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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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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기적으로 태어나지 않았다

진화심리학으로 톺아본 한국 사회 보고서 <본성이 답이다>
등록 2016-06-01 16:11 수정 2020-05-03 04:28

과학은 매 시대, 인간에 대한 해석을 경신한다. 한국인 최초의 진화심리학자 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의 책 (2010)은 한국 사회에서 또 한 번 그 일을 해냈었다.

선풍이 불었다. 선풍기처럼 시원시원한 문장에 실린 최신 과학이 불어오자 독자들은 환호했다. 진화심리학은 인간의 마음을 진화의 관점에서 강구하는 학문이다. 한국 독자에게 심리학은 가장 호소력 있는 분야 중 하나다. 잘 팔린다. 그래서 정신승리술과 처세술을 포장하는 데 심리학이 꿔다놓이는 일도 적지 않다. 전중환 진화심리서의 특징. 생물학으로 공부를 시작했고 개미를 연구한 동물행동학자이기도 한 그의 글은 기초과학의 클래식과 심리학의 트렌드를 겸비할뿐더러, 인간 마음(의 산물인 사회와 문화까지)을 이해하게 하지 기술을 익히라 하지 않는다.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건 이해와 진단이다.

이번에 나온 그의 두 번째 단독 저서(, 사이언스북스 펴냄)는 한국 사회에 대한 진화심리학의 보고서다. ‘왜 헬조선이 문제인가’ ‘왜 인권을 존중해야 할까’ ‘보수와 진보는 왜 다른가’ ‘왜 성추행이 일어나는가’. 지은이는 이런 질문을 하고, 제목이 강조하는 바처럼 인간 ‘본성’에서 답을 찾아본다.

정답 같은 건 어디에도 없을 거고, 전중환의 진화심리학은 이번에도 많은 해답을 준다. “인간의 마음은 외부의 특정한 환경이 있을 때만 비로소 반응하도록 설계된 수많은 심리적 도구들의 묶음(연장통)”이다. 그래서 경제적 불평등이라는 외부 환경에 인간의 마음이 어떻게 반응하도록 진화했는지 추론하는 일이 가능하다.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는 자식 수가 최고의 덕목”이다. (자식 수, 곧 진화적 성공은 상대적이다. 내가 둘을 낳았는데 남들이 하나씩 낳았다면 나는 성공이고, 남들이 셋씩 낳았다면 나는 실패다. ‘상대성’ 외에는 모든 것이 상대적이다.) 모든 동물은 자식을 늘리는 데 용이한 환경을 두고 경쟁하도록 진화했다. 그런데 “경쟁의 성패에 따른 자식 수의 격차가 클수록 위험한 경쟁 전략이 선택”된다. 이 통찰은 긴요하다. “번식에 완전히 실패할 확률이 높은 흙수저들이 어떻게든 절망적인 상황을 벗어나고자 위험한 행동에 뛰어들고, 때로는 죽음조차 무릅쓸 것이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여러 연구 결과를 인용해 “국민총생산, 실업률, 근대화 정도보다 경제적 불평등이 살인율을 가장 잘 설명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범죄를 줄이고 수명을 늘리고자 한다면 “진화심리학은 계층 간 경제적 불평등을 줄이는 데 노력을 집중하라고 조언한다”고 전한다.

경제적 불평등도 인간 본성에 기인한다. 생명의 본성일지도 모른다. 질량이 더 큰 질량으로 바뀌려 하듯, 자본은 더 큰 자본으로 굳어 쪼개지지 않으려 한다. 질서는 무조건 무질서해진다는 건 자연계 최고 법칙인 엔트로피 법칙이다. 그러나 인간의 정신과 문화, 이타심과 나눔은 우주의 저 본성과 법칙을 거역하려는 성격이 짙다. “나눔은 다른 영장류에게선 존재하지 않는” 인간만의 특질이며 “우리는 타인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비도덕적 행동을 응징하는 본성도 지니고” 있다고 진화심리학은 알려준다. 리처드 도킨스는 1976년 내놓은 의 2006년 개정판 서문에서 “우리는 이기적으로 태어났다”는 명제는 틀렸으며 마음에서 이를 지워달라고 했다.

석진희 교열팀 기자 nin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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