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을 구경하는 게 일상의 낙이었는데, 애가 쓰여서 공사장이 펼쳐진 바깥을 내려다볼 수 없다. 신소윤 기자
내 이름은 만세, 고양이다.
계절이 바뀌며 창문을 활짝 열고 지내다보니 바깥에서 나는 소리가 집 안에 고스란히 내려앉는다. 새소리, 물소리, 풀숲에서 ‘우다다’ 하는 아기 고양이 소리…라면 좋으련만 깡깡, 쇠를 두드리는 공사 소음이 올여름 유난하다.
아파트촌인 이 동네에 유일하다시피 남아 있던 지붕 낮은 집들이 있었다. 집집마다 텃밭을 끼고 고추, 파, 옥수수, 배추 따위를 길렀다. 맞은편에는 작은 개울이 흐르고 그 뒤로는 오래된 동네 맛집들이 줄줄이 서 있었다. 주인은 베란다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다음엔 이 집, 그다음엔 저 집… 하며 동네 친구들이 추천해준 소박한 식당들을 언제 방문할지 마음속으로 꼽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눈을 떠보니 모든 것이 폭삭 무너져 있었다. 인간들이 집을 짓는 방식이었다.
오래된 집들이 쓸려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그곳을 터전 삼아 살던 고양이들의 행방을 알 길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인간들이 사는 도시에서 동네가 사라지고 무너지는 건 일상인 것 같다. 그래서 동물 보호 활동을 하는 인간들은 재개발 지역 길고양이 구조 활동을 하기도 한다.
주인 어깨너머로 들여다본 컴퓨터 모니터에는 사람들이 모두 떠난 황량한 아파트 출입문에 빨간 래커로 커다란 동그라미를 그려놓은 사진이 띄워져 있었다. 주인은 이곳에 더 이상 사람이 살지 않으니 건물을 무너뜨려도 된다는 뜻이라고 했다. 우리 집에서 내려다보이던 그 건물들에도 래커로 ‘철거 예정’이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다. 하지만 인간들은 모른다. 커다란 ‘OK’ 표시 뒤에 나의 친구들이 갇혀 있다는 사실을.
재개발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동물들은 곧 무너질 예정인 건물에 몸을 기대고 산다. 곧 내려앉을 처마 아래서 낮잠을 잔다. 동물들에게는 “○월○일자로 네 집이 부서지니 다른 살 곳을 찾으시라”는 계고장 따위도 날아들지 않는다.
우리 동네에서 건물을 부수기 시작한 때는 봄이 한창 무르익을 무렵이었다. 고양이들이 식구를 늘리는 계절이다. 새끼들을 길바닥 풀숲에 풀어놓아도 살아남을 수 있는 계절에 어미는 몸을 푼다. 어쩌면 담벼락이 와르르 쏟아지기 직전까지 어미는 담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른 채 새끼들 젖 먹이고 있었을지 모른다.
중장비가 지나다니는 공사 현장에서 이들은 살아남을 수 없다. 무너진 건물 아래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할 수도 있고, 거대하고 무거운 공사 장비에 사고를 당할 수도 있다. 행여 목숨을 부지했더라도 공사장 안에서 삶을 이어나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고양이는 영역 동물이므로 스스로 공사장 밖을 벗어날 리 없다. 공사장 가림막에 갇힌 고양이들은 음식과 물을 구하지 못하고 굶어죽을 가능성이 크다. 누군가 고양이를 발견해 공사장 밖에 놓아준다고 해도 살아갈 방법이 막막하긴 마찬가지다. 아무 준비 없이 낯선 환경에 놓인 고양이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병에 걸릴 가능성이 크다. 다른 고양이들이 사는 영역에 멋모르고 들어갔다가 공격 당하고 생명을 위협받을 수도 있다.
인간들은 왜, 무슨 권한과 이유로 원래 그곳에 있던 동물과 식물과 어떤 때는 같은 종족인 사람까지 내쫓고 밀어내고 마을을 부수는 걸까. 인간들이 만든 재난에 갇힌 내 친구들의 무사한 하루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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