죄하고 감옥에 가둘 때 적용되던 그 기준이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 앞에서 갑자기 멈췄다. 그래서 우리는 이 불편한 질문들과 맞서게 된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한가? 만 명한테만 평등한 것이 아닐까?” “검찰과 법원은 우리가 맡긴 그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나?” 특별히 즉시항고를 포기해 윤석열을 풀어준 검찰에 대한 불신이 다시금 새록새록 피어나고 있다. 김성훈 경호처 차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과정에서 보여준 검찰의 나태함도 불신을 가중하고 있다. 그리고 다시 이 구호가 등장했다. “검찰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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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기계처럼 작동됐던 즉시항고, 재항고, 항소, 상고가 전 검찰총장인 윤석열 앞에서 멈춰선 것을 보며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검찰은 원래 그랬다. 2019년 라임사태 주범인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서울남부지검 근무 검사 3명을 불러 술접대를 한 사건에서도 검찰은 검사 2명이 그날 밤 11시 이전에 귀가했기 때문에 밴드와 유흥접객원 추가비 55만원은 접대 금액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처벌금액 기준인 100만원에서 약 4만원 부족한 96만2천원 상당의 접대를 받은 것으로 정리했다. ‘검사님들을 위한 99만원짜리 불기소 세트’라는 풍자 포스터가 등장했다.

‘검사님들을 위한 99만원짜리 불기소 세트’라는 풍자 게시물. 온라인 커뮤니티
2013년 3월, 대전고검 김학의 고검장이 제55대 법무부 차관으로 취임했다. 취임 직후, 별장에서 성접대를 받는 동영상에 나온 인물이 김 차관이라는 의혹이 일었고, 경찰은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동영상 속 인물은 김 차관이라고 확정한 뒤 특수강간 등의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송치했지만, 서울중앙지검은 불기소 처분을 했다. 동영상 속 여성의 신원을 특정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2014년 7월 피해 여성의 고소로 2차 수사가 진행됐지만 검찰은 재차 불기소 처분을 했다.
2016년 11월7일 조선일보 1면에 등장한 ‘우병우를 대하는 검찰의 자세’란 사진 기사도 공분을 일으켰다. 검사실에서 조사받던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팔짱을 낀 채 여유 있는 표정을 짓는 반면 검사와 검찰 직원은 일어서서 앞으로 손을 모은 공손한 자세로 우 전 수석의 얘기를 듣는 장면을 담고 있어서다. 전직 검사 우병우에 대한 검찰의 이례적인 저자세를 보면 전직 검찰총장 윤석열에 대한 검찰의 이례적인 즉시항고 포기도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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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식구 감싸기’라는 검찰의 카르텔을 혁파하기 위한 검찰개혁은 문재인 정부의 국시였다. “노 전 대통령이 뛰어내린 바로 전날 10만원권 수표가 입금된 거액의 차명계좌가 발견되지 않습니까. 그거 때문에 뛰어내린 겁니다.” 2010년 3월31일 당시 서울지방경찰청장이었던 조현오는 경찰기동대 대상 특강에서 이렇게 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유족은 사자명예훼손죄로 조현오를 검찰에 고소했다. 그러나 수사는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고 당시 노무현재단 이사장이었던 문재인은 서울중앙지검 문 앞에서 1인시위를 했다.
검찰청 앞 1인시위자가 대통령이 되어 이끄는 검찰개혁이라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까? 문재인 정부에서 검찰개혁을 국정과제로 거론하며 개혁을 추진했을 때 시민들은 큰 기대감을 걸었다.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만 되면 세상만사 다 해결될 것 같았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비대해진 검찰 권력의 슬림화’다. 검찰이 부여받은 권한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으니 다이어트가 필요하다는 처방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다이어트 과정에서 흔하게 겪는 요요현상처럼 문재인 정부에서 진행한 검찰 권력 다이어트도 심각한 요요현상을 겪었다. 검수완박은 입법과정에서 검수덜박(검찰 수사권 덜 박탈)으로 퇴색됐고, 윤석열 정부에 와서는 검수완복(검찰 수사권 완전 복원)으로 변질됐다. 검찰 권력 다이어트로 그 권력을 나눠 가진 경찰은 뭘 잘못 먹어 체한 듯 심각한 수사 지연을 초래하고 있고 새로 권력을 가진 공수처는 이번 내란죄 수사에서 보여주듯 본인들이 가진 권력을 어떻게 행사해야 할지도 모르는 듯 우왕좌왕의 연속이다.
국민 대다수 동의를 받고 추진했던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은 왜 성공하지 못했을까? ‘검찰 권력을 축소하기만 하면 검찰개혁은 다 이루는 것이다’라는 식의 생각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검찰의 비대한 권력을 분산해 경찰이든 공수처든 나누자는 논의만큼 중요했던 과제들, 검찰 권한의 핵심인 기소권과 영장청구권에 통제장치를 두는 것, 검찰의 높은 문턱을 낮춰 시민들이 쉽게 검찰 서비스를 이용하게 하는 과제들은 아예 놓쳤다. 시민의 삶과 동떨어진 개혁의 동력은 심각하게 꺾였고 검찰개혁은 시민들에게 피로감을 주는 주제로 전락했다.
프랑스 철학자 폴 발레리는 이렇게 말했다. “할 일은 오직 한 가지뿐이다. 다시 시작하는 일이다. 그건 간단한 일이 아니다.” 검찰이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아닌 ‘제 식구 감싸기’를 앞세워 내란 우두머리인 전 검찰총장 윤석열을 풀어주는 장면을 목도한 우리가 할 일 또한 오직 한 가지뿐, 다시 시작하는 일이다. 그러나 그건 간단한 일이 아니다. 검찰개혁은 피로감을 주는 주제가 돼버렸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유불리에 따라 검찰 권력을 여기저기 붙이고 떼었다를 반복한다고 해서 검찰이 개혁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했다. 그렇다고 검찰 조직의 셀프 개혁을 주문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다시 마주친 불편한 질문들을 떠올려본다. “검찰과 법원은 우리가 맡긴 그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나?” 그리고 이 질문을 이 생각으로 옮겨본다. 이제 누가 차려주는 밥상은 걷어차고, 시민인 우리가 스스로 밥상을 차려보면 어떨까?
내 권한을 누군가에게 위임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내가 신뢰한 그 사람이 그 권한을 남용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내가 직접 할 수 없기에 누군가에게 위임한다면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힐 일’이 없도록 안전장치를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 우리는 범죄자를 구금할 수 있는 영장청구권, 범죄자를 재판에 넘기는 기소권을 검찰에 맡겼다. 국가의 형벌권을 좌지우지하는 힘을 검찰의 손에 쥐여준 것이다. 그런데 이번 윤석열 석방 과정에서 알 수 있듯이 그 막강한 권한에 대한 견제장치는 전무하다.
2022년 4월 검찰수사권이 더 축소될 위기에 봉착하자 당시 김오수 검찰총장은 국회의장을 만나 ‘검찰 수사 공정성과 인권보호를 위한 특별법’을 국회에서 제정해달라고 제안했다. 그가 제안한 그 방안에는 현행 검찰수사심의위원회(심의위)의 위상을 강화하자는 내용도 있었다. 일정 수 이상의 위원이 찬성할 때는 수사팀이 심의위의 결론을 따르도록 하는 권한(기속력)을 부여하며 심의위 소집요청권자를 국회 법제사법위원장과 법무부 장관, 대한변호사협회장까지로 확대하고 심의 대상도 수사 착수 여부까지로 확대하자는 것, 또 심의위를 정례화해 국민이 참여하는 기소 대배심처럼 운영하는 내용까지 담겼다.
기소 대배심(Grand Jury)은 영국에서 시작된 것으로 범죄소추 절차를 정식으로 밟기 전에 시민들이 먼저 심리함으로써 소추권을 가진 왕의 전횡을 막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미국은 1791년 미국 수정헌법 제5조 중범죄에서 기소 배심에 의한 소추를 명문화했다. 우리에게도 기소 대배심 같은 검찰 견제장치가 있었다면 검찰의 이례적 즉시항고 포기에 따른 윤석열 석방을 막아낼 수 있었을 것이고, 검사님들을 위한 99만원짜리 불기소 세트, 성접대 혐의를 받은 김학의에 대한 불기소 처분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2008년 1월1일 시민이 배심원으로 형사재판에 참여하는 국민참여재판이 시작됐다. 부작용에 대한 여러 걱정도 있었지만 나름대로 잘 정착되어 사법제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검찰이 독점한 영장청구와 기소 여부 결정에도 시민들의 참여가 반드시 필요하다. 원래 영장청구권과 기소권은 검찰이 아니라 시민의 권한이었기 때문이다.
최정규 변호사(법무법인 원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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