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사 진진 제공
철난 이래 삶은 언제나 힘들다. 하도 일관되게 힘들어서, 단조롭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널널하고 편해서가 아니라 언제나 힘들다는 점에서는 동일하기 때문에 느껴지는 단조로움. 힘듦이 일상화됐기 때문에 감각이 닳아 느껴지는 삶의 권태. 이 권태 속에서 사람의 가슴을 진정 뛰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과연 있기는 할까. 보들레르가 세기말에 노래한, 모든 것을 가진 나라의 젊은 왕이 그럼에도 느끼는 권태(‘스플린’), 셜록으로 하여금 분노에 차 자기 방 벽에다 총을 난사하게 하는 권태( 시즌1 에피소드 3 ), 카페 매니저로 열심히 사는 싱글 여성 수짱이 느끼는 일상의 권태(만화 ), 도민준이 사소하다고 비웃었던 평범한 나날의 권태(드라마 ) 등 우리가 사는 세상은 버거운 삶이 역설적으로 초래하는 권태와 그 표현들로 가득하다.
일관되고 단조롭게 힘든 삶 속에 우리는 언제 다시 한번 삶의 스파크를 발견하는가. 혹시 인생은 어른이 된 뒤 줄곧, 힘든 본전치기의 연속일 뿐인가. 이런 고민은 뜻밖에도, 올여름엔 에어컨을 기어이 사야 할까, 혹은 에어컨을 올여름엔 언제부터 켜야 할까를 고민하는 우리 동네 장삼이사들만 하는 게 아니었다. 이탈리아 최상류층, 화려함의 핵 안에서도 똑같은 고민은 진행되고 있었다.
젭은 약관의 나이에 내놓은 첫 소설의 유례없는 성공 덕에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명성으로 사는, 이탈리아 로마 상류사회의 핵심 인물이다. 시각적 환희가 뭔가를 제대로 보여주는 화려한 파티와 아름다운 선남선녀들, 그리고 여기가 바로 현대의 소돔과 고모라구나 싶은 질탕한 관능의 연회장을 지배하는 그랜드 마스터다. 그의 주변은 새로움과 위대함을 모토로 삼는, 그러나 실은 대단히 속물적인 인간들로 가득하다. 나체로 돌벽을 향해 전력질주해 몸에 피를 내는 것으로 새로운 예술 장르를 만들어보려는 전위예술가, 작은 지식을 틈나는 대로 떠벌이지 못해 안달인 추기경, 집에 정원사·요리사·운전사를 따로 둔 좌파 활동가. 젭은 이들 속에서 멀미를 느끼듯 무료한 나날을 보내다가 스무 살 때 자신의 삶을 그대로 멎게 했던 한 가지 기억을 떠올리고는, 바로 여기서 이 순간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얻는 정문일침의 계기를 맞는다. 그에게 이 순간은 인간보다 위대한 도시 로마에서 찾아오지만, 그것이 꼭 로마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권태를 벗어나는 불꽃을 수없이 목격해온 그 어떤 도시인들 젭의 로마와 다를 것인가. 시원적 아름다움에 대한 갈구, 어쩌면 전생에서부터 가져왔을지도 모르는 그 기억과 그리움은 실은 우리가 사는 모든 곳에 스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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