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G(오 마이 갓)!
출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바지를 입고 남방 단추를 채울 때였다. 꾸르륵. 가스가 차올랐다. 괄약근의 긴장을 해제해 힘을 주고 가스를 배출했다. 헉. 짐작대로라면 방귀가 나왔어야 했다. 뜬금없이 뜨거운 점액질이 엉덩이 사이로 삐져나왔다. 망할. 지렸다. 방귀 끝에 똥 나온다는 옛말이 하나도 틀린 게 없었다. 황당하고 당황스러웠다. 방금 화장실을 다녀온 참이었다. 아놔~. 먹다 남았다며 어젯밤 와잎이 건네준 우유 때문인가, 저녁에 먹은 낙지볶음 때문인가, 아님 벌써 치매가 온 것인가. 오만 생각이 오지게 스쳤다. 그 찰나의 순간에도 용암 같은 액체는 팬티로 돌격하고 있었다. 안 돼~. 원인규명보다 응급처치가 먼저였다. 정말 ‘오지고 지리고 렛잇고’인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대로 엉거주춤 화장실로 가다간 와잎과 마주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술 먹을 때마다 날 놀릴 것이 뻔했다. 이걸 어쩐담.
배출된 마그마를 살살 달래며 살금살금 화장실로 가는데 안방문을 열고 나오는 와잎과 마주쳤다. “왜 그래? 뭐여, 똥 싼 거야?” 와잎은 귀신이었다. “아냐, 다리에 쥐가 나서 그래~”라고 둘러댄 뒤 화장실로 숨어들었다. 사태를 확인하니 마그마는 팬티를 넘어 내복 바지까지 침투해 있었다. 기민했다. 볼일을 보고 팬티와 내복을 빨았다. 화장실 문에 귀 대고 있던 와잎이 밖에서 소리쳤다. “뭐해~. 팬티 빠는 거 아냐? 아이고, 살다살다 별일을 다 겪는구만. 치매 온 거 아녀? 내는 벽에 똥칠하면 몬 산대이~.” 아주 아파트 입구에 방이라도 붙이지 그러니~. 그나저나 “네가 준 우유 마셔서 그런 거 아냐~”라고 대꾸했더니 와잎 왈. “우유 먹고 이빨 쑤시는 소리 하고 앉았네~. 나도 먹었는데 아무 이상도 없더만~. 장이 그렇게 안 좋아서야.”
난 ‘장안의 화제구만~’이라는 말장난을 하고 싶었지만 꾹 참고 내복이나 빨았다. 그날 이후 와잎은 그 일을 빌미로 날 부려먹었다. “집에 맥주 없는데 들어올 때 수입맥주 좀 사와.” “떡볶이 먹고 싶은데 좀 사오지~.” 내가 저항할 때마다 동네 엄마들이 모인 단톡방에 폭로하겠다고 했다. 악, 이 악랄한 와잎아~. 남편 찜쪄먹는 ‘좌닌한’ 여자야~.
지난 주말, 와잎이 말했다. “(신)민아랑 남성역 봉평메밀막국수 가려는데 술시중 좀 들지~.” 와잎의 동네동생(?)인 신민아님은 이름처럼 연예인급 외모에 맘씨도 착한 여신님이었다. “난 아싸~” 하며 옷을 챙겨 입었다. 신민아님은 어린 남매를 데리고 식당에 먼저 와 있었다. 봉평메밀막국수는 정갈한 강원도 음식으로 동네에서 이름을 얻은 곳. 달큰한 막국수와 차진 수육이 일품이다. 와잎은 “늘 먹던 거를 달라”며 수육과 메밀전, 막국수, 소맥을 주문했다. 신민아님에게 재미진 얘기를 해드리려는 순간, 아들 녀석과 남매가 식당을 뛰어다녔다. 와잎이 말했다. “애들 데리고 나가서 좀 놀다와~.” 야~, 나도 같이 마시고 싶다고~ 라고 눈빛으로 말했지만, 와잎은 ‘오지게 지린 거 말한다~’라는 표정이었다. 결국 난 애들을 데리고 동네 완구점을 전전했다. 날은 춥고 배는 고팠다. 아니 배가 아픈 것도 같았다. 근데 난 왜 이 얘길 내 입으로 쓰는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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