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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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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발 귓방망이와 장군의 도시락

막국수·수육 일품인 강원도 양양 실로암막국수
등록 2017-07-25 21:23 수정 2020-05-03 04:28

처자식 없이 출장을 그것도 꿀피서지라니. 잠이 안 올 만했다.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뭘 먹고 뭘 할지 머릿속이 분주했다. 아싸~ 무조건 첫날은 실로암막국수고, 회가 빠질 수 없겠지. 강원도 속초가 고향인 샴쌍둥이 선배(제962호 ‘한낮 냉면대첩과 한밤 난장캠핑’ 참조)에게 횟집을 추천받아야겠다고 생각하는데 뜨듯한 족발이 귓방망이를 때렸다. 안방 침대에서 거꾸로 자고 있던 아들 녀석의 발바닥이 내 얼굴을 덮친 것이다. 아놔~. 아주 가부장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구나~. 넌 언제까지 안방에서 자냐? 아들 녀석은 방귀까지 뀌어댔다. 냄새가 바닥의 내 쪽으로 왔다. 도대체 뭘 먹은 거냐? 헬리코박터 좀 먹어야 하는 거 아니니? 우리 엄마가 이 사실을 알면 잠을 못 이루시겠지~. 아들 녀석은 마지막 피식~ 가죽피리로 웃었다. 우선 자야 한다~.

이튿날 신나게 밟아 도착한 강원도 양양은 날씨마저 짱짱했다. XYZ는 곧장 양양공항 근처 실로암막국숫집으로 향했다. 예전 가게 바로 옆 번듯한 건물로 확장 이전한 실로암엔 손님이 북적였다. 수육과 묵은지, 물막국수, 동동주를 주문했다. 운전하는 Z를 제외하고 본격적으로 음주 바캉스에 돌입했다. 실로암막국수는 동치미국물로 만들어 시원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수육은 차진 육질로 부드럽기 그지없다. 묵은지에 수육을 싸서 소주와 줄창 먹었다.

문득 몇 해 전 양양으로 같이 여름휴가를 온 식범이(별명)가 떠올랐다. 그때도 여기에 왔더랬다. 지금은 머리 다 날아가고 배만 나온 치킨집 사장님이지만 중3 때 단짝 식범은 까만 피부에 호남형 얼굴, 타고난 운동신경으로 지역사회 여중생들에게 이름을 날렸더랬다. 옆에 있으면 콩고물이라도 떨어질까 그랬을까. 녀석과 짝꿍이 돼서 좋았던 기억도 난다. 식범의 10대 훈남 시절 사진을 본 와잎 왈 “식범 오빠 한약 잘못 먹었어? 아님 그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근데, 본인도 살찌는 한약 잘못 먹은 거 아니니?

녀석의 아버지는 예비군 중대장이었다. 도시락을 빠뜨리면 개구리 군복에 레이밴, 지휘봉까지 풀 세트로 장착하고 학교에 오셔서 교실 앞에서 식범에게 도시락을 건네주곤 했다. 아버님~ 여기서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지나가던 학생들이 새 교련 선생인 줄 알고 인사하면 장성급 거수경례로 받아주셨다. 녀석은 그런 아버지를 창피해했던 것 같다. 까만 얼굴에 농구를 잘해 조던으로 불린 녀석은 군인 아버지의 출현으로 ‘장군의 아들’로 별명이 바뀌었다.

군인 아버지를 따라 어릴 때 강원도에서 살았다던 식범이에게 문자라도 넣어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와잎에게 잘 도착했냐는 톡이 왔다. “응, 지금 도착해서 식당 왔어”라고만 답했다. 실로암이라고 밝히면 당장이라도 뛰쳐올 와잎이니까. 톡 보내는 사이 수육이 급격히 사라졌다. 먹깨비들이 따로 없었다. 기자님들~ 얘기 좀 하면서 드세요~. Z가 말했다. “여기 막걸리 한 병 더 주세요~, 열무김치도요~.” 남은 수육 먹느라 정신없는데 와잎의 톡이 왔다. “이따 전화 좀 해~ 할 얘기 있어~” 뭐지? 갑자기 수육이 목에 걸렸다. 엄청난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었다. To be continued.

양양(강원)=X기자 xreporter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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