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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에게 모든 인간은 나치다

동물과 약자에 대한 폭력과 착취의 역사를 파헤친, 찰스 패터슨의 <동물 홀로코스트>
등록 2014-09-20 14:21 수정 2020-05-03 04:27

당신이 육식주의자라면 (찰스 패터슨 지음, 정의길 옮김, 휴 펴냄)는 무척 불편한 책일 테다. 한장 한장 넘기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어제, 혹은 오늘 먹은 고기가 떠오를 수도 있다, 아주 불쾌하게. 평생 지켜온 식성까지 변할지도 모른다. 덧붙이자면, 우리말로 옮긴 정의길 선임기자는 “이 책을 번역한 뒤 인간 착취의 근원인 동물 착취를 절감하면서, 채식주의자로 변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고

이 책은 동물들에 대한 인간의 지배구조와 착취, 산업화된 동물 도살의 역사와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인간성의 상실, 만연된 폭력과 착취 문화가 그곳에서 움텄다고 보기 때문이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동물들의 참혹한 모습을 통해 인간의 잔인함과 폭력성을 드러낸다. 닭들은 태어난 지 7주만 되면 도축된다. 닭의 자연 수명은 15~20년이다. 인공적으로 부풀려진 영계들은 자연 수명의 100분의 1도 못 사는 셈이다. 돼지와 양도 5~7개월만 되면 도축장에 보내진다. 식육용 송아지는 4개월만 되면 우리를 떠난다. 송아지는 이때 처음으로 걸어서 도축장으로 향하는 트럭에 실린다.

〈동물 홀로코스트〉는  인간의 무심함과 무자비함 속에 동물에 대한 폭력과 착취가 계속되고 있다고 말한다. 도살장에 있는 돼지들의 모습. 한겨레 류우종 기자

〈동물 홀로코스트〉는 인간의 무심함과 무자비함 속에 동물에 대한 폭력과 착취가 계속되고 있다고 말한다. 도살장에 있는 돼지들의 모습. 한겨레 류우종 기자

작가이자 역사가인 지은이 찰스 패터슨은 동물에 대한 인간의 무자비한 학살과 착취는 히틀러가 유대인에게 자행한 대학살인 홀로코스트와 다를 바 없다고 말한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이자 채식인으로 알려진 아이작 바셰비스 싱어도 “동물과의 관계에서 모든 사람들은 나치이다. 그 관계는 동물들에게는 영원한 트레블링카(유대인 수용소)이다”라고 했다. 일례로 자동차 제조업자 헨리 포드가 구축한 대량생산 시스템은 도살장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작품이다. 이 조립라인식 도축은 동물육종에서 영감을 받은 미국의 우생학(유전법칙을 응용해 인간 종족의 개선을 연구하는 학문)과 함께 나치 독일의 히틀러에게 큰 영향을 준다. 나치 독일은 인간 학살의 효율성을 높이려고 유대인을 인간이 아닌 ‘동물’처럼 보이도록 무던히 애썼다고 한다. 살인이 도축처럼 보이도록 의도한 것이다.

이 책에서 동물권 운동가인 블랑크도 수용소에서의 학살 과정과 도살장 안에서의 도살 과정, 수감자와 동물에 대한 존엄 박탈 과정 등을 살펴보면 나치 시대와 오늘날 동물에게 가해지는 것 사이에는 유사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 수용소의 작업자들 중 상당수가 도살장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이들이었단다.

저자는 동물에게 자행하는 폭력이 약자인 인간에 대한 폭력과 착취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노예, 여성, 이민족, 식민지 원주민, 유대인 등은 인간성이 부족하고 동물적 성격이 섞여 있다며 학대당했다고. 전시에는 적군이나 적국의 민간인을 동물로 치부하거나 동물로 비하함으로써 더 무자비해질 수 있도록 했다.

마비된 인간의 지성과 도덕

책은 동물과 약자에 대한 폭력과 착취를 알고도 침묵하는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린다. 임순례 영화감독은 추천사에서 “흑인 노예들의 해방을 위해 애쓴 사람들이 있었고, 여성이나 아동, 장애인 등에 대한 차별에 눈감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인류는 도덕적인 진화를 거듭해왔다. 이제 동물들의 홀로코스트를 눈감지 않는 용기와 지혜, 그리고 윤리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대이다. 동물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은 인간의 지성과 도덕이 마비되었음을 우회적으로 말해줄 뿐이다”라고 했다. 인간의 무심함과 무자비함 속에 자행되는 동물과 약자들의 고통이 계속되는 한 홀로코스트로 불리는 이 잔혹하고 잔인한 대학살의 역사는 결코 끝나지 않을 테니.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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