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만세, 고양이다.
좀 뚱뚱해서 그렇지 건강 하나만큼은 자부하고 지내왔는데, 얼마 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
그날 저녁부터 속이 좀 이상했다. 큰 일을 보고 싶은데 나오지 않고 작은 것을 보려 해도 좀체 불편했다.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공연히 모래를 뒤적여봤지만, 땅을 판다고 똥오줌이 나올 일이 아니었다. 그날 여자 주인은 늦는 날이었고, 남자 주인은 일찍 퇴근해 아기에게 멱살을 잡히며 소파에 앉아 있었다. 남자 주인이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기가 태어난 이후로 그나마 저녁마다 내 등과 목을 쓸어주는 사람은 그였으므로. 소파 앞에 가서 평소와 조금 다른 목소리로 울었다. 뱃속 깊은 곳에서 웅크리고 있던 낮고 굵은 울음을 애절하게 흘렸으나 주인은 알아듣지 못하는 눈치였다. 길고 답답한 밤을 보냈다.
아침이 되었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고 누가 말했나. 이런 거짓말쟁이. 다시 시도해보는데 아무리 용을 써도 나와야만 할 것들이 나오지 않는다. 전날 밤의 그 목소리로 울었다. 몸의 반은 화장실 밖에, 허리부터 엉덩이는 화장실에 넣은 채로 괴로워하는 나를 남자 주인이 발견했다. 다급하게 소리쳤다. “만세가 이상해!”
그제야 집주인들은 화장실을 뒤지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맛동산(모래에 파묻힌 고양이 대변을 일컫는 인간의 말)과 감자(모래로 뭉친 고양이 소변)로 그득한 화장실이 사막처럼 황량하기만 했다. “얘 설 지나고 계속 화장실을 안 쓴 거야?” 그걸 이제야 알았냐, 이 인간들아.
설 연휴가 지나고 집에 돌아온 이후로 화장실에 거의 못 갔다. 인간들에게 명절은 스트레스 덩어리라는데, 그 명절을 함께 보내야 하는 반려동물도 괴롭긴 마찬가지다. 인간들은 용돈이나마 받고 기름진 음식으로 배를 채우기라도 하지, 우리는 낯선 손님들에게 시달리고 공기를 촘촘히 채운 음식 냄새에 질려 숨이 막힐 지경이다. 먼 귀경길을 가야 하는 이들은 또 어떤가. 혼자 있는 것도 어디 맡겨지는 것도 싫어하는 탓에 늘 멀고 먼 주인의 고향까지 따라가긴 하지만 소음이 심한 기차도, 대여섯 시간 실려가야 하는 자동차도 괴롭긴 매한가지다.
그리하여 주인의 출근길에 차에 실려 병원을 찾았다. 병원에서 내린 진단은 스트레스로 인한 방광염. 병명을 알았으니 쓴 약 꾹 참으며 열심히 치료받으면 될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에게 2차 스트레스 쓰나미가 찾아왔다. 아침에 나를 병원에 맡기고 간 주인이 찾으러 올 생각을 안 하는 거다.
하룻밤 입원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대소변을 잘 보는지, 다른 증상은 없는지 감시를 받으며 커다란 유리방에 갇혔다. 검사를 하며 너무 기분이 나빠 오줌을 지렸더니 병원 사람들이 드디어 소변을 봤다고 기뻐하며 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며칠 먹는 둥 마는 둥 지냈더니 탈수가 와서 링거를 꽂고 수액도 맞았다.
그렇게 ‘환묘’가 되어 입원실이라 불리는 철장에 갇히게 되었는데, 여기는 또 웬 개가 이렇게 짖어대나. 인기척만 있으면 짖고 가르릉거리는 부산스러운 존재들과 한방을 쓰고 있자니 성질이 온 털 끝으로 뻗쳤다. 사람들이 손만 대려 하면 소리를 질렀다. 다음날 나를 데리러 온 주인에게 병원 사람들이 울상을 지으며 물었다. “만세 순하다고 하지 않았어요?”
나도 내가 왜 이리 광폭해지는지 모르겠지만, 병원에서만큼은 나를 순한 고양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그렇게 100년처럼 길고 힘들었던 하룻밤이 지나고 돌아와서 이렇게 일기를 썼다. 이제 더 아프지 말아야지. 병원은 정말 싫다고.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카카오톡에서 을 선물하세요 :) <font color="#C21A1A">▶ 바로가기</font> (모바일에서만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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