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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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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라는 것과 친구하라고?

사냥갔던 주인, 살아 돌아오다
등록 2014-11-22 15:06 수정 2020-05-03 04:27
신소윤

신소윤

나는 고양이다. 이름은 만세, 나이는 만 세 살.

오늘은 사냥 갔던 주인이 살아 돌아온 이야기를 하겠다. 어느 날이었다. 나는 여느 때처럼 어둡고 따뜻한 그늘을 찾아 잠을 자고 있었다. 집주인이 갑자기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불안한 모양새로 집 안을 돌아다니더니, 그길로 홀연히 사라졌다. 그는 종종 밤이 되면 홀린 듯 나갔다 취해 비틀거리며 돌아오는 경우가 있었으므로 그런 줄로만 알았다. 집주인은 사흘, 나흘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고양이들은 곁의 누군가가 오래 나타나지 않으면 사냥을 갔다가 죽었다고 생각한다.

욕실 바닥에 고인 물 홀짝이지 마라, 털 좀 그만 뿜어라 잔소리를 늘어놓던 귀찮은 인간이었지만 그래도 정이 들었나보다. 다정하게 “세~”라고 불러주던 그가 사라졌다고 생각하니 코가 시큰하면서 눈물이 앞을…. 나는 식음을 전폐, 하지는 않고 바깥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쫑긋대며 그를 기다렸다. 그렇게 보름쯤 지났나, 그만 체념하고 향이라도 피워줄까 집 안을 어슬렁거리고 있는데 어이쿠,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서 떨어지는 줄 알았지 뭐야. 사냥 나갔다 죽은 줄 알았던 집주인이 돌아온 거다. 작고 낑낑거리는 생명체를 가슴에 품고서.

그가 살아 돌아온 뒤 모든 것이 달라졌다. 집주인은 그 작은 생명체를 아기라고 불렀다. “만세야, 아기가 왔어. 좋은 친구가 되어줘.” 친구? 태생적으로 사회성이 떨어지는 고양이에게 친구는 무슨 친구란 말인가.

고양이는 생후 2주까지만 먹고 자는 문제를 어미에게 완전히 의존한다. 그런데 고양이와 인간의 삶의 속도는 천지 차이인 모양이다. 내 새 친구는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댔다. 내 친구는 울다가 또 울다가 자기 울음소리에 놀라 더 크게 울었다. 밤새 온 집 안에 사이렌이 울리는 듯했다. 집주인은 ‘어떻게 하면 아기를 잘 재우나’ ‘아기의 속마음을 알고 싶다’ 따위 제목이 달린 책을 여러 권 사들여 읽다가 집어던지는 일을 반복했다. 그는 깊은 밤 아기를 달래며 베란다를 서성거리다 아득한 바깥을 하염없이 내려다보곤 했다. 나는 집주인이 한순간 문을 열고 뛰어내릴까봐 몰래 그의 바짓단을 내 발톱에 걸어놓곤 했다.

덕분에 모두가 잠든 다음 오도카니 거실에 앉아 상념에 잠겼던 고독하고 아름다운 밤 시간도 당분간은 보류다. 그런 고충도 모르는 주인은 때때로, “만세야, 잠깐 아기 좀 보고 있어.” 시키는 대로 그렇게 가만히 아기를 보고 있으면 제 할 일을 하고 돌아온 주인은 “야, 보고 있으랬더니 진짜 쳐다보고만 있으면 어떡하냐”며 면박을 준다. 이 인간은 고양이한테 무얼 바라는 걸까. 그의 귀환을 기뻐해야 하나 슬퍼해야 하나.

이 비릿하고 시큼한, 작고 느린 존재와 함께하게 될 나날 가운데 나는 어떻게 처신해야 예전처럼 느긋한 일상을 되찾을 수 있을까. 오늘도 고민이 많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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