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성향이 다른 남자와 결혼한 내 친구 Y는 2012년 대선 때 남편과 대판 싸웠다. 당시 Y는 친구들에게 “남편이 내가 싫어하는 후보 OOO를 찍겠다고 하는데 도저히 설득이 안 된다”면서 하소연을 해왔다. 거기에다 당시 만삭이던 Y를 돌봐주러 고향에서 올라온 친정어머니마저 투표날 “아기가 아직 나올 기미가 없으니 OOO를 찍으러 가야겠다”며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셨다는 얘기까지 전해지자 친구들이 Y에게 말했다. “네 탓이야. 네가 아기를 더 빨리 낳았어야지.” Y가 아기를 빨리 낳았다면 남편도, 친정어머니도 Y가 싫어하는 후보에게 투표하지 못했을 텐데….
가끔 부부나 애인끼리 정치적 성향이 전혀 다른 커플을 보곤 한다. 그들에게는 정치적 성향과는 별개로 그들만의 ‘케미’가 존재할 것이다. Y는 “남편의 OOO에 대한 굳은 믿음을 확인한 뒤로 서로 정치 이야기는 안 한다. 그 이후로는 평화롭고 행복하다”고 했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솔직히 가슴으로는 완벽하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로서는 정치적 성향이 다른 사람에게는 애초부터 어떤 ‘케미’도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적 성향이 다른 남자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도 문제겠지만, 나로서는 정치적 감수성이 거의 없는, 그러니까 정치나 사회에 전혀 관심이 없는 남자에게도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편이다. 그렇다고 내가 그런 이들을 모두 무시하거나 싫어하는 건 아니다. 애인으로 사귀거나 결혼할 마음이 없다는 것일 뿐 친구나 동료로 지내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다. 어쨌거나 나는 다행히 정치적 성향이 같은 남자와 결혼했고 우리 부부는 대화의 많은 부분을 정치나 사회 이슈에 할애한다.
남편의 정치적 성향이 우리가 애인이 될 수 있는 최소 조건이었다면, 그가 뮤지션으로서 가지고 있는 문화·예술적 감수성은 그와 결혼까지 결심하는 데 꽤나 많은 영향을 미치게 한 또 다른 이유였다. 문화적 감수성에는 어느 정도 여성성이 포함되게 마련인데 오로지 남성적 특징만 가득한 사람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매력이 그 안에 있다. 일단 감수성이 풍부한 남자와 살면 등의 교본은 별로 필요가 없게 된다. TV 채널권을 두고 벌이는 기 싸움이나 같이 볼 영화를 고를 때의 긴장감도 거의 느껴보지 못했다. 남편과 연애 시절 그가 자신의 ‘베스트 영화’로 추천한 작품은 과 이었다. 둘 다 지극히 감성을 자극하는 영화다. 남자들은 자신의 남성성을 강조해야만 여자가 매력을 느낄 것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여자는 남자가 풍부한 감수성이나 세심함을 보여줄 때 그에게 빠져들기도 한다.
물론 이것은 절대적으로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다. 정치적 성향은 달라도 다정하고 성실한 남편과 서로 지극히 사랑하며 사는 Y가 있는 반면, 나처럼 경제적으로 풍요롭지는 못해도 정치적 성향은 물론 감성까지 갖춘 사람을 찾는 부류도 있다. 어떤 이들은 상대방의 재력이나 외모, 학벌에 매력을 느끼기도 하는데 나는 이것도 일종의 취향이라고 본다. 그 취향을 깎아내릴 이유는 없다. 중요한 것은 그 취향이 ‘진짜인가’ 파악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의외로 쉽지 않으며 많은 경험을 필요로 한다. 어쨌든 나는 성공했다. 올레~!
S 기자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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