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좋던 지난 주말, 와잎이 말했다. “은우네랑 승민이네랑 저녁 먹기로 했는데 어디 갈까? 샤로수길에 라틴 식당 있다는데 거기 갈까?”
아놔~. 라틴이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강산에의 ‘와그라노’가 떠오르면서 스페인어 같은 경상도 사투리가 복화술로 튀어나왔다. 의문형이지만 평서형으로 루틴하게 말해쌌노? 다 정해놓고 왜 약 올리노? 와잎은 그러거나 말거나 부랴부랴 전화를 돌렸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오늘도 돌겠네~. 유소년 축구부 친구들을 만난다는 말에 아들 녀석은 “아싸~” 하며 축구 유니폼을 챙겨 입었다. 볼 차러 가노? 골 때리노?
저녁 7시. 서울대입구역 앞에서 은우와 승민이네 식구를 만났다. 유소년 축구부에서 만나 아빠들끼리 동갑이라는 이유로 더 가까워진 사이였다. 중국 무역업을 하는 은우 아빠 재성이는 사드 때문에 하드한 날들을 보낸 탓인지 얼굴이 더 삭았다. 가수 이재성과 이름이 같아 별명이 촛불잔치인 그는 이날도 FC 서울의 다카하기 선수의 유니폼을 입고 나왔더랬다. 와그라노? 다카하기 일본 가지 않았니? 정말 다가가기 어려운 거 아니니? 아이들까지 축구복을 입고 나와 남들이 보면 축구부 코치와 선수 회식인 줄~.
인쇄업을 하는 승민 아빠 대원이는 에 나오는 엔지니어처럼 생긴 중동 마스크의 소유자로 날도 저무는데 선글라스에 쫄티 차림이었다. 뭐가 보이긴 하니? 어디 수금하러 가니? 단디 해라~. 대원이는 “서울대입구가 여기면 서울대출구는 어디냐?”며 되도 않는 아재개그를 시전했다. 니 고마해라~. 갑자기 출구를 찾고 싶어졌다. 출구전략이 필요해~.
서울 낙성대동 부근의 핫플레이스라는 샤로수길은 젊은 연인들로 북적였다. 내는 어쩌란 말이고~. 축구부와 코치, 중동 남자와 함께 앞서 걸어가고 있는데 뒤에서 와잎이 말했다. “남미 음식 먹기 딱 좋은 복장이구만, 아주 월드컵이구만~.” 동남아를 놀러 가면 현지인이라는 소리를 듣는 니가 할 소리니?
남미식당 ‘수다메리카’에 도착하니 대원이가 외쳤다. “따봉~.” 니 그러다 다친데이~. 식당 한쪽 레알 마드리드 유니폼을 본 애들은 환장하며 뛰어갔다. 수다메리카는 아르헨티나 출신 셰프가 현지 음식을 한국인들 입맛에 맞게 내놓는 힙한 집. 아이들과 따로 테이블을 잡았다. 와잎이 엄마들과 속사포로 주문했다. “상그리아 3잔, 에스트레아 맥주 4잔, 남미식 스테이크·만두·핫도그 2개씩 주세요.” 어른 6명에 술은 7잔이라 주문을 정정하려고 하자 와잎이 말했다. “내 거 2잔이야~.” 그렇게 공부 욕심이 있었으면~이라고 말하자 “그럼 너를 안 만났겠지?”라고 응수했다. 엄마들이 손뼉치며 웃었다. 공부 욕심 좀 있지 그랬니?
주문한 음식들이 나오고 어른들끼리 술잔을 들었다. 볶음밥이 함께 나온 스테이크는 한국식에 가까웠다. ‘초리빤’이라 불린 남미식 핫도그와 튀김만두 같은 ‘엠빠나다 데 까르네’가 별미였다. 와잎은 아빠들과 에스트레아를 원샷하더니 4잔 먹으면 1잔이 공짜라며 좋아했다. 그래 그 1잔 값 아껴서 재벌 되겠다~. 아들 녀석 스테이크 잘라주느라 잘 먹지도 못하는데 와잎이 소리쳤다. “여기 에스트레아 8잔이오~.” 와그라노~. 우짤라고 그러니~. 고마해라~ 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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