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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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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엔 흥겨움이 있고 자유가 있더라

성역과 권위, 차별이 없는 뮤지션들과 함께하는 술자리…

음악이 나오면 일어나 춤을 추고 예술·삶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등록 2014-12-13 14:33 수정 2020-05-03 04:27

음주문화가 잘 발달한 조직을 꼽으라고 했을 때 빼놓으면 서운한 것이 바로 언론계다. 사실 기자들의 음주문화는 ‘발달했다’고 표현하기엔 민망할 만큼 무식하다. 기자가 된 뒤 선배 기자들에게 가장 먼저 배운 것이 바로 소주+맥주=폭탄주 제조법이었는데, 자칫 소주의 양이 너무 많이 들어가면 선배들은 이것을 ‘짜다’고 표현하면서 타박을 했다. ‘쓰다’도 아닌 ‘짜다’의 표현은 대체 어디서부터 비롯됐는지 아직까지도 모른다. 어쨌든 언론계는 잘 제조된 소폭을 목구멍에 냅다 들이붓는 전근대적 방식의 음주문화를 몇십 년째 탄탄히 유지하고 있다.

서울 홍익대 앞에 있는 한 펍에서 뮤지션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뮤지션 제공

서울 홍익대 앞에 있는 한 펍에서 뮤지션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뮤지션 제공

지난해 이런 음주문화에 익숙한 기자 몇 명을 데리고 뮤지션들의 술자리에 간 적이 있다. 남편이 속한 인디밴드의 공연이 끝나고 뒤풀이로 모인 그 술집에서는 뮤지션들과 그의 지인들, 관객들이 뒤섞여 있었다. 한 손에 술잔을 들고 의자에 앉거나 서거나 춤을 추거나 얘기를 하는 다양한 사람들 사이로 나의 기자 친구들은 그야말로 ‘뻘쭘하게’ 서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 다양한 얘기를 듣는 직업이 기자인데 어째서 그들은 그리도 어색해 보였는지…. 그들은 결국 채 1시간도 놀지 못하고 자리를 뜨고 말았다. 이후에 다시 만난 친구들은 여전히 폭탄주를 때려넣는 음주문화를 이어나갔다.

다행히도 나는 뮤지션 남편 덕분에 가끔씩이나마 이런 전근대적 음주 방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뮤지션과 함께하는 술자리에는 음악이 있고, 다양함이 있고, 흥겨움이 있고, 자유가 있다. 그들과 만나면 다양한 이야기가 나왔다. 예술, 삶, 음악 등에 대한 얘기도 있지만 의외로 많은 인디 뮤지션들이 사회와 정치에도 관심이 많았다. 이들과 얘기하다가 흥겨운 음악이 나오면 일어나 춤을 추기도 하고 힘들면 다시 앉아 얘기를 나누고 음악을 듣다보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흘러갔다. 그들에겐 성역이 없고 권위가 없고 차별이 없다. 어떤 문화가 ‘발달했다’고 표현할 수 있으려면 적어도 이 정도는 돼야 하지 않을까.

뮤지션들의 독특한 문화 가운데 또 다른 한 가지는 카페, 클럽, 펍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자신들만의 단골 술집이 있다는 것이다. “언젠가 잃어버렸던 내 마음 한구석/ 그 자릴 채우려 내가 또 찾아가는 곳/ 아무 약속 없이 만날 수 있는 사람들/ 별다른 얘긴 없지만/ 메마른 시간 적셔주는 술잔을 기울이며….” 전설의 밴드 ‘어떤날’ 2집에 실린 이라는 노래 가사처럼 아무 약속 없이도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언제나 그곳에 모여 있고, 별다른 얘기도 없이 서로 술잔을 기울일 수 있는 그런 장소 말이다. 남편과 처음 사귀기 시작하자마자 남편이 “꼭 같이 갈 곳이 있다”며 나를 데려간 곳이 바로 그런 곳이었다. 이후 나의 단골이 된 그곳은 하릴없이 가서 맥주 한 잔을 시켜놓고 있으면 인디 뮤지션들이 하나둘 모여들고 그들과 오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 되었다.

뮤지션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부정적 단어들 가운데는 문란, 퇴폐, 타락 뭐 이런 단어가 있다. 뮤지션들이 즐기는 흥겨운 문화생활에 대한 편견이나 심심하면 튀어나오는 ‘뮤지션 ××× 대마초 혐의 입건’ 등과 같은 호들갑성 보도들도 그런 이미지를 생산하는 데 한몫하는 것 같다. 그러나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는 ‘권위를 이용한 술자리 성추행’이나 ‘접대를 위한 룸살롱 문화’ 등 비인간적 행위가 일어나는 세계보다는 뮤지션의 세계가 훨씬 더 깨끗하고 순수한 게 아닐지.

S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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