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만세, 고양이다.
가끔 인간들이 쓰는 물건의 용도가 궁금할 때가 있다. 책이나 TV에서 보여주는 인간들의 일상이 표준인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 집에 사는 인간들이 물건을 쓰는 방식은 표준에서 한참 벗어나 있는 경우가 많다. 어떤 게 맞는 걸까.
우선 소파. 나는 소파와 침대의 용도를 구분할 수가 없다. 집주인들이 몇 해 전 소파를 바꿨는데 두 가지 기준이 있었다. 첫째는 고양이 발톱에 걸리지 않는 매끄러운 재질일 것. 왜냐면 소파를 바꾼 가장 큰 이유가 내가 이들이 결혼하면서 산, 여자의 아버지가 선물한 첫 번째 소파를 다 망가뜨려놨기 때문이다. 나는 주인들에게 소파를 사용하는 새로운 방법을 알려주었다. 올록볼록한 재질의 그 소파는 스크래칭(고양이가 발톱을 날카롭게 다듬는 행위, 스트레스를 풀고 자기 영역을 표시하는 본능)을 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신나게 박박 긁었다. 거대한 나의 스크래처는 보풀이 잔뜩 인 스웨터처럼 너덜너덜해진 채 우리 곁을 떠났다. 소파를 버리던 날 나는 주인에게 엉덩이를 팡팡 맞았다.
주인들이 새 소파를 마련하며 내건 또 하나의 조건은 ‘불편할 것’이었다. 소파에 늘어져 한없이 누워 지내는 일을 사전에 막겠다는 거였다. 팔걸이는 딱딱한 나무로 되어 있고 엉덩이를 대고 앉는 곳의 폭은 좁았다. 나는 상품 안내서에 나온 모델처럼 주인들이 그 소파에 반듯하게 앉아 지낼 줄 알았다. 하지만 소파를 산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이 인간들은 거기에 끝끝내 몸을 욱여넣고 누웠다. “의외로 편하다”면서. 소파는 무엇이고 침대는 무엇일까. 함께 사는 아기는 시종일관 두 물건 위에서 뛰던데, 그러니 더 헷갈린다. 이 물건들의 용도는 무엇일까. 눕는 걸까, 앉는 걸까, 뛰는 걸까.
서랍장은 어떻게 쓰는 물건일까. 나란히 놓인 두 개의 서랍장을 보며 나는 생각한다. 왼쪽, 한 사람이 쓰는 서랍장은 칸칸이 물건들의 방이 정해져 있다. 1층 바지, 2층 티셔츠, 3층 운동복, 4층 양말, 5층 속옷. 양말은 크기별로 접는 법을 달리해 들어앉아 있고, 모든 것이 사각형으로 접혀 놓여 있다. 오른쪽, 또 다른 사람이 쓰는 서랍장은 1층부터 5층까지, ‘카오스’라는 단어가 거기에 적합하다. 모든 물건이 서로 멱살을 잡고 뒤엉켜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른쪽을 쓰는 사람이 정리를 더 자주 한다. 서랍장은 무엇일까. 오른쪽 서랍장은 바로 옆에 놓인 쓰레기통이랑 무엇이 다른 걸까.
이것 말고도 용도가 궁금한 것이 여럿이다. 화분은 무엇일까. 화분은 식물들의 지옥일까. 손만 닿았다 하면 식물을 시들게 하는 마이너스의 손이 우리 집에 산다. 냉장고는 무엇일까. 이곳은 음식들의 무덤인가. 한번 들어가면 썩어야 나올 수 있다. 그리고 가방은? 책은? 스마트폰은? 너무 많은 인간들의 물건이 나를 혼란스럽게 한다.
봄이 생동한다. 주인이 기지개를 켜고 집안 정리를 하는 계절이 시작됐다는 뜻이다. 그는 이내 엉망진창 회귀 본능을 지닌 자신의 서랍이며 책상 앞에서 한숨을 쉴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너무 많은 물건을 이고 지고 살아서인 것 같다. 고양이처럼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물건들과 싸우며 괴로울 일도 없을 텐데.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카카오톡에서 을 선물하세요 :) ▶ 바로가기 (모바일에서만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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