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아비 얼굴에 발 올려놓고 잘도 자는 무심한 사커야. 아비 얼굴이 축구공처럼 둥글기로서니 발로 차면 쓰나. 그나저나 축구하고 와서 샤워하는 거 같더니만 발은 안 씻었느냐. 술기운인지 족기운인지 무지 혼곤하구나. 네가 태어났을 때 엄마 아빠는 널 어찌 안아야 하는지 안절부절못했다. 네게 세상이 처음이었듯 엄마 아빠도 부모 노릇이 처음이었다. 새벽녘 자다 깬 니가 이유 없이 울어젖히면 들러업고 별짓을 다하곤 했다. 물을 한 모금 머금은 채 혀를 말아 휘파람을 불기도 했다. 울던 아이들이 신기한 파동 때문에 울음을 멈춘다는 글을 어디선가 본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처음 몇 번은 신기해하던 넌 나중에는 이마저도 듣질 않았다. 널 안고 물휘파람을 불다가 사레 들려서 콜록거리면 니 엄마는 “아주 쇼를 해요~ 쇼를!”이라며 널 빼앗아갔다. 평상시 여러 가지 생쇼(?)를 많이 한 니 엄마가 내게 그런 말을 하다니 신기했다. 그나저나 사레 들린 내 사례는 이쯤에서 접도록 하자.
넌 오늘 산낙지가 먹고 싶다고 했다. 아빠와 함께 축구하고 산낙지 먹고 싶다 했다. 축구하고 영화 를 본 뒤 산낙지를 먹자 했다. 깨알 같은 건 엄마한테 배운 것 같구나. 전날 마신 술 때문에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봉두난발을 한 채 집 앞 중학교 운동장으로 축구를 하러 갔더랬지. 목줄 매달고 주인에게 끌려가던 치와와가 아비를 보고 무섭게 짖던 거 봤지? 아비를 들짐승으로 오해한 거 같은데 넌 리프팅하느라 정신이 팔려 신경도 안 쓰더구나. 아들놈이란. 앞으로는 니가 아비를 보호해야 한다.
너의 축구 실력은 나날이 늘었더구나. 드리블 실력하고 슈팅 솜씨가 니 나이 때의 아비를 보는 듯했다. 그렇지, 누구 자식인데. 어제 마신 술이 안 깨 다리가 풀린 것을 페인트(속임수 동작)로 오해해 내 공을 뺏지 못할 때, 아비는 안도했다. 언젠가 니가 나를 앞지를 날이 올 것이다. 날 따돌릴 순간이 올 것이다. 난 그날을 기다릴 생각이다. 앞서가도 너무 많이 가진 마라. 아비 기력 없다.
는 유쾌했다. 요새 슈퍼히어로들은 파워와 유머를 겸비한 게 특징이라는 느낌적 느낌이 들었다. 네게 아비로서는 많이 보여주지 못했다만, 넌 항상 유머를 잃지 마라. 유머는 널 외롭지 않게 해줄 친구란다라고 네게 말했더니 넌 “산낙지 언제 먹으러 가냐”고 묻더라. 유머러스한 녀석.
니 엄마는 네게 산낙지를 먹인다며 휴대전화 검색을 해 우리를 방배동 바다해물포차로 이끌었다. 자연산 회가 나온다는 동네 맛집. 엄마는 앉자마자 A코스 두 개를 주문했다. 아들바보인 아비는 A코스에 산낙지가 포함돼 있냐고 물었더랬다. 사장님은 산낙지는 오늘 없다고 했다. 너는 울상을 지었다. 엄마는 우리를 왜 여기로 데리고 온 걸까? 삐끼인가?
니 엄마는 맥주와 소주를 주문하면서 너는 물을 마시라고 했다. 내가 사이다라도 시켜주자고 했더니 탄산음료는 몸에 안 좋다며 가방에서 탄산수를 꺼내줬지. 그날 엄마는 얼마 만의 회냐며 연방 술잔을 비웠다. 아비는 맛이 없었다. 집으로 가는 길, 어미를 부축하는 널 보고 아빠는 이 편지의 끝을 이렇게 쓰기로 작정했다. 아들아, 부디 술 못 먹는 애인을 만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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