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만세, 고양이다.
늘 그렇듯 오늘 아침도 부산하다. 잠이 너무 깊어 늘 천지를 개벽할 알람을 맞춰놓고 자는 집주인1이 허둥지둥 나가고 나면 아기와 집주인2의 두 번째 아침이 시작된다. 젖은 머리카락을 말리지도 않은 채 냉장고에서 음식을 주섬주섬 꺼내 아기 밥을 먹이는데, 입으로 들어가는지 콧구멍으로 들어가는지. 그러니 아기는 음식을 줄줄 흘리고 이것을 놓칠세라 제리 형님은 식탁 아래서 그걸 주워먹느라 바쁘고, 집주인은 또 그걸 못하게 하느라 식탁 위에서 아래로 허리를 폈다 굽혔다, 아이고 정신없어라.
아직 엄마가 필요한데 엄마가 돼버린 집주인은 요즘에야 겨우, 가끔이라도 제리 형님의 엄마는 어떤 개였을까, 우리 엄마는 어떤 고양이였을까 생각해본다고 한다. 무심하긴 나도 마찬가지였다. 엄마 시즌2를 시작한 주인을 보며 우리의 엄마들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
엄마, 우리 엄마는 어떤 고양이었을까. 나는 흔히 말하는 믹스묘다. 아빠는 터키시앙고라, 엄마는 한국 토종 고양이인 코리안쇼트헤어다. 나는 코리안쇼트헤어처럼 작은 얼굴과 둥근 몸집을 가졌고, 터키시앙고라처럼 하얗고 복슬복슬한 털옷을 입었다.
집주인은 우리 엄마가 어떤 무늬를 가진 고양이였을지 궁금해한다. 코리안쇼트헤어는 노란 줄무늬의 치즈, 짙은 회색 줄무늬의 고등어, 노랑·까망·하양 털이 섞인 카오스, 까만 털에 손이나 발끝만 하얀 턱시도 등등 다양한 무늬를 가졌다. 아마 나긋하고 상냥한 성격의 노란 치즈가 아니었을까, 주인은 추측한다. 별일이 없다면 서울 외곽 어느 동네의 작은 집에서, 오늘도 털을 푹푹 날리며 평화로운 하루를 보내고 있을 엄마의 안부가 종종 궁금하다.
제리 형님의 엄마는 어떤 개였을까. 제리 형님은 태어난 지 2개월도 채 되지 않아서 엄마와 헤어졌다. 서울 충무로의 애견센터, 그곳은 한밤중에도 하얗게 반짝거린다. 눈부신 그곳에 모이는 개, 고양이들의 엄마 가운데 다수는 몹시 열악한 환경에서 새끼를 낳고 제대로 거둬보지도 못한 채 또 임신을 한다. 허공에 뜬 철장에 갇혀 1년에 두 번씩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는 종견장의 모견들은 몸이 남아나질 않다보니 늘 항생제를 달고 산다. 보통 개 평균수명의 3분의 1밖에 채우지 못한다고들 한다.
여기서 태어난 강아지들도 선천적으로 몸이 약하다. 그런 탓인지 집에서 태어난 나보다 제리 형님은 여기저기 아픈 곳이 많다. 언제 한번 제리 형님이 몹시 아파 병원을 전전할 때였다. 제리 형님의 상태를 살펴보던 의사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강아지가 태어났다고 말했다. 건강 상태가 매우 나쁜 엄마가 강아지를 낳았을 것이고, 그래서 제리 형님도 선천적으로 질병을 안고 태어났다는 것이다. 집주인은 그 말을 듣고 제리 형님도, 그의 엄마도 너무 딱해서 속이 상했다고 한다. 그래도 그렇지, 세상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생명이 어디 있나.
제리 형님의 엄마는 다른 강아지보다 예쁘게 생겼다는 이유로 평생 종견장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인형같이 예쁘게 생긴 개를 공장에서 찍어내기 위해서는 인형처럼 예쁜 엄마가 필요했을 테니까. 제리 형님을 데려오던 그날의 충무로 애견숍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강아지를 선물하려는 연인과 가족들로 북적였다. 무지했던 주인들은 쇼핑하듯 이집 저집 돌아다니며 예쁜 강아지와 고양이를 찾았던 그 순간이 죄스럽다.
수십 마리 강아지의 엄마였을, 제리 형님의 엄마는 지금쯤 종견장을 떠났을까. 아주 운이 좋아서 그가 누군가로부터 구조돼 단 하루라도 푹신한 바닥에서 잠자고 깨끗한 물과 밥을 먹을 수 있었다면 좋겠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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