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션과 결혼한다고 했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 가운데 하나가 “생활 패턴이 서로 다를 텐데 괜찮겠어?”라는 걱정이었다. 그 걱정, 솔직히 나도 좀 했다. 뮤지션의 삶은 일반 직장인들과는 확실히 다르다. 공연이든 녹음이든 일 자체가 저녁에 시작해 새벽 늦게 끝나는 경우가 다반사다. 남편도 전형적으로 밤에 일하는 스타일이었다. 공연이 있는 날은 당연하거니와 공연이 없는 날에도 음악과 관련된 작업을 할 때는 밤이 돼야 집중이 더 잘된다고 했다. 밤새 작업에 몰두하다가 날이 밝으면 그제야 잠을 자는 식이었다. 기자도 다른 직장인들과 생활 패턴이 많이 다르다고는 하지만 뮤지션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연애야 그렇다 쳐도 본격적으로 삶을 공유하는 게 결혼생활이니 걱정이 안 될 수 없었다. 더구나 결혼 초엔 나는 엄격하게 출근 시간이 정해진 부서에 근무하고 있어서 늦어도 아침 6시30분에는 일어나야 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아내의 생활 패턴에 맞추기’ 전략이었다. 남편은 “나도 이제 아침에 일어나고 밤에 자는 ‘바람직한 삶’(!)을 살겠다”며 의욕을 불태웠다. 결혼하자마자 나와 같은 시간에 자고 같은 시간에 일어나는 고난도의 ‘훈련’이 시작됐다. 남편은 밤에 잠이 안 와도 억지로 침대에 누웠고 아침에도 일찍 일어나려고 애썼다. 아침마다 몸에 이불을 돌돌 말고 내가 화장하는 방으로 건너와 별 의미도 없는 말을 조잘대며 잠에서 깨려고 노력하기도 했다(솔직히 그때 좀 귀여웠다). 내가 현관문을 나설 때는 “너의 출근하는 모습을 매일 사진으로 찍겠어”라며 (우리끼리만 재밌고 남들은 짜증내는) 신혼놀이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스무 살 때부터 살아오던 방식을 하루아침에 바꾸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거다. 남편의 일이 갑자기 많아진 것도 이유였다. 우리는 점점 같은 집에 살면서 얼굴도 제대로 못 보는 사이가 돼갔다. 내가 잠들 때까지 남편은 작업실에서 오지 않았고 아침에 일어나면 남편은 곤히 자고 있었다. 서로의 자는 모습만 확인하는 생활이 한동안 계속됐다. 남들이 “신혼 재미가 어때?”라고 물어보면 별로 할 말이 없었다. 얼굴이라도 봐야 재밌든지 말든지 할 것 아닌가.
그러다 내가 부서를 옮기면서 우리의 생활 패턴은 또다시 달라졌다. 출퇴근 시간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지니 나도 점점 늦게까지 일하는 게 익숙해졌다. 남편이 집에 올 때까지 거의 잠들지 않았고 그러다보니 남편도 이전보다는 일찍 들어오려고 노력했다. 잠들기 전에 적어도 1시간쯤은 얼굴을 보며 대화할 수 있는 생활이 시작됐다. 해가 긴 계절에는 아침 일찍 일어나 한강으로 운동하러 가기도 하고 함께 아침을 먹는 일도 잦아졌다. 양극단의 생활을 오가다 드디어 ‘제3의 길’을 찾은 것이다!
이 ‘제3의 길’을 찾기까지 우리는 다행히 한 번도 싸우지 않았다. 생활 패턴이 다른 것은 누구 잘못도 아니기 때문이다. 서로의 일과 작업 스타일을 최대한 존중해줘야 한다는 것이 연애 시절부터 우리가 공유해온 생각이었다. 이런 점이 잘 통해 결혼까지 하게 됐을 거다. 어쨌든 우리는 앞으로도 ‘저녁이 있는 삶’을 제대로 누리기는 힘들 것 같다. 아직까지 남편은 일찍(이라고 해봐야 밤 12시) 들어와놓고도 새벽 3~4시까지 잠을 못 이루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뭐 어떤가. 우리 두 사람이 서로 이해하면서 잘 살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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