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만세, 고양이다.
으악! 체중계에 올라선 주인이 소리를 질렀다. 체중계에 빨간색으로 표시된 숫자가 근심스럽게 깜박였다. 내 그럴 줄 알았지, 허구한 날 우리에게 한입의 아량도 베풀지 않고 치맥을 뜯어라 마셔라 하더니. 그렇게 혀를 차고 있는데, 주인이 소리친 이유는 다름 아닌 나 때문이었다. “정체를 밝혀라. 돼지냐, 고양이냐.” 주인은 품에 안고 있던 내 엉덩이를 팡팡 두드리며 잔소리를 해댔다. 6.5kg. 2년쯤 전 내가 5kg을 경신했을 때 주인은 다니는 동물병원의 의사로부터 다이어트를 권고받았다. 4kg 정도가 나에게 적정 체중이라고 했다. 인간들은 몸무게 앞자리 숫자의 변화에 울고 웃고 한다던데, 5.1, 5.2, 5.3… 5에 덜미 잡힌 몸무게는 좀처럼 그 이전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는 듯했다. 그리고 드디어 마의 6kg대를 넘어섰다.
나에게도 한때 허리가 잘록하고 목과 다리가 늘씬하던 콜라병 몸매 시절이 있었다. 처음에는 허리 라인이 사라졌다. 몸이 약간 올록볼록해 보이는 상태, 이런 상태가 과체중이다. 다음으로는 허리 위와 아래로 살이 붙기 시작한다. 위에서 봐도 둥글고 옆에서 봐도 둥글고 뒤에서 봐도 둥글고…. 이때를 심각한 비만 상태라고 한다는데 내가 그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런데 나만 혼나는 게 억울하다. 제리 형님도 문제다. 3kg이 적정 체중인 이 형님은 지금 4kg을 넘나든다. 주인만 보면 먹을 것을 달라고 채근한다. 아기 식사 시간에는 늘 식탁 언저리를 하이에나처럼 서성인다. 하늘에서 먹을 것이 떨어지므로. 동물도 비만이 되면 각종 병을 얻기가 쉽다. 중성화 수술을 한 개와 고양이들은 식욕과 수면욕이 커져 더 많이 먹고 많이 자는, 살찌기 딱 좋은 체질이 된다. 우리 두 동물 모두 중성화한 상태다. 고양이는 특히 야생에 있을 때 먹은 음식을 지방으로 저장해뒀다가 사냥할 때 에너지원으로 써왔기 때문에 집에서만 생활하면 살이 찌기 더욱 쉽다.
그리하여 우리는 혹독한 다이어트에 들어가기로 했다. 주인이 아기 때문에 숨겨두었던 우리 장난감을 꺼냈다. 깃털이 달린 낚싯대를 꺼내 내 앞에서 흔들었다. 앞발에 닿을 듯 말 듯 깃털을 붙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잊고 지냈던 사냥 본능이 자극됐다. 슬슬 발동이 걸리니 주인이 더 높은 곳에서 낚싯대를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이리 쿵, 저리 쿵 점프를 하며 주인의 장난에 호응했다. 하지만 이내 중력을 거스르지 못하는 나의 푸짐한 엉덩이 때문에 뛸 때마다 땅으로 푹푹 꺼지는 기분이다. 이러다 무릎에 무리가 가겠어. 낚싯대를 그만 흔들도록 하여라 주인이여, 난 소중하니까.
주인은 포기하지 않고 조그만 공을 꺼냈다. 고양이도 강아지처럼 공이나 작은 물건을 던지면 물어오는 놀이를 좋아한다. 공을 내 눈 앞에서 흔들어대더니 거실 저 끝으로 던졌다. 제리 형님과 내가 경쟁하듯 달려나갔다. 그리고 요즘 말을 배우느라 바쁜 아기도 “아오아오” 내 울음소리를 흉내 내며 우리 뒤를 쫓았다. 가장 먼저 도착해 위풍당당 입에 공을 물었으나 지체 없이 아기가 낚아챘다. 우리의 체육 시간에 어느덧 아기만 바빠졌다. 이 집에서 유일하게 몸무게 늘 때마다 잘했다 소리 듣는 이가 살 빠지게 생겼다. 주인은 다시 우리 장난감을 서랍장 깊숙이 넣어뒀다.
이렇게 우리의 다이어트는 실패할 것인가. 주인은 최후이자 최선의 카드를 꺼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덜 먹어야 살이 빠지는 것이 진리. 이번에 단단히 작심한 주인이 사료 양을 정해 급여를 하기 시작했다. 이 인간이 언제부터 이렇게 엄격했다고. 대재난의 시절이다. 배가 고프다. 밥이 없으면 빵이라도 달라.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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