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음악하는 사람과 결혼하면 매일매일 음악에 둘러싸여 살 줄 알았다. 이른 아침에 음악 소리에 잠을 깨고 밥을 먹을 때나 술을 마실 때나 그날의 분위기에 따라 언제나 BGM이 깔려 있는 삶. 혹은 가끔씩 남편이 나를 위해 통기타를 연주해주는 뭐 그런 거. 기대했다. 그러나 뮤지션과 결혼한 지 1년이 다 되어가지만 그런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고 있다.
심지어 어떤 날은 이랬다. 집에서 혼자 음악을 틀어놓고 있었는데 뒤늦게 들어온 남편이 시끄러우니까 음악 좀 끄라고 했다. 이럴 수가. 뭔가 심하게 억울했다. 하루 종일 업무에 시달리다가 집으로 돌아와 음악을 들으며 스트레스를 풀고 기분 전환을 하던 내가 오히려 결혼 뒤 남편 때문에 음악을 듣지 못하게 되다니! 그것도 뮤지션과 살면서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 휴일이라 남편의 스튜디오를 찾았다. 그는 다른 뮤지션들과 녹음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처음으로 긴 시간 눌러앉아 그의 작업을 지켜보게 됐다. 하나의 곡이 어떤 과정을 통해 완성되는지를 들여다보는 일은 꽤나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노래의 느낌만 살려놓은 데모를 바탕으로 드럼·기타·베이스 등의 연주를 입히면서 곡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신기했던 건 나는 전혀 알아챌 수 없는 소리의 미세한 차이를 남편과 다른 뮤지션들은 하나하나 감별해낸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기타를 치는데 기타의 종류에 따라 소리가 다르고 기타와 연결된 앰프가 무엇이냐에 따라서도 소리가 달랐다(물론 내가 듣기엔 똑같았지만). 해당 곡에 맞는 기타의 소리를 찾아내는 일에만 30분 넘게 걸렸다. 이 기타로 연주했다가 저 앰프를 꽂았다가 여러 가지를 시험해가며 가장 적당한 조합을 찾는 것이다. 그 와중에 소리의 질감에 대한 별별 묘사가 다 나왔는데 탁하고 맑고, 무겁고 가볍고 등의 표현부터 시작해서 “좀 먹먹하다” “아니 이건 좀 둔탁하고” “너무 타이트한데” “톤에서 이질감이 느껴져” “좀 부드러운 오버드라이브 소리가 좋겠어” “소리가 너무 얇네” 등등이었다. 심지어 “소리가 낼름거려” “갑자기 늙은 소리가 나”라는 표현까지 나왔다. 대체 소리의 끝은 어디란 말인가.
기타의 ‘소리’를 찾은 뒤에도 연주는 반복됐다. 최종 녹음 단계에서는 곡의 어떤 부분에서 어떤 방식의 연주를 해야 하는지 대체로 계획이 짜여 있긴 하지만, 세세한 차이로 인한 다름은 분명히 존재했고 그중에서 어떤 것이 최선인지에 대한 고민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것도 물론 내가 듣기엔 둘러치나 메어치나 그다지 구별이 안 가는 차이이긴 했지만, 그들에겐 어느 것도 소홀히 할 수 없는 부분인 듯했다. 그날 남편은 오후 1시부터 밤 12시까지 11시간 동안 녹음 작업을 했다.
여기서 남편이 전문으로 하는 믹싱이나 마스터링 단계까지 가면 소리 감별 작업은 더욱 어려워진다. 어떤 악기가 노래의 중심이 되느냐에 따라, 어떤 효과음을 추가하느냐에 따라 곡의 느낌은 또다시 달라진다. 그동안 나는 음악을 들을 때 주로 멜로디나 가사에만 집중해왔는데 이건 진짜 음악을 헛들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셈이다(뮤지션의 아내가 되는 길은 아직 멀고도 험하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면서 남편이 가끔씩 했던 말이 생각났다. “같은 소리를 수백 번 반복해서 들으면 어느 순간 귀가 마비되는지 더 이상 소리를 구별할 수 없게 돼. 그럴 땐 좀 쉬어야 다시 소리가 들려”라고. 엄살이라고 생각했는데 겪어보니 충분히 그럴 만하겠다 싶다. 그래, 하루 종일 귀를 혹사당하다가 집에 왔는데 온 집안에 음악 소리가 크게 울려퍼진다면 짜증이 날 만도 하겠구나. 앞으로 음악은 이어폰 꽂고 듣는 걸로. S기자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비 오는 광화문 메운 ‘윤 퇴진’ 촛불행렬…“국민 뜻 깡그리 무시”
인간이 닿지 않은 50년 ‘비밀의 숲’…베일 벗자 황금빛 탄성
‘윤, 민주당 손이라도 잡으라’ 홍준표 조언…수용해야 모두가 산다
[영상] 광화문 선 이재명 “난 죽지 않는다”…촛불 든 시민들, 이름 연호
‘58살 핵주먹’ 타이슨 판정패…30살 어린 복서는 고개 숙였다
‘조폭 문신’ 미 국방 지명자…곳곳에 극우 기독교·인종주의 표식
모텔 입주 안산 6층 건물서 불…51명 구조, 2명 중상
‘10도 뚝’ 찬바람 부는 일요일…다음주 서울은 영하 추위
[영상] 윤 ‘부적절 골프 의혹’ 골프장 직원 신상, 경찰 ‘영장 없이 사찰’ 논란
130쪽 이재명 판결문…법원, ‘백현동 발언’ 당선 목적· 고의성 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