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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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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폭탄급 주적과 뚜껑 열린 상또라이

푸짐해서 좋은 청석골 감자탕
등록 2017-11-07 15:47 수정 2020-05-03 04:28
X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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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데리고 남편 시댁 가서 소팔이 혼자 놀러 온대~. 노량진에 아는 감자탕집 있다는데 거기서 보재.” 누가 보자고 했니? 너 혼자 보면 안 되니? 연휴의 시작, 느닷없이 ‘진돗개 2호’가 발령됐다. 적의 국지적 도발이 예상된다. 와잎의 친구 소팔(별명·제855호 ‘머리끄덩이와 엘레강스 사이’ 참조)이는 와잎과 자웅을 겨루는 주적(酒敵). 피난 가기엔 늦었다. 결사항전이다. 아 놔~, 왜 토요일에 쳐들어오고 난리야~.

우리는 오후 늦게 노량진으로 향했다. 아들 녀석은 뼈해장국을 먹겠다고 했고 와잎과 소팔이는 감자탕 타령을 하고 있었다. 술은 얼마나 드시려나~ 감자탕 대자와 모둠순대 등으로 도발은 시작됐다. 감자탕은 고기가 퍽퍽해 실망스러웠지만 푸짐했다. 소팔은 집에서 가져온 국산 양주를 꺼내 소맥에 섞었다. 핵폭탄이었다. 김정은이 따로 없었다. 난 소맥으로 수세적으로 대응했다. 진격의 속도를 늦추기 위해 화제를 10여 년 전 소팔-개아범 전화테러 사건으로 돌렸다.

인터넷 쇼핑이 막 뜨기 시작한 그즈음. 결혼 전 와잎은 소팔이와 인터넷 쇼핑몰을 부업으로 한다고 알아보고 있었다(카드값을 어떻게든 막아보려는 얕은 수작이었다). 이미 옥*과 지**에서 운동화와 야상점퍼를 팔고 있던 친구 개아범(별명·제920호 ‘팔선녀의 지령과 주폭마누라’ 참조)이 떠올라 와잎에게 일러줬다(개아범은 나름 선구적인 데가 있었다). 와잎은 “개아범 오빠가 그런 재주가 있어?”라며 소팔이와 함께 개아범을 만났다. 개아범은 돈도 안 받고 노하우를 전수해줬다고 공치사를 했다. 거기까지는 미담이었다.

그러고는 얼마 뒤 소팔이는 인터넷에서 운동화를 샀다. 근데 막상 받아보니 제품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소팔이는 반품 요청을 했다. 며칠이 지나도록 처리되지 않자 뚜껑이 열렸다. 게시판에 항의 글을 남기는 것으로 진상손님 코스프레에 시동을 걸었다. 그래도 연락이 없자 휴대폰을 들었다. ‘인터넷 운동화’라고 돼 있는 번호로 다짜고짜 전화를 걸었다. “지**에서 운동화 파는 분이죠?” “네, 그런데요?” “아니, 반품 요청을 했는데 왜 며칠째 연락이 없죠? 장사 이딴 식으로 할 거예요?” “반품하셨다고요? 성함이?” “박소*요.” “그런 이름 없는데요?” “지금 장난하나? 3일 전에 신청하고 답 없어서 게시판에 글도 남겨놨고만~.” 소팔이는 여기까지 말하는데 갑자기 식은땀이 흘렀다고 했다. ‘목소리가 귀에 익다고 생각했는데 아뿔싸~’ “주문자에도 성함이 없는데~”라는 얘기를 듣는 도중 소팔이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알고 보니 자기가 전화한 건 인터넷 쇼핑의 노하우를 알려준 개아범 오빠였던 것이다. 처음 와잎에게 소개받을 때 휴대폰에 인터넷 운동화라고 저장한 게 화근이었다.

소팔이는 곧바로 와잎에게 전화를 걸어 이를 어쩌면 좋냐고 했고 와잎은 내게 상의했다. 난 ‘상처난 마음을 달래줘야 한다’며 개아범에게 고자질했다. 개아범은 “어쩐지 이름도 없는데 자꾸 반품했다고 난리 치더니 곧바로 끊더라”며 “별 상또라이 같은 미친*을 다 보겠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고 말하는 순간, 와잎과 소팔이는 러브샷을 하고 난리 부르스를 추고 있었다. 사태는 국지전에서 전면전으로 확전됐다. 핵전쟁은 새벽 2시에야 끝이 났다.

X기자 xreporter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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