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은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다. 밥맛이 없을 때, 또는 지난밤에 지나치게 술을 마셔 속이 쓰릴 때, 또는 입이 심심할 때, 나는 라면을 끓여 먹는다. 파를 조금 썰어 넣고, 때로는 달걀을 깨 넣거나 하여 먹는다.”
전집 (문학과지성사 펴냄)에 실린 글 ‘라면 문화 생각’에서 문학평론가 고 김현 선생은 라면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단출한 문장에 담아 표현했다. 평론을 읽을 만한 독립적인 콘텐츠로 만든 최초의 스타일리스트치고는 문장이 검박했다. 이 글을 읽었을 때, 라면이 먹고 싶어서였을까, 아니면 라면이 먹고 싶은 이유의 보편성 때문이었을까. 밋밋한 문장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김현만큼이나 소설가 김훈도 어지간히 라면을 먹었다. 제목부터 라면 애호가를 표방하는 산문집 (문학동네 펴냄)에서 김훈은 라면의 식감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추운 거리에서 혼자 점심을 먹게 될 때는 아무래도 김밥보다는 라면을 선택하게 된다. 짙은 김 속에 얼굴을 들이밀고 뜨거운 국물을 마시면, 콱 쏘는 조미료의 기운이 목구멍을 따라가며 전율을 일으키고, 추위에 꼬인 창자가 녹는다.” 여기저기의 조각글을 묶어 2015년 펴낸 이 책에서 그는 라면을 먹을 때, 라면처럼 ‘세상은 부박(浮薄)하리라는 체념의 편안함’이 마음 깊은 곳을 쓰다듬는다고 썼다. 부박함이고 뭐고 어제 먹은 술이 아직 안 깬 나는 그저 마른침을 삼킬 뿐이다.
지금이야 정크푸드 취급을 받지만 1960년대만 하더라도 라면은 고급 음식 대접을 받았다. 작가 이문열은 자신의 소설 에서 60년대 초 라면 맛에 경의를 표한 바 있다. “노랗고 자잘한 기름기로 덮인 국물에 곱슬곱슬한 면발이 담겨 있었는데, 그 가운데 깨어넣은 생계란이 또 예사 아닌 영양과 품위를 보증하였다. (…) 철은 갑작스레 살아나는 식욕으로, 그러나 아주 공손하게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그때의 주관적인 느낌으로는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맛난 음식을 먹고 있는 듯했다.”( 7권, 문학과지성사 펴냄) 남의 입에 들어가는 귀한 라면 한 젓가락보다 내 입에 들어가는 흔한 라면 한입이 더 존귀하고 지엄한 것을 모르지 않는 난, 컵라면이라도 사서 먹어야겠다고 마음먹을 따름이다.
이쯤 되면 독자들은 궁금할 것이다. 왜 평소 하던 대로 음주추태 이야기로 직진하지 않고 뜬금없는 라면 타령이냐고. 라면 붇는데 흰소리하고 앉았냐고. 몇 안 되는 음주활극 독자들을 만날 때마다 똥 얘기, 오바이트 얘기에 ‘드러워 죽겠다’는 지적을 받았더랬다. 화장실 개그를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라는 걸, 우아한 글쓰기가 안 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보여드리기 위해 우리 부부의 추태 행각 면발을 과감히 덜어내 문향 가득한 문장의 국물을 내놓은 것.(사실 재미는 좀 없다, 그지?)
지난주말, 아들 녀석을 처가에 맡기고 와잎과 오랜만에 신촌에 갔다. 대학 시절, 내 청춘의 허기를 달래준 라면집이 거기에 있었다. ‘훼드라’. 최루탄 라면으로 불린 청양고추가 들어간 해장라면과 푸진 달걀말이에 소주 네댓 병은 너끈했던 곳. 새벽녘, 라면 국물을 들이켜며 “조타~”를 연발하는 와잎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그래도 너라서 다행이야.” 와잎은 뭔 단무지 먹고 트림하냐는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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