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만세, 고양이다.
얼마 전 고양이들을 술렁이게 한 뉴스가 있었다. 대만의 첫 여성 총통으로 뽑힌 차이잉원이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운다는 소식이었다. 차이잉원 총통 당선자가 속한 민진당은 선거를 앞두고 후원금을 모으기 위해 기념품 가게를 열고 차이잉원 후보의 캐리커처와 사인이 담긴 물건을 팔았다. 그 가운데 가장 잘 팔린 것이 고양이 인형이었다고 한다.
샹샹과 아차이. 사람들은 이들이 대만 역사상 처음으로 총통 관저에 입성하는 고양이가 되었다며 떠들썩하게 축하 메시지를 전했다. 인터넷에는 “대만 고양이 역사를 새로 쓰고 있구나” “우리도 고양이를 청와대로!” “역시 새 세상의 지배자는 여성과 고양이다” 등의 반응으로 들썩였다.
하지만 정작 샹샹과 아차이, 두 고양이는 무덤덤해 보인다. 차이잉원 당선자는 올해 초 페이스북에 고양이와 함께 찍은 새해 인사 동영상을 게시했다. 고양이들과 집에서 지내는 사진도 종종 업데이트한다. 하지만 이들 사진과 동영상에 실린 고양이의 표정은 하나같이 요즘 말로 ‘무심한 듯 시크’하다. 심지어 새해 인사를 하는 동영상에서 고양이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내내 차이잉원의 품 안에서 발길질을 하며 탈출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소식을 들은 고양이들의 반응도 그렇다. “우와, 대박! 너네 출세했다. 대만 최고 권력 고양이가 되었어!” 이렇게 말하는 고양이는 한 마리도 없다. 권력? 이런 단어만큼이나 고양이와 거리가 먼 것이 있을까. 그것 말고도 세상에 고양이가 목놓아 바라는 것이 얼마나 많은데. 갓 삶아 구수한 냄새를 솔솔 풍기는 닭고기, 따뜻하게 내리쬐는 소중한 겨울 햇볕, 푹신하고 아늑한 소파 구석 자리, 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 있으면 콧구멍을 간질이며 지나가는 산들바람 같은 것.
다만 이 뉴스에 고양이들이 술렁인 이유는 이런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이 국가 최고 통치자라면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 말 못하는 동물과 교감하고 이해하기 위해 애써온 사람이라면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이들, 차별과 소외의 공간에 있는 사람들을 더 잘 포용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지금처럼 날이 서고 벽이 두꺼운 인간 세상의 모서리가 좀 둥글려지지 않을까.
대만에는 ‘허우통’이라는 고양이 마을이 있다고 한다. 만약 여행을 한다면 고양이들의 천국이라는 그곳에 가보고 싶다. 이웃 일본에도 고양이들의 섬 ‘세토우치’라는 곳이 있다고 들었다. 내가 사는 이 땅은 저 두 나라와 어깨를 견주거나 혹은 더 반짝반짝 빛나는 영역도 많은데, 유독 동물에게만큼은 냉혹하고 무심하다. 이 땅에서 아직 많은 동물들은 폭력, 무관심의 대상이 되거나 상품 취급당한다.
고양이들의 천국이라는 그곳에 가서 아무 걱정 없이 골목에 배를 깔고 한번 누워보고 싶다. 집주인이 위험하고 무서운 곳이라서 나가면 안 된다는 그런 인간 세상 한가운데 대자로 누워서 뒹굴거려보고 싶다. 도심을 자유롭게 산책하고 저녁에는 따뜻한 집으로 돌아와 쉬는 ‘산책 고양이’로 사는 건 어떤 기분일까.
하지만 나의 소망은 내 묘생에 아무래도 이뤄지기 힘들 것 같다. 비행기를 타려면 다이어트를 해야 하므로. 지금 몸무게에서 1kg은 빼야 동물 이동함에 들어가 집주인 발치에라도 앉아 비행기를 탈 수 있다. 화물칸에 실려가는 방법도 있지만, 춥고 어둡고 무섭고 여행가방이 쏟아져내릴 것만 같은 그곳에 짐짝처럼 실려가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다. 만약 내 자리를 하나 따로 내준다면? 어떤 첼리스트는 해외 연주 여행을 떠날 때 따로 첼로 자리 티켓을 끊어서 간다고 하더만. 그러니 고양이 자리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지만 스크루지 집주인이 그렇게 해줄리 없지.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카카오톡에서 을 선물하세요 :) ▶ 바로가기 (모바일에서만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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