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다니면서 정기적으로 칼럼을 쓴다는 게 간단한 일은 아니어서, 영화를 여러 편 보고 그중 하나를 골라 쓰는 호사를 부리기 어렵다. 일단 봤으면 맘에 들었건 안 들었건 그냥 써야 한다. 그런데 간신히 짬을 내서 본 영화인데도 제쳐놓고, 굳이 다른 영화를 또 봐야 했던 경우가 딱 한 번 있었다. 이 그것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의 엄마라는 테마가 다루기 정말 조심스러웠던 것이다.
끝임을 알고 하는 행동은 의외로 대단히 드물다. 그 멤버 그대로 다 같이 본 건 그게 영영 끝이 돼버렸던 거구나 하고 깨닫는 일도 많고, 무슨 말씀인지 잘 안 들려 전화를 건성으로 받았는데 결국 그게 마지막이었던 적도 있다. 그런데 이 허망히 놓친 마지막 순간이 자식과의 사이에 일어났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 엄마의 경우가 그렇다. 휴대전화를 새로 사달라는 걸 툭 자른 것이 아이와의 마지막 대화가 돼버렸다는 걸 안 순간 그 엄마의 회한은 어떤 것이었을까. 더구나 그것이 자신을 괴롭히던 친구에게 잘 보이려고 원한 것이었다면? 아이를 잃은 비통함에다가, 아이가 이렇게 괴로움을 당하고 있었는데 엄마인 나는 도움이 되어주기는커녕 알지도 못했다는 자책, 아픔에 시달리던 내 아이가 엄마에게 말 한마디도 할 엄두를 못 냈고 그 어떤 도움도 기대하지 못했다는 자각은 엄마 자신의 무능함에 통곡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엄마가 전혀 도움이 되어줄 수 없는 상황에서 나의 아기 혼자 겪는 고통이라는 테마가 너무 끔찍해서 이걸 글로 옮길 엄두가 나지 않았다. 창자가 다 끊어지는 고통을 겪고도 큰아이를 위해 그리고 생명이라는 절대성을 위해 여전히 시식 코너에서 씩씩하게 일하는 엄마의 모습에 맘 아픈 축복을 보내는 것으로 그 영화에 대한 내 소회는 묻어두게 되었다.
그런데 그것과 아주 비슷한 감정을 얼마 뒤 다시 느꼈다. 빤히 저기 있는데, 바로 진짜 저기에 있는데 내가 아무런 도움이 못 되어주는 상황, 평범하게 건넸던 “재밌게 다녀와라” 인사가, 전날 챙겨준 용돈이, 수학여행 날도 멋내다 늦겠다는 핀잔이, 그것으로 영영 마지막이 됐다는 자각, 끝인 줄도 모르고 그리도 허망하게 보냈다는 자책, 그리고 아이가 바로 저기 있는데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그 기가 막힘을, 하물며 과거형도 아닌 실제 상황으로 몇 날 며칠을 살아낼 수밖에 없던 분들이 결국 맞은 자식의 죽음은, 지켜본 사람들에게도 그럴진대, 산 채로 핏줄 속의 물기를 다 뽑아 말려버리는 고통이었을 것이다. 원래는 나와 한 몸이었던 아이, 힘들 때 계속 살게 해주었던, 삶의 깊은 곳 기쁨과 비밀을 알게 해주었던, 나의 하늘 같고 종교 같고 몸 밖으로 튀어나간 내 심장 같은 아기가 죽음을 앞두고 무서워하는데 아무것도 해줄 수 없던 그 나날에 대해 우리가 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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