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만세, 고양이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격돌이 화제였다. 고양이인 내가 어떻게 아냐고? 외출하는 주인이 라디오를 꼭 켜놓고 나간다. 적막한 빈집에서 우리 심심할까봐 그러는지, 까먹고 그러는지 모르겠는데 어쨌거나. 흑돌같이 새까만 제리 형님이랑 백돌같이 하얀 나는 그렇게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듣는다.
이번 이벤트를 계기로 인간 세계에서는 인공지능에 대한 선망과 두려움 같은 게 동시에 생긴 것 같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인공지능이 등장해 인류를 점령하면 어떡하지? 어떤 인공지능 로봇은 이런 말도 했다지. ‘로봇이 지배할 세상이 올 것인가’라는 질문에 ‘인간 동물원을 만들어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인공지능, 그거 자기들이 만들어놓고…. 이렇게 걱정을 사서 하는 종이 인간이다.
인공지능은 고양이와도 썩 연관이 있다. 고양이를 몹시 사랑하는 외국의 어떤 작가는 자신의 책에 이런 말을 쓴 적이 있다. 고양이를 기르는 모든 반려인은 자기 고양이를 인공지능이라 여길 것이라고. 때때로 사람보다 고차원적 생각을 하는 듯한 고양이들을 보고 하는 말인 듯하다. 아니면 자신의 고양이에게 ‘사려 깊음’이나 ‘포근함’ 기능 따위가 입력된 것 같다고 느끼거나.
인공지능에 버금가는 우리의 능력이 무엇이 있는지 늘어놓아보겠다. 별거 아닌 것 같다고 웃으면 안 된다.
첫째, 전에도 한 번 얘기했지만 우리는 집 안에서 가장 아늑한 공간을 찾는 데 뛰어난 능력을 가졌다. 나는 지금 마감하는 주인의 노트북 뒤에 등을 대고 누워 있다. 어둠이 두려운 시간, 가장 아늑한 곳이라면 이렇게 일하는 주인 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때때로 뿜어져나오는 한숨, 호로록 커피 마시는 소리, 컴퓨터 자판 두드리는 소리가 하나로 합쳐져서 묘한 음색을 만들어낸다. 마감 전야의 잔인하고 아름다운 음악이랄까, 라고 쓰면 뻥이고 이 사람이 고생하고 있으면 안도가 된다. 일하고 있다는 것, 우리 사료 살 여력을 마련한다는 것. 세상 가장 마음 편한 순간 아니겠는가. 이렇게 실시간으로 아늑한 공간을 찾는 기능을 가진 로봇은 세상에 없는 걸로 안다.
음, 그리고 또 뭐가 있을까. 파리를 맨손으로 잡을 수 있는 능력, 이런 것도 인간보다 우리가 뛰어나다고 할 수 있겠다. 눈곱만 한 날파리 한 마리가 눈앞에서 집요하게 앵앵거린다. 인간들은 손바닥을 휘휘 저어 대충 쫓아내는데, 조금 있을라치면 또 나타나서 성가시게 구는 게 날파리란 존재다. 날파리가 잠자는 고양이의 수염을 건드리면 어떻게 하냐고? 우리는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고양이 이름 중에 ‘나비’가 그토록 많은 까닭이기도 하다.) 사냥을 한 번에 끝내기 위해 얼마나 치밀하게 각도를 계산해서 앞발을 쭉 뻗는지 인간, 당신들은 아는가.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순식간에 일어난다는 사실이 더 놀랍다. 아마 알파고가 계산하는 속도보다 빠를 거다.
또 뭐가 있을까. 계절의 변화를 예측해 털갈이 시기마다 털을 뿜어 신호를 내보내는 것, 이것은 기후를 예측하는 슈퍼컴퓨터보다 앞서 있다고 자신한다. 하지만 이 모든 대단한 능력에도 우리가 지구를 정복하지 않는 이유는, 인간처럼 지구의 일인자가 되어 살면 얼마나 불편하고 귀찮은 일이 많이 발생하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이런 우리의 존재를 못 알아본 알파고여, 다음에는 우리랑 붙어보자. ‘냥파고’들이 나선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카카오톡에서 을 선물하세요 :) ▶ 바로가기 (모바일에서만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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