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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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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순의 눈빛과 댕댕이의 눈망울이 만나면

경기 고양 일산동구보건소 치매안심센터의 ‘위풍댕댕 기억교실’ 동물교감치유
등록 2024-11-15 20:36 수정 2024-11-22 08:10
동물교감치유 프로그램에 참가한 서만교 어르신(오른쪽)이 2024년 10월21일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보건소 치매안심센터에서 혜찬과 눈을 맞추고 있다. 희로는 잠들어 있고 호동이 이 모습을 바라본다.

동물교감치유 프로그램에 참가한 서만교 어르신(오른쪽)이 2024년 10월21일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보건소 치매안심센터에서 혜찬과 눈을 맞추고 있다. 희로는 잠들어 있고 호동이 이 모습을 바라본다.


 

쑥스러운 표정의 한 어르신이 살그머니 강의실에 들어와 자리에 앉는다. 곧 뒤따라 들어온 어르신이 눈빛 인사를 건넨다. 어르신들이 하나둘 테이블 주위로 둘러앉아 자리를 채운다.

잠시 뒤 파란색 유니폼을 입은 동물매개치료사들이 크고 작은 켄넬(반려동물 이동장)을 들고 들어온다. 켄넬 문이 열리자 혜찬(10개월)이 쏜살같이 달려 나와 빈 의자를 밟고 테이블 위로 올라간다. 뒤이어 호동(7)도 치료사의 도움을 받아 테이블 위로 올라왔다. 끝으로 반려동물매개심리상담사인 진미령 ‘동물친구교실’ 팀장이 자신의 반려묘 희로(11)를 테이블 위 방석에 조심스레 올려놓는다.

동물 친구들이 자리를 잡자 어르신들이 부쩍 활기를 띤다. ‘위풍댕댕 기억교실’ 동물교감치유 프로그램 참가자 중 유일한 남성이자 막내인 서만교(70) 어르신이 가장 적극적이다. 혜찬을 쓰다듬으며 “참 잘생겼다”고 칭찬을 건넨다. 혜찬도 눈을 맞추며 반가운 기색이다.

 

어르신들이 희로에게 줄 방석을 들어 보이고 있다. 왼쪽부터 이계옥, 박광희, 서만교, 신현분, 정민자 어르신. 희로가 맨 앞에 잠들어 있다. 가운데는 호동, 맨 뒤가 혜찬이다.

어르신들이 희로에게 줄 방석을 들어 보이고 있다. 왼쪽부터 이계옥, 박광희, 서만교, 신현분, 정민자 어르신. 희로가 맨 앞에 잠들어 있다. 가운데는 호동, 맨 뒤가 혜찬이다.


 

이곳은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마두동 일산동구보건소 치매안심센터 강의실이다. 2024년 10월21일 이곳에선 센터가 진행하는 위풍댕댕 기억교실 열세 번째 수업이 진행됐다. 9월2일 시작한 이 과정은 11월28일까지 24회로 마친다. 동물교감치유 외에 인지·미술치유, 원예·운동치유 시간 등으로 구성돼 있다.

기억 회복과 정서 안정을 돕기 위한 이 과정 외에도 치매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하는 인지강화교실이 다른 요일에 진행 중이다. 치매 환자와 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힐링 프로그램도 곧 열릴 예정이다.

어르신들이 혜찬이를 쓰다듬고 있다.

어르신들이 혜찬이를 쓰다듬고 있다.


가장 맏언니인 신현분(88) 어르신은 호동을 제일 예뻐한다. 동물을 좋아해서 반려견을 키우는 딸네 집에 자주 놀러 간다. 이계옥(77) 어르신도 얌전한 호동이 좋다. 호동도 이를 아는지 그 앞에 엎드려 떠나지 않는다.

이날 과제는 노령묘 희로를 위한 방석 만들기다. 천 위에 동물 친구들의 모습을 그리고 이를 꿰맨 뒤 안에 충전재를 넣는다. 다섯 어르신의 협업으로 울타리가 있는, 세상에 하나뿐인 방석이 완성됐다. 희로가 냉큼 들어가 앉더니 금세 잠에 빠진다.

완성된 울타리 방석에 들어간 희로가 바로 잠이 들었다.

완성된 울타리 방석에 들어간 희로가 바로 잠이 들었다.


어르신들과 교감하며 기억 회복과 치매 예방을 돕는 동물 친구들은 모두 치료사들의 반려동물이다. 혜찬과 희로는 이날 수업을 이끈 진 팀장과 함께 산다. 호동은 김경원 동물친구교실 대표의 반려견이다.

10년가량 동물매개치료를 해온 진 팀장은 자신과 도우미 동물을 통해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안정감을 느끼고 자신감을 되찾을 때 큰 보람을 느낀다. 참가 어르신들이 수업할 때마다 동물 친구의 이름을 다시 물어보지만, 동물에게 간식을 주고 쓰다듬으며 처음보다 많이 웃는 것을 보면 뿌듯하기만 하다.

아내와 둘이 사는 서만교 어르신은 아파트에 살아 반려견을 키우지 못한다. 시골로 이사해 반려견을 키우며 사는 게 꿈이다. 일주일을 기다려 혜찬을 만난다. 그 소중한 시간이 아까운 듯 무시로 혜찬과 눈을 맞추고 하이파이브를 한다.

 

사진·글 이정우 사진가

 

*낯섦과 익숙함, 경험과 미지, 예측과 기억, 이 사이를 넘나들며 감각과 인식을 일깨우는 시각적 자극이 카메라를 들어 올립니다. 뉴스를 다루는 사진기자에서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변신한 이정우 사진가가 펼쳐놓는 프레임 안과 밖 이야기.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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