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고은 시 ‘가을 편지’)
7년 만이에요. 잘 지내셨나요? 조청 같은 땀이 흥건한 여름이지만, 가끔은 고양이 꼬리가 살랑대듯 바람이 불어요. 어제는 신문사 근처 여자대학을 갔어요. 치마가 하늘하늘. 마음에 풍차가 돌았어요.
2009년 그대에게 글을 쓰면서 이런 말을 했지요. “제 삶을 더 밝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는 제 그늘을 볕바른 곳으로 내놓으려 책을 읽는다. 그래야 누구든 제 삶이 더 온전해질 것 아닌가.”(제769호 별책부록 ‘시의 기억 소설의 사랑’)
죽간과 백서, 연대와 포용그때 말했어요. “그늘에서, 잠을 자는 게 아니라, 책을 읽는다는 게 무엇이던가. 그것은 개별성을 보편성으로 밀어올리는 일”이라고. 오늘은 한 걸음 더 디뎌볼게요. 플라타너스 이파리처럼, 귀를 크게 열고 들어주세요. 왜냐고요? 세상이 소란스러워요. 작은 목소리를 고함이 깔아뭉개는 시절이잖아요.
한자 ‘冊’(책)을 보세요. 대나무를 잘라 글을 쓰고 그것을 끈으로 묶은 모양. 죽간(竹簡)이라고 해요. 백서(帛書)도 있어요. 비단에 글을 쓴 거죠. 종이가 널리 쓰이기 전엔 그랬다고 해요. 죽간과 백서. 그것은 연대와 포용을 상징하는 것 아닐까요. 대나무 조각 낱낱, 자투리 조각보는 파편화한 현대인을 은유하는 것만 같아요. 대나무 조각을 끈으로 결집하는 것, 자투리가 아닌 너른 옷감으로 덮는 것. 손잡고 끌어안는 일이지요. 책은 본질에서 연대와 포용의 상징 아닐까요.
책이 다만 사물이라면, 오직 종이라면, 그대에게 흰소리를 할 필요가 없겠지요. 그러나 책은 곧 사람이에요. “절경은 시가 되지 않는다./ 사람의 냄새가 배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이야말로 절경이다. 그래,/ 절경만이 우선 시가 된다.”(문인수 시집 ‘시인의 말’) 절경이 꼭 시만 되란 법은 없지요. 글쓴이의 절경이 어느 책이든 담겨 있으니까요.
7년 전, 이렇게도 말했어요. “책 속에는 길이 없다. 거기엔 글만 있는 게 틀림없다. 책을 읽으러 그늘로 가는 길이 있고, 책장을 덮은 뒤 되돌아오는 길이 있을 뿐이다.” 미안해요. 생각이 짧았어요. 김상봉 전남대 교수의 말을 기억하시는지요. “연대는 책에서 나온다. 연대를 위해서 책을 읽으라고 말하고 싶다.”(제1117호 표지이야기 ‘사회를 전복시켜온 슬픔을 믿는다’)
한 고위 공무원이 민중을 ‘개돼지’로 비유했다지요. 그 헛소리를 듣고 이런 구절이 생각났어요. “개 같은 팔자로/ 더 이상 되돌아가지 않기./ 어디로 가지? 끝장내러 간다”(폴 발레리 시 ‘제쳐놓은 노래’) 연대해야 해요. 더불어 책과.
가을의 광장에서 만나요이 건네는 책 14권에는 창비·문학과지성사 같은 대형 출판사부터 오월의봄·나무연필 등 ‘1인 출판사’ 책까지 아울렀어요. 편집장이 시켰어요. 공정한 사람이거든요.
그대의 손에 몇 권의 책이 지나가면, 아마 가을이지 않을까요. 그때 만나요, 우리 광장에서. 그대가 책을 펼쳤듯, 두 팔 활짝 펼치고 ‘희망의 어깨동무’ 할 수 있는 광장에서. 만나요, 과 함께, 바뀐 마음의 논리로…. “감동을 주는 말 한마디, 말씀으로 전해지는 정보 내용 하나가 마음의 논리를 바꾸어준다. 마음의 논리가 바뀌면 시공간의 체험이 다르게 된다. 세상이 새롭게 보인다.”(소흥렬, , 이화여대출판부, 2004)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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