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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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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쑥 자라라, 털들아

‘절대 동안’ 남편의 머리카락이 우수수…

풍성한 머리칼을 위해 담금주에 발모차·발모팩 만들고 또 만들고
등록 2014-10-30 15:57 수정 2020-05-03 04:27

뮤지션과 살면 가끔씩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생긴다. 내가 아는 많은 뮤지션이 ‘초특급 동안’이라서 ‘그냥 동안’인 내가 손해를 보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마흔이 되는 일이 얼마 남지 않은 남편도 그 나이로는 절대 안 보이는 외모의 소유자다. 누군가는 “좋겠다”고 얘기할 수 있지만 하나도 안 좋다. 지인에게 남편을 소개해줬을 때 “남편이 연하야?”라고 되묻는 일을 많이 당하다보면 남편의 동안 외모가 좋을 수만은 없다. 나도 한때(?)는 어려 보인다는 소리를 꽤 많이 들었다. 그랬던 내가 남편 옆에서 왜 이런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야 한단 말인가.

5ℓ짜리 항아리 두 개를 꽉 채우고 있는 발모팩. 3개월의 숙성 과정을 거치면 완성된다. S기자 제공

5ℓ짜리 항아리 두 개를 꽉 채우고 있는 발모팩. 3개월의 숙성 과정을 거치면 완성된다. S기자 제공

사람의 외모는 무엇을 하고 어떻게 생각하면서 사느냐에 따라 꽤 달라지는 것 같다. 뮤지션들이 하나같이 제 나이보다 어려 보이는 건 캐주얼한 옷과 헤어스타일 때문만은 아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면서 살기 때문 아닐까. 회사원처럼 꽉 막힌 일상에 찌들어 사는 것이 아니라,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적당히 창의력을 발휘해가며 사는 생활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얼굴도 그에 맞춰지는 것 같다. 가끔 남편의 피부를 자세히 들여다볼 때면 울고 싶어진다. 나보다 더 매끈하다. 흑흑.

그런 그에게 최근 고민이 생겼다. 하나둘 빠지기 시작한 머리카락 때문이다. 피부가 아무리 좋고 얼굴이 아무리 어려 보인들 대머리 앞에서는 무용지물이 아니던가(전국 대머리 여러분들 죄송합니다). 남편은 머리 속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 어느 무렵부터 자신의 외모 기준을 ‘넓은 이마가 잘 가려지는지의 여부’로 판단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사진이 잘 찍혔는지 확인할 때도 “이 사진은 별로야. 머리숱이 너무 없어 보여”라고 평가하는 식이다. 이렇듯 점점 위기의식을 느끼던 남편은 최근 지인에게 이런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뮤지션은 대머리가 되면 끝장이야.”

처음으로 머리카락이 나는 약을 먹어볼까 고민하던 남편은 얼마 전 시어머님에게 놀라운 얘기를 들었다. 바로 ‘어성초’의 위력이다. 최근 한 TV 프로그램에서 의사 한 명이 나와 어성초를 이용해 직접 만든 발모팩을 소개했는데 효과가 그렇게 좋다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그 의사의 발모팩 사용 전후 사진을 보니 입이 떡 벌어졌다. 완벽한 대머리였던 그 사람은 발모팩을 사용한 뒤 보통 사람보다 더 풍성해진 머리칼을 가지고 있었다.

남편은 이 소식을 들은 즉시 발모팩 제조 작업에 들어갔다. 어성초와 녹차잎, 자소엽을 인터넷으로 주문하고 마트에 가서 담금주를 샀다. 재료가 도착하자마자 정밀한 공정 작업을 거쳐 발모팩과 발모차를 만들기 시작했다. 3개월간의 숙성 작업이 필요한 발모팩은 통풍이 잘되는 곳에 놔두고, 발모차는 매일 충분히 마실 수 있도록 커다란 들통에 끓였다. 약한 불로 1시간 정도 끓여야 발모차가 완성되는데 남편은 며칠에 한 번씩 이 작업을 하고 있다. 지극정성이다.

남편은 또 발모차 전도사를 자처하고 나섰다. 티백에 발모차 재료를 넣어 지인들에게 돌린다. 얼마 전에는 “○○○형이랑 ○○○한테 줬더니 정말 좋아해”라며 즐거워했다. 주변에 머리숱으로 고민하는 뮤지션이 꽤 많은 모양이다. 자유로운 생활도 머리숱이 빠지는 현상만은 피해갈 수 없는 것일까. 어쨌든 이들의 머리카락이 어서 쑥쑥 자라길.

S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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