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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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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국물 스파게티, 쌀밥 위 치즈

자기주도적 살림을 훌륭히 해내는 남편,

“요리가 음악을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 지론을 펴는데 고개가 절로 끄덕끄덕
등록 2014-11-22 15:01 수정 2020-05-03 04:27

한번 떠올려보라. 지금 당신의 집 냉장고 속에 어떤 반찬이 들어 있으며, 어떤 요리 재료가 얼마큼 남아 있는지? 아주 정확하게는 아니더라도 대충 감이 잡힌다면 당신은 집안의 살림살이를 나름 잘 챙기고 있다는 뜻이다. 내가 생각하는 자기주도적인 살림이란 그런 거다. 냉장고 속 음식의 상태라든지, 재활용품이나 쓰레기를 언제쯤 집안에서 방출해야 하는지, 빨래가 얼마큼 쌓여 있고 세탁기를 언제 돌려야 하는지를 알고 있느냐다.

뮤지션이 만든 가지구이 반찬. 보기엔 그럴듯하지만 가지는 충분히 익지 않았고 양념은 너무 짰다. s기자

뮤지션이 만든 가지구이 반찬. 보기엔 그럴듯하지만 가지는 충분히 익지 않았고 양념은 너무 짰다. s기자

다행히 나의 뮤지션 남편은 자기주도적인 살림을 아주 훌륭히 해내고 있다. 바쁜 아내 대신 가끔씩 혼자서 장을 봐 냉장고 속을 채워넣고, 온 집안의 쓰레기를 수거하고, 세탁물의 종류를 구별해 빨래를 한다. 내가 남편보다 냉장고 속 사정을 더 모를 때도 있다. 집에 달걀이 몇 개가 남았는지, 김치가 몇 포기쯤 남아 있는지를 두고 의견이 갈릴 때가 있는데 결과적으로는 남편 말이 맞는 경우가 더 많다. 뮤지션의 살림이란, 아침부터 저녁까지 업무 수행에 시달리는 직장인 남편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훗.

여러 집안일 중에서도 남편이 특별히 관심을 갖는 건 요리다. 아직 살림 1년차라 그의 요리는 거의 실험에 가깝지만, 옆에 있다보면 그가 이 실험을 꽤나 즐기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실패하면 실패한 대로 경험을 얻었다며 자신을 위로하고, 성공하면 즐거워하면서 먹는다. 가지를 좋아하는 남편은 최근 몇 달 동안 장을 볼 때마다 가지를 사와서 삶거나 찌거나 굽거나 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요리를 했는데, 막상 성공한 건 몇 차례 되지 않았음에도 여전히 가지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실험이 과도한 경우도 있는데 얼마 전에는 두부 위에 스파게티 소스를 얹고 그 위에 피자치즈를 뿌려 오븐에 굽는 해괴한 음식을 만들었다. 난 한입 먹고 더 이상 못 (안) 먹었다.

요리를 잘한다고 (여기서 ‘잘’이라는 뜻은 ‘well’이 아니라 ‘many’다) 칭찬을 해줬더니 남편은 “원래 뮤지션들이 요리를 잘(well)한다”고 했다. 기억을 떠올려보니 그의 절친인 ㄱ뮤지션 집에 놀러가 요리를 대접받았던 기억이 났다. ㄱ씨는 재료 손질부터 남다르게 시작해 어디에서도 흔히 맛볼 수 없는 자신만의 요리를 만들었는데 그것은 종종 생각날 정도로 꽤 맛있었다. 그래도 모든 뮤지션이 다 요리를 잘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했더니 남편이 이렇게 말했다. “뮤지션은 일단 일반 직장인보다 낮에 시간이 더 많잖아. 음식 재료를 준비하고 요리할 절대적인 시간이 많지. ○○형과 ○○도 요리를 잘해. 그리고 요리라는 건 음악을 만드는 것과 비슷해. 상당히 창의적인 작업이고 취향이 분명하거든.” 순간, 머릿속에 남편이 가끔씩 만드는 실험적이고 기괴한 음악(웬만한 사람은 끝까지 듣기 힘듦)과 그가 만든 두부+스파게티+피자치즈 요리가 겹쳐지면서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취향이 분명한 남편의 요리 실험은 요즘도 계속되고 있다. 된장국에 월계수 잎을 넣기도 하고 멸치·다시마 국물에 파스타를 삶기도 한다. 엊그제는 쌀밥 위에 ‘그라나 파다노’ 치즈를 듬뿍 뿌려놓고 “왜 아무 맛도 안 나지?”라고 되물었다. 과거의 언젠가 내가 그의 음악에 중독된 것처럼, 미래의 언젠가는 그의 실험적 요리에 중독될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S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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