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노인회 명의로 (노인 연령을) 75살로 상향 조정할 것을 정부에 건의한다.”
이중근(83) 대한노인회장의 첫 일성은 ‘노인 연령 상향 조정’이었다. 2024년 10월21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제19대 대한노인회장 취임식’에서 이 회장은 “현재 노인 인구는 1천만 명이지만 2050년에는 2천만 명으로, 2천만 노인복지에 치중하다보면 생산인구가 부족하다는 염려가 있다”며 “국민의 인권보장 차원에서 초고령화 사회가 된 대한민국의 근본적인 노인 인구 관리를 위해 현재 65살 노인 연령을 연간 1년씩 단계적으로 상향 조정해 75살 정도로 올리자”고 했다.
이 회장은 임금을 줄여 고용을 늘리는 구상도 밝혔다. 그는 “국가에서 정년 연장과 같은 제도를 도입하면 신규 노인 예정자(65살)가 첫해에는 정년피크 임금의 40%를 받고 10년 뒤인 75살에도 20% 정도를 받는 생산 잔류 기간을 10년 연장하고자 한다”며 “기본 수당을 받으면서 생산에 동참할 수 있으므로 연금 등 노인 부양과 초고령화 사회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실상 연금 수급 연령을 현행 기준(기초연금 65살, 노령연금 63살)보다 높여 기금 재정 고갈을 늦추고 노인 임금을 최저임금보다 낮추자는 것이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한덕수 국무총리와 오세훈 서울시장 등은 이 회장의 발언에 박수와 미소로 화답했다.
한 총리는 이 회장의 발언 이후 “검토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10월22일 국무총리실 출입기자들과 만난 한 총리는 “우리나라는 (저출생으로) 인력이 부족해 여성과 연세 드신 노인을 어떻게 활용할지가 성장 잠재력을 높이는 데 중요한데, 당사자인 노인회가 그런 문제를 제기했으니 잘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심각하게 이 문제를 검토하고 사회적 컨센서스(동의)를 얻어서 인구 소멸 문제 등 심각한 문제에 미리미리 대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부 보수언론과 경제 언론들은 이 회장의 발언과 한 총리의 발언을 조명하면서 노인 연령 상향 조정을 위한 여론 조성에 나섰다.
사실 일부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들은 노인 연령 상향을 위해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행정안전부는 10월20일 ‘공무직 등에 관한 운영규정’을 개정해 전국 정부 부처 청사에서 환경미화와 시설관리를 담당하는 공무직 2300명의 정년을 기존 만 60살에서 최대 65살까지 단계적으로 늘린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앞선 6월16일 ‘인구정책 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이르면 내년부터 노인 기준을 65살에서 70살로 올려서 노인 복지 혜택을 적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인구 감소 등으로 서울시의 세수는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데 노인 인구는 계속 늘어나 재정적으로 감당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여론의 반응은 싸늘했다. 노인 연령 상향 조정은 결국 연금 수급과 노인 의료비 지원 등 사회보장 혜택을 받는 연령의 상향 조정을 위한 초석이기 때문이다. 고현종 노년유니온 사무처장은 한겨레21에 “현재 고독사가 가장 많은 인구가 5060세대로(보건복지부 ‘2024년 고독사 실태조사 결과’) 사회보장 혜택을 못 받고 불안정한 일자리를 전전하기 때문인데 75살까지 버티라는 건 너무 가혹하다”며 “대한노인회의 주축 세력들은 75살이 넘은 사람이 많은데 이 사람들이 이제까지 복지 혜택을 다 받아놓고 이제 와서 노인 연령을 75살로 높이자고 하는 것은 ‘사다리 걷어차기’”라고 꼬집었다.
이 회장의 취임사에서 ‘관리, 부양, 사회문제, 연금’ 등 부정적인 단어들을 열거해 ‘노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여과 없이 드러낸 점이 부적절하다는 평가도 나왔다. 최혜지 서울여대 교수(사회복지학)는 “노인의 삶의 질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저출생과 인구 구조와 같은 이야기밖에 없어서 결국 이 회장 발언의 저의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며 “노인 빈곤 문제나 사회경제적인 불평등이 더욱 악화하는 상황에서 막연하게 노인 연령만 높이고 복지 수급 연령만 높이자 식의 논의는 지양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한겨레21이 전국 각지에 사는 60대 안팎의 시민 6명과 인터뷰해보니 노인 연령 기준을 75살로 높이는 데 찬성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대부분이 노인 연령과 사회보장 혜택 연령을 높이는 데 반대했다. 일부가 “70살 정도로 노인 연령을 높이고, 복지 혜택도 70살에 받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지만 “안정적인 일자리와 소득 보장을 전제로만 가능하다”고 답했다.
노인 연령 조정에 반발하는 가장 큰 이유는 끝나지 않은 ‘돌봄 의무’다. 2024년 현재 60~64살(1960~1964년 출생)인 사람들은 ‘부모 봉양’과 ‘자녀 양육’의 이중고에 낀 세대다. 특히 여성들은 자녀 돌봄 노동이 사회화하기 전에 자녀를 출산하고 양육하면서 사회 경력 단절을 경험했다.(48쪽 기사 참조) 하지만 탈산업화 시대로 바뀌면서 자녀들의 사회 진출과 혼인 시기가 늦어져 자녀 양육 기간이 늘었다. 경남 창원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아무개(64)씨는 “30살이 훌쩍 넘은 아들이 두 명이나 있지만 아직 아무도 결혼하지 않았고, 90대 안팎의 부모가 계셔서 일을 그만둘 수 없다”며 “주변 친구들을 봐도 아프지 않으면 거의 일하는데, 나도 70살 정도까지는 일하고 싶다”고 했다.
정책 변화가 없다면 2025년에 노인이 돼 사회보장 혜택을 받는 사람들은 노인 연령 상향을 좀더 예민하게 받아들였다. 이 회장의 말대로 1년에 1살씩 노인 연령이 높아지면 이들은 10년이 지나야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강원도 고성에서 92살 노모와 함께 사는 정아무개(64)씨는 “집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싶어서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땄지만 정부에서 한 달에 20시간밖에 인정을 안 해줘, 소득도 부족하고 4대 보험 혜택도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 내년부터 꼭 기초연금을 받아야 한다”며 “65살이 돼도 건강하면 일하고 싶지만, 사회에서 우리를 반기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오이시디)가 2018년 발표한 자료를 기준으로 보면, 한국 남성의 실질 은퇴 연령은 72.3살로 오이시디 국가 가운데 가장 높다.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현재 63살)이 지나도 10년 가까이 더 일하는 것이다. 65살 이상 노인의 경제활동 참가율도 36.3%(2021년 기준)로 역시 오이시디 가입국 중 가장 높다. 통계청의 ‘2023년 경제활동인구조사 고령층 부가 조사’를 보면 중장년이 주된 직장에서 퇴직하는 평균 연령은 49.4살로 조사됐는데, 실질 은퇴 연령(72.3살)과의 차이가 22.9년에 이른다.
오이시디가 2023년 발간한 ‘한눈에 보는 연금 2023’ 보고서를 보면 2020년 기준으로 한국 노인 가운데 가처분소득이 전체 인구 기준 중위소득의 50%가 안 되는 노인 빈곤율은 40.4%로 자료를 제출한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았다. 오이시디 평균 노인 빈곤율은 14.2%였다.
종합하면 세계에서 가장 오래 일하지만, 가장 가난한 사람이 한국의 노인들이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는 노인을 냉대한다. 2024년 9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이다미 부연구위원이 쓴 ‘고령화와 연금 관련 시민 인식에 대한 10개국 비교’를 보면 “노인 인구의 증가는 경제에 위협이 된다”는 의견에 10개국(영국, 덴마크, 이탈리아, 독일, 미국 등)의 평균 동의율은 44.8%였지만 한국은 동의율이 76.1%로 노인 인구에 대한 부정적 인식 수준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혐로사회’다.
노인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인 한국 사회에서 노인을 위한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서울 강서구에서 빌딩 청소를 하는 이아무개(72)씨는 “청소노동자들이 천한 일을 한다고 젊은 관리자들이 하대하거나 괴롭힐 때가 많다”며 “그럴 때마다 너무 억울하다”고 했다.
조정진(67)씨가 쓴 ‘임계장 이야기’(2020년)와 고 이순자씨가 쓴 ‘예순 살, 나는 또 깨꽃이 되어’(2022년)에 수록된 ‘실버 취준생 분투기’에는 한국 사회 노인 노동의 현주소가 고스란히 담겼다. 조씨는 노인 노동자를 ‘고다자 임계장’이라 명명했는데 ‘고르고 다루고 자르기 쉬운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줄임말이다. 그가 다니던 공기업에서 60살에 정년퇴직하고 3년 동안 기록한 노동기를 함축하는 표현이다. 조씨는 3년 동안 네 곳의 일터를 전전했는데 그가 아플 때마다 일자리에서 쫓겨났다. 그는 업무를 하다 부상을 입었지만 고용주는 “업무와 관계없는 노환”이라며 해고를 통보했다. 이순자씨는 62살에 노동시장에 뛰어들어 공장 수건 정리, 백화점 청소, 공사장 청소, 어린이집 조리사, 아이 돌보미, 요양보호사 등 65살이 될 때까지 10여 곳의 일자리를 전전하며 셀 수 없이 눈물을 흘린다. 이씨는 “평균수명이 길어진다는 뉴스를 볼 때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며 “혼자가 되어 생계를 책임져야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내 탓”이라고 자책한다. 이씨는 2021년 8월30일을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68. 노인회장의 주장대로면 ‘노인이 되기 전’에 숨을 거뒀다.
많은 노인이 이렇게 불안정한 일자리를 전전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현실은 한국 사회의 부실한 사회보장제도를 방증한다. ‘과로노인’(2016년)의 저자 후지타 다카노리는 노동하는 노인을 이상화하는 것은 정부의 통치 전략일 뿐이라고 일갈했다. 아베 신조 전 총리는 일본의 저출생 고령화 문제의 대책으로 ‘1억 총활약 사회’를 주장했고, 노인 정책으로는 ‘생애현역 사회’를 강조했다. 다카노리는 “‘생애현역’이라는 말은 실질적으로는 죽을 때까지 일하지 않으면 사회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라며 “사회보장이 정비되지 않은 나라일수록 고령자의 취업률이 높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연금의 소득대체율이 높은 유럽 국가에서는 시민들이 정년 연장에 강하게 반대한다. 프랑스에선 2030년부터 정년과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62살에서 64살로 연장하는 방안에 반대해 전국적인 파업과 시위가 일어났다.
한국은 이미 너무 많은 노인이 일하고 있어, 추가로 노동생산성을 높이기 어렵다는 분석도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권정현 연구위원이 2019년 쓴 ‘근로 여력으로 살펴본 노인 연령 상향조정에 대한 정책적 시사점’ 보고서를 보면 “건강 상태를 바탕으로 고령 남성의 추가적 근로 여력을 추산하면 2~4%포인트 수준으로, 추가적으로 일할 수 있는 여력이 제한적”이라고 분석했다. 이미 너무 많이 일하고 있다는 의미다. 권 연구위원은 교육 수준에 따라 사망률의 차이가 큰 문제를 지적하면서 “기대수명의 증가를 반영해 연금 수급 연령을 일괄적으로 조정하면 저학력 고령자의 실질 연금 수급 기간이 단축되는 문제가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렇게 노인 빈곤과 불평등이 심각한 현실 때문에 이중근 노인회장의 “노인 연령을 높이자”는 주장이 보통 노인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혔다. 서울에 사는 경비노동자 전아무개(63)씨는 “지금의 대한노인회는 기업 총수와 전직 관료들이 모여서 정부 지원금은 독식하면서 노인 빈곤, 노인 자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며 “저출생 걱정하면서 계속 노인들에게 양보하라는데, 반대로 평범한 보통 노인이 잘 살 수 있는 나라가 돼야 청년들도 마음 놓고 출산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생물학적인 나이를 기준으로 ‘노인’을 정의하고, 복지 혜택 수급 연령을 일괄적으로 조정하는 것은 현재 한국 사회의 노인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허영구 노년알바노조 위원장은 “조합원들을 보면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을 합쳐서 수령액이 60만원도 안 돼 단순노무직에서 노동하는 분이 대부분인데, 이들에게 당장 사회보장 혜택을 주지 않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며 “결국 연령으로 ‘노인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사회·경제적인 계급의 문제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복지 혜택을 받는 ‘노인’의 기준을 단순 연령으로 판단하지 말고, 당사자의 경제 여력과 정책 필요를 고려해 판단하자는 것이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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