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쭈구리~.
지난 금요일, 고향 친구 쭈구리(별명)가 전화했다. 경기도 일산에 사는 녀석은 서울 나오는 길에 새해맞이 얼굴이나 볼 겸 연락했다고 했다. 예전에도 이 지면에 쭈구리를 팔아먹은 적 있지만, 나만 기억할 탓에 간략히 녀석의 캐릭터를 소개한다.
학창 시절 녀석은 자신이 듀스의 김성재를 닮았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성재는커녕 성게 아니냐며 녀석 이름에 ‘주’자가 들어간다는 이유 하나로 쭈구리라 불렀다. 쭈구리는 어쭈구리, 씹쭈구리, 개쭈굴, 어쩔쭈구리 등으로 다양하게 버전업됐다. 쭈구리가 전화하면 ‘어~ 쭈굴, 개쭈굴, 씹쭈굴, 어쩔쭈굴’ 등으로 랩을 하느라 정작 대화는 나누지 않고 끊은 적도 많았다.
사람은 불리는 대로 변한다는 걸 쭈구리를 보고 알았다. 녀석을 쭈구리라고 부르자 쭈구리는 진짜 쭈굴탱이가 돼갔다. 쭈구리가 식상해진 친구놈들은 팔다리는 가늘어지고 배만 볼룩 나온 쭈구리를 미드 <x>에 나온 ‘늪지인간’이라 놀렸다. (영화 골룸을 그때 알았다면~.) 무엇보다 늪지인간은 못 말리는 ‘패션(Passion)피플’이었다. 어머니의 성화로 노량진에서 재수하던 녀석은 주말마다 고향에 내려갔는데 그때마다 외출룩이 가관이었다. 한여름 쪄죽는 날씨에도 닉스(짝퉁) 청바지에 위에는 리바이스 흰색 면티를 받쳐입고 그 위에는 라코스테(역시 짝퉁) 피케셔츠를 껴입었다. (안 덥니? 추위 타니?) 김정은처럼 옆머리를 바짝 민 쭈구리는 헤어스타일을 연출하는 데도 30분 넘는 시간을 소비했다. 압권은 모자였다. 스프레이로 떡칠한 머리에 꼭 ‘세무(스웨이드)모자’를 썼다. 마치 목욕탕 갈 때도 머리에 젤 바르고 가는 고향 친구 ‘남근육봉’(별명)처럼. 실제 둘은 ‘쩔친’이다.
어느 날 하숙집 세탁기에서 피케셔츠를 꺼내보니 악어가 탈출했다. 도망친 악어는 세탁기 바닥 회전날개에 이빨이 걸려 신음하고 있었다. 쭈구리는 울먹이며 악어를 구조한 뒤 한땀 한땀 치료를 해줬다. 그날 이후 녀석의 라코스테는 ‘크로커다일’로 불렸다. 악어의 입은 아래를 향했지만 녀석은 괘념치 않았다.
녀석의 식성도 유니크하긴 마찬가지였다. 얼굴은 이것저것 다 주워먹게 생겼지만 회와 해물, 심지어 마른오징어도 못 먹었다. 쭈구리가 온다고 말했더니 와잎은 “아싸~ 한돌참치 가서 참치회 먹자~”고 했다. 옆의 아들 녀석도 ‘알밥’을 외쳤다~. 아주 알만 하구나~. 쭈구리의 식성을 말해도 와잎은 “그래서 참치회지~, 내가 다 먹음 되니까”라고 대꾸했다. 아주 누가 와도 참치회를 먹을 작정이었구나~. 니 친구니?
쭈구리는 어디든 괜찮다고 했다. 어쭈구리~. 이제 회도 잘 먹는다고 했다. 어쩔쭈꾸리~. “집사람이 와잎님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 그러곤 “메뉴는 상관없으니 니네 부부가 술 좀 마셔줘. 집사람이 술 좀 하거든”이라고 덧붙였다. 난 “우리 와잎만큼 마시겠냐”며 “팬이라는 건 비밀로 해야 한다”고 일렀다.
토요일 저녁, 처자식과 함께 남성역 한돌참치로 향했다. 한돌참치는 프랜차이즈지만 리필 없이 저렴한 가격에 참치회를 맛볼 수 있는 곳. 와잎은 “가즈아~”를 외쳤다. 나 몰래 비트코인 하니? 가게엔 쭈구리네 식구가 먼저 와 있었다. 내년에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쭈구리의 딸내미는 다행히 아빠를 닮지 않았다. 정겹게 인사를 나눈 뒤 애들은 애들끼리 놀라 하고 본격 부부동반 음주일합을 벌였다. 서로 소맥으로 탐색전을 벌이던 아내들은 이내 소주로 주종을 바꾸며 자웅을 겨뤘다. 와잎은 간만에 술친구를 만났다며 연신 소주를 주문했다. 불콰해진 제수씨는 원래 언니 팬이었다며 연신 술을 따랐다. 오 마이 갓~. 와잎은 아직도 자신의 인기가 식지 않았다며 하하하 호탕한 웃음을 지었다. 에바참치꽁치~ 같으니라고. 공포가 밀려오고 있었다. 의형제라도 맺을 기세로 술을 들이부은 두 와잎 덕에 술자리는 우리 집까지로 이어졌다. 회를 못 먹어 공복인 상태에서 두 와잎의 강권에 소주만 내리 마신 쭈구리는 어느새 ‘고추장 쭈꾸미’로 변해 있었다.
X기자 xreporter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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