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만세, 고양이다.
2년 전 이맘때, 사냥 나갔다 죽은 줄 알았던 집주인이 작고 보드라운 걸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기였다. 나는 그 아이가 궁금해 주변을 맴돌며 기웃거렸지만, 애앵~ 울기만 하면 정신이 산란해서 방을 뛰쳐나가곤 했다. 그때 안절부절못하며 부러운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던 주인의 눈빛을 기억한다.
그럼에도 시간은 흘렀고, 우리는 적응했고, 아이는 울음을 줄이는 대신 예쁜 짓을 하기 시작했다. 집 안에 다시 일상의 리듬이 생겼고, 주인은 직장으로 나갔다. 하지만 우리는 몰랐지, 이때부터 진짜 전쟁이 시작될 거라는 것을.
두 사람의 주인은 매일 아침 의무적인 태도로 바쁘게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고는 집을 나섰다. 느긋하기 고양이에 비할 바 없었던 이들이 머리도 빗지 못하고 아이를 달래가며 뛰쳐나가는 걸 보면 좀 딱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마음을 먹었다. 주인들을 도와주기로.
새벽 4시, 보모 고양이의 일과는 집 안에서 가장 먼저 잠에서 깨는 것으로 시작된다. 혼자 어슬렁거리며 나와 밥도 먹고 물도 먹고 나면, 할 일이 없다. 돌돌 말려 거실에 떨어져 있는 기저귀를 쓰레기통 방향으로 몇 번 굴리다 다시 방으로 들어온다.
새벽 4시30분, 아이 옆에 앉는다. 가만히 내 얼굴을 아이의 얼굴에 대어본다. 가끔은 사랑하는 마음이 폭발해 앞발로 아이의 머리를 꼭 안거나, 말랑거리는 뱃살을 꼭꼭 눌러보기도 한다. 나는 이 아이를 새벽형 인간으로 키울 목표를 갖고 있다.
인간들이 읽는 책 중에 이라는 어떤 책에는 이런 부제가 붙어 있다. “멋진 하루, 달콤한 삶, 새로운 도전은 현대인의 성공 동력…!” 아침잠이 많은 우리 집주인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얘기다. ‘아가, 이 각박한 세상을 견뎌내려면 지금 자고 있어서 될 일이 아니야.’ 이런 마음으로 아이 옆에서 부스럭거리다보면 아이가 뒤척이며 깰 기색을 보인다. 오, 성공인가. 옆에서 자던 집주인이 작은 소리로 “야 이놈의 만세야, 넌 왜 꼭 이 시간만 되면 애를 깨우고 난리냐”며 신경질적으로 나를 들어 침대 끝자락으로 휙 옮겨놓는다. 이렇게 육아관이 달라서야, 원.
주인이 아이 등을 토닥여 다시 재우고, 아침 8시, 해가 밝으면 아이가 잠에서 깬다. 이때부터는 시곗바늘이 어떻게 돌아가는 줄 볼 새도 없이 하루가 흘러간다. 자면 깨우고 싶고 깨면 잤으면 좋겠다 싶은 건, 엄마나 보모 고양이나 똑같은 맘이다. 눈을 뜨자마자 “야옹아~ 일루 와~ 앉아봐~” 소리치는 아이의 목소리를 들으면 나는 어디로 숨고만 싶다.
요즘은 자기가 방귀를 껴놓고는 나한테 “야옹 뿡했네”라며 덮어씌우기도 한다. 배은망덕이란 말을 이럴 때 쓰는 건가. 제 기분에 따라 꼬리를 당기면 잡혀주고, 장난감을 와르르 쏟아내면 산사태에 휩쓸리지 않게 얼른 몸을 피해야 한다. 그렇게, 고단한 육체와 감정 노동을 반복하며 하루를 보낸다. 폭풍이 잠잠해질 때까지 아이가 잠들 때까지…. 아, 이건 아마도 전쟁 같은 사랑.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카카오톡에서 을 선물하세요 :) <font color="#C21A1A">▶ 바로가기</font> (모바일에서만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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