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기자
(제1194호에서 이어짐) 필동면옥에서 겨울냉면을 먹은 우리는 인근 노가리블루스로 2차를 갔다. 오징어, 해삼, 멍게 등 신선한 제철 해물 한 접시를 값싸게 먹을 수 있는 필동해물 옆 노가리블루스는 먹태와 짝태 등 마른안주와 생맥주 한잔을 가볍게 할 수 있는 집. 독자님들의 의견을 물어 먹태와 생맥 5잔을 주문했다. “먹태 먹고 먹튀하자”는 내 말장난은 핵진지한 분위기 속에 시나브로 씹혀버렸다. ‘아놔~ 말장난 좀 받아주지~’ 하고 옆을 보니 와잎은 신나게 생맥을 들이붓고 계셨다. 어디서 물 빠지는 소리가 나나 했더니 수챗구멍이니?
남성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한 독자는 “지난해 이 주최한 페미니즘 특강을 열심히 들었다“며 “특히 여성학자 정희진씨의 강연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워마드’의 미러링 등 젠더 이슈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독자님의 열정적인 이야기에 다들 잠자코 듣기만 했다. 난 괜한 말장난을 했다가 ‘한남’(전형적인 가부장 한국 남자) 소리를 들을까 고개를 끄덕이며 그저 먹태를 씹고 있었다. 한참을 잠자코 있던 와잎이 내 귀에 대고 말했다. “근데 젠더가 뭐야? 휴대폰 충전할 때 꽂는 거?” “…(농담이지?)” 내가 지금 이 국면에서 와잎을 비난해도 한남 취급받을까 싶어 난 목젖까지 차오르는 말을 간신히 참고 귀띔했다. “휴대폰 충전하는 거 아니고~, 이따 얘기해줄게.” 내가 젠더를 되물으면 난 영락없는 한남이 됐을 텐데….
와잎은 분위기 전환을 위해 잔을 들면서 “자자~, 놀면 뭐해요~. 한잔씩 하세요~”라고 건배를 권했다. 남성 페미 독자는 “이런 거 원래 남자가 하면 한남인데~”라며 술잔을 들었다. 난 와잎이 남성이 아니고 여성인 것에 감사하면서 안도했다. 다른 독자님들도 반가움에 잔을 들이켰다. 말 못하는 열망을 읽은 와잎은 분위기를 되돌릴 수 없도록 추가 주문에 나섰다. “여기 피처 하나랑 노가리, 그리고 소주 한 병 주세요~.” 와잎은 노가리블루스를 기어이 난리부르스로 만들려는 심산이었다. 난 독자님들에게 눈짓으로 말했다. ‘알아서 먼저 도망가세요~.’ 그날의 페미 특강과 난리부르스의 ‘콜라보’는 새벽 1시까지 이어졌다. 와잎은 택시에 타자마자 말했다. “휴대폰 젠더 챙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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