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겨울, 서울 용산 4구역에서 ‘용산 참사’가 벌어졌다. 그해 여름,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에선 경찰의 대규모 폭력 진압이 있었다. 국가가 평범한 사람들을 짓밟는 ‘국가폭력’의 전형이었다.
“누가 책임질 것이냐”가해자들은 잘 살고 있다. 김석기. 그는 1979년 경찰간부후보 27기로 경찰에 입문했다. 김석기는 잘나가던 경찰이었다. 경찰청 도쿄주재관, 경무기획국장, 경북·대구지방경찰청장, 경찰청 차장, 서울지방경찰청장을 거쳤다. 경찰 일을 끝낸 뒤의 삶도 괜찮았다. 한국자유총연맹 부총재와 주오사카 총영사에 이어 한국공항공사 사장, 한국항공보안학회장 등 그럴듯한 자리를 거쳐 지난 4·13 총선에선 경북 경주시에서 새누리당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그의 화려한 이력 속에 잊히는 것이 있다. 그는 2009년 1월19일 밤부터 이튿날 새벽 사이 벌어진 ‘용산 철거민·경찰 사망 사건’의 경찰 책임자였다. 이 때문에 그는 지난 총선 때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2016총선시민네트워크’가 온·오프라인 시민 투표로 뽑은 ‘최악의 국회의원 후보 1위’에 뽑혔다.
당시 사건은 참혹했다. 김일란·홍지유 감독이 만들어 2012년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이 사건의 실상을 잘 보여준다. 서울 용산 4구역 철거민 32명은 재개발에 맞서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남일당’ 건물 옥상에 망루를 세웠다. 점거농성이 시작됐다. 정부와 경찰은 곧바로 대책회의를 거쳐 농성장 진입 계획을 세웠다. 남일당 주변에 무려 경찰 1600여 명이 배치됐다. 건물 아래쪽에선 철거 용역들이 치고 올라왔다. 이들은 아래층에서 나무와 폐타이어에 불을 붙여 유독가스를 만들었다. 소방차가 와서 불을 끄고 돌아가면 다시 불을 붙였다.
1월20일 새벽 6시30분, 대테러 진압 전담 경찰특공대가 투입됐다. 새벽 5시부터 살수차 3대가 건물 옥상 쪽으로 물을 뿜기 시작했다. 철거민들은 화염병으로 저항했다. 그 옆으로 지게차가 컨테이너를 실었다. 그 안에는 경찰특공대가 가득 타고 있었다. 아침 7시께 컨테이너를 타고 경찰특공대가 옥상 진입을 시도했다. 철거민들이 불붙은 화염병을 던졌다. 원인 모를 이유로 옥상이 불바다가 됐다. 철거민들은 “불타서 죽느니 떨어져 죽는 게 나을 것 같아 옥상에서 뛰어내렸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이상림, 양회성, 이성수, 한대성, 윤용헌씨 등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숨졌다.
김석기가 공기업 사장을 거쳐 국회의원까지 오르는 사이, 철거민들은 가쁜 숨을 내쉬며 살았다. 2010년 대법원은 당시 경찰 사망에 대한 책임을 물어 철거민 8명에게 4~5년 징역 실형을 선고했다. 일부가 감형과 사면을 받았고, 농성을 주도한 남경남 전 전국철거민연합(전철연) 의장이 2015년 1월 만기 출소하면서 수감됐던 철거민들이 모두 풀려났다. 김일란 감독의 새 영화 은 사고 6년 뒤, 수감됐다 풀려난 철거민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속편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김일란 감독은 과의 통화에서 “한 사람이 사회 속에서 위험에 처했을 때, 국가의 의무가 그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다. 국가가 의무를 다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폭력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면서 발생한 문제를 ‘누가 책임질 것이냐’에 대한 고민을 영화에 담고 싶었다. 국가폭력에 대한 책임을 우리 사회가 끝까지 물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동지에서 공동정범으로영화는 2015년 10월 용산 참사 이후 구속됐다가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인 이들의 이야기다. 2013년 1월, 수감됐던 철거민 일부가 출소한 직후부터 2016년 2월 정도까지 취재된 내용이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 남은 것은 반가움이 아니었다. 당시 옥상에 올랐던 동료들이 5명이나 숨졌다. 그들에겐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를 저지른 범죄자’라는 낙인이 찍혔다. 한때 ‘동지’였던 그들은 이제 함께 범죄를 저지른 ‘공동정범’ 처지가 된 것이다. 이들은 서로에게 상처가 되는 말들을 쏟아내며 등을 돌린다.
김 감독은 “용산 참사로 사람들이 여럿 희생됐지만, 책임지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철거민들은 고통과 상처가 심해지면서 ‘내가 왜 이런 사고를 겪어야 했지?’라고 생각하지만, 사회적으로 이런 고민조차 인정되지 않으면서 상처가 커지는 일이 악순환됐다”며 “철거민들이 참사 이전의 삶을 복구할 수 없게 되면서 내부에서 소용돌이치는 감정이 주변인들에게 감정으로 표출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고 했다.
“자신들의 억울함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치유 노력이 눈에 띄지 않다보니, 상처를 지닌 철거민 개인들이 내적으로 곪게 된 것 같다. 이런 것들이 모두 국가폭력의 한 형태에서 비롯된 것이다”라고 그는 덧붙였다.
영화는 철거민들이 참사 당시의 기억을 맞추고, 각자의 오해를 풀어가는 과정도 그린다. 검찰이 수사 과정에서 경찰을 무혐의로 판단하고 모든 책임을 철거민들에게 떠넘기면서 발생한 문제들이다. 철거민들로선 남일당 망루에 올랐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왜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 어떤 설명도 들을 수 없었다. 영화는 이런 고통을 마무리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을 던지면서 끝난다.
김 감독은 “전작 에서는 경찰특공대의 과잉 진압으로 많은 희생자를 낳았던 용산 참사 사건을 들여다봤다. 유가족 동의 없는 주검 부검, 3천 쪽에 이르는 수사기록과 채증 영상이 사라진 점 같은 것들이다. 이번엔 우리의 관심이 망루에서 살아 돌아온 이들로 향했다. 당시 정권은 농성 철거민 전원을 공동정범으로 기소하는 기획 재판으로 국가폭력의 책임을 철저히 은폐했다. ‘공동정범’이라는 올가미로 또다시 얽혀버린 살아남은 자들. 슬픔과 고통은 왜 그들만의 몫이냐”고 되물었다.
용산 참사가 벌어진 그해 여름,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에선 경찰의 대규모 파업 진압 작전이 벌어졌다. 쌍용차 사 쪽이 직원 2646명을 구조조정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자, 이 가운데 500여 명이 이른바 ‘옥쇄파업’에 돌입하면서 시작된 일이다.
27개 중대 2천여 명의 경력이 배치됐다. 노조원들이 있던 도장 2공장은 페인트와 시너 같은 가연성 물질이 20만ℓ가득 찬 ‘화약고’였다. ‘제2의 용산 사태’가 벌어질 것이란 우려가 나왔다. 경찰이 밀고 들어갔다.
가장 난감한 아빠 직업란당시 국가인권위원회가 낸 자료를 보면, 경찰은 살수차를 투입하고, 헬기로 최루액을 쏟아냈다. 며칠간 쌍용차 농성장에 쏟아부은 최루액이 한 해 전, 1년간 쓴 최루액 양의 90%에 이르렀다. 경찰은 크레인과 진압조, 전투경찰 등을 투입해 노조원들을 ‘토끼몰이’했다. “경찰이 2m 거리에서 테이저건을 얼굴을 조준해 쐈다”는 노조원의 증언도 나왔다. 경찰은 농성장의 전기를 끊고, 물과 음식물, 심지어 의료진조차 진입을 차단했다. 우여곡절 끝에 파업이 끝났지만, 경찰은 노조원들에게 14억6천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법원은 배상액의 90%를 인정했다.
당시 파업을 폭력적으로 진압했던 책임자가 조현오 경기지방경찰청장이었다. 이후 조 전 청장은 “평택 쌍용차 파업 사태 때 강희락 당시 경찰청장이 ‘들어가지 마라’(병력을 투입하지 마라)고 지시했지만, 강 청장을 제치고 청와대에 보고했고, 대통령이 허락했다”고 말한 바 있다. 조현오 당시 경기청장은 같은 해 서울지방경찰청장으로 ‘영전’됐다. 이듬해에는 경찰 최고 수장 자리까지 올랐다. 2012년에는 고향인 부산에서 국회의원선거 출마 후보자로 이름이 오르내리기도 했다.
공권력을 이용한 가해 책임자가 승승장구하는 사이, 쌍용차 파업 노동자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었을까? 한영희 감독의 새 영화 는 쌍용차 사태 이후 노동자의 삶을 살폈다. 김정운 당시 쌍용차 노동조합지부 수석부위원장의 아들 현우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현우는 14살이다. 한 감독이 전하는 현우의 이야기는 이렇다.
“오랜만에 집에 온 아빠와 함께 생활기록부를 쓰고 있다. 역시 가장 난감한 부분은 아빠의 직업란을 채우는 일이다. 현우의 아빠는 쌍용자동차에서 해고된 후부터 복직투쟁을 하고 있다. 아빠를 바라보는 현우의 심정은 복잡하다. 아빠가 복직이 되면 좋겠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상황은 좀처럼 달라지지 않는다. 왜 아빠는 결과도 없이 그렇게 힘든 일을 하는 걸까? 왜 이렇게 아빠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 걸까?”
“우리도 현우처럼 살고 있다”한 감독은 “쌍용자동차의 대규모 정리해고 이후 이와 관련한 다양한 화두가 한국 사회에 등장했지만 노동자의 현실은 나아지지 못했다. 척박한 노동 현실 속에서 함께 고통받는 해고자 가정의 아이를 통해 노동의 현실, 해고의 현실을 전하려 했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그는 “현우가 생각하는 ‘가장 좋은 어른이었던’ 아빠가 자신이라면 결코 하지 않을 행동을 하는 ‘이상한 영웅’이 됐다. 이 과정을 통해 현실을 되짚어볼 수 있다. 슬픈 현실을 현우처럼, 우리도 살고 있다”고 덧붙였다. 과 는 9월22일(~28일) 시작되는 ‘DMZ국제다큐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인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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