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제야의 종소리는 집에서 혼자 들었다. 뮤지션 남편은 그날 밤 공연이 더블로 잡혀 있었다. 밤 10시께 광화문 공연이 있었고, 그것이 끝나자마자 홍익대 앞 작은 클럽으로 옮겨 공연을 하면서 ‘카운트다운’을 한다고 했다. 남편과 함께 시끌벅적한 클럽에서 2015년을 맞이할까도 잠시 고민했지만 몸 컨디션을 고려해 집에 남았다. 밤 12시 정각, 남편과 나는 전화로 새해 인사를 나눴다.
생각해보니 우리 부부는 2013년 제야의 종소리를 들을 때도 함께하지 못했다. 그때는 내가 국회에서 예산안 통과 상황을 취재하느라 2014년 1월1일 새벽까지 로텐더홀에 죽치고 앉아 있었다. 지금은 국회법이 바뀌어 여야가 예산안을 12월31일까지 끌고 갈 상황이 사라졌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국회 출입기자에게 12월31일에 가족과 함께하는 저녁은 허락되지 않았다. 어디 12월31일뿐일까. 크리스마스 등 각종 ‘가족형 휴일’에 기자·뮤지션 커플이 함께 시간을 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평소에 같이 보낼 시간이 많은 것도 아니다. 평일엔 기자가 바쁘고 주말엔 뮤지션이 바쁘니까.
한때 남편과의 결혼을 놓고 고민한 적이 있었다. 이 사람과 결혼할까 말까를 고민한 게 아니라 이 사람과의 결혼을 부모님께 어떻게 알릴까에 대한 것이었다. 뮤지션, 그것도 인디 뮤지션은 보통의 부모님들이 좋아하는 사윗감은 분명히 아니기 때문이다. 당시 이런 고민을 장성한 딸을 둔 선배에게 털어놓았을 때 그 선배는 이렇게 말했다. “기자도 그렇지만 뮤지션이 좋은 직업은 아니지. 인기가 많으면 공연하러 다니느라 바빠서 가족과 시간을 보낼 시간이 없을 테고, 반대로 가족과 보낼 시간이 많다면 그만큼 돈을 못 번다는 뜻이잖아. 부모님이 좋아하진 않으실 것 같은데.”
어쨌든 언젠가는 해야 할 얘기였다. 고민을 거듭한 끝에 나는 아버지에게 장문의 전자우편을 보냈다. 언론사 입사 준비를 시작하면서 아버지한테 취업할 때까지 매달 생활비를 보내달라고 부탁하는 전자우편을 보냈을 때보다 더 떨렸다. 생각해보니 각종 불효녀짓(?)을 할 때마다 나는 비겁하게 직접 대면이나 전화 통화가 아닌 전자우편을 이용해온 것이었다. 아무튼,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부터 시작한 편지는 엉뚱하게 전 남자친구들 이야기로 흘렀다가 (난 그때까지 사귀는 사람들에 대해서 부모님에게 단 한 번도 얘기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이왕 남자에 대해 얘기를 시작한 김에 과거까지 털어놓았던 것 같다) 남편과 만난 이야기, 왜 남편을 ‘좋은 사람’이라고 판단했는지에 대한 근거 등등을 주저리주저리 읊었다. 마지막에는 ‘둘 사이를 축복해줬으면 좋겠다’고 제법 당당하게 썼다. 그 뒤에 ‘물론 저의 바람이지만요 ㅜㅜ’라고 소심하게 덧붙이긴 했지만….
답장은 하루 만에 왔다. 그 하루가 참 길었지만 아버지의 답장을 받고 코가 시큰해졌다. “긴 글 찬찬히 읽었다. 답은 의외로 간단할 것 같다. 삶의 최대 목표는 행복이다. 네가 행복할 수 있다면 아빠는 반대하지 않는다. 언젠가 후회한대도 오늘의 행복으로 보상받을 수 있다면 미래를 염려하는 것은 우치다. 아빠는 너를 사랑한다. 아빠가 너를 사랑하는 마음이 변할 수 없듯이 그 사람의 너에 대한 마음도 변함없기를 희망한다. 아빠가.”
보고 있나, 남편? 우리의 행복은 우리가 잘해서 얻은 게 아니라는 걸 깨달으며 살아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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