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결국 무엇으로 남을까? 이라는 소설도 있지만, 한 사람의 일생은 결국 응축된 그러나 찰나적으로 포착된 몇 개의 장면으로 남는다. 친구 집 앞 골목길에서 연탄재를 발로 차다 들은 피아노 소리, 엄마가 사오신 꽁치 토막을 싼 신문지에 물든 핏자국, 담벼락에 기대 놀다 바라본 나뭇가지 사이로 반짝이던 햇살.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는 인생 속에 강렬한 스냅샷으로 남은 바로 그 랜덤한 순간들에 관한 영화다.
매일매일의 고된 노동과 아슬아슬한 줄타기로 이어지는 나날, 공부와 놀이, 우정과 사랑, 육아와 일, 의리와 기회 사이에서 허덕허덕 공을 저글링하며 아무것도 떨어뜨리지 않으려 온 힘을 쏟는 사이, 미래에 대한 꿈이 있다고 막연히 믿으며 모든 것을 미뤄두는 사이, 젊음은 순식간에 사그라진다. 관객들 입에서 헉 소리가 나올 정도로 순식간에 외모가 달라진 소년의 엄마가 외친다. 난 인생에 뭔가 더 있을 줄 알았어, 그런데 이게 끝이야? 이렇게 정말 끝나는 거야? 그런 깨달음이 기가 막혀 순식간에 눈물을 쏟는 이 아주머니와 함께 관객도 자각의 순간을 맞는다. 인생이 바로 이거였구나, 더는 없는 거지. 스무 살 때보다 결국 더 아름다워지지 못한 건가. 소년의 엄마에게 인생이란, 집 몇 군데의 기억으로 남을 것이고 아이들 졸업식 몇 번의 스냅샷으로 남을지도 모른다. 온 노동과 고민과 사랑과 모험을 걸고 열심히 뛰었지만 결국엔 집을 마련하려 애쓰고 이사 다니고 멋진 집을 계약하고 하우스푸어로 허덕이다 손바닥만 한 아파트로 다시 이사하는 게 인생이었다.
엄마의 아픈 외침과 회한은, 주인공이 맞는 빛나는 스무 살과 대비된다. 태곳적 비경을 간직한 미국 텍사스 빅벤드에서의 반짝이는 그 젊음, 우리가 순간을 잡은 게 아니라 순간이 우리를 잡은 것이라는 그 낭만, 자신감, 희망, 모험심, 미스터리, 꿈… 더 크고 당연히 더 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당당한 기대. 는 감독이 동일한 배우들을 데리고 12년간 조금씩 촬영해서 만든 기념비적 시도다. 영화에 가득 담아넣은 시간 속에서, 성장이란 무엇이고 인생이란 무엇인가 하는 새삼스러운 질문을 가슴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영화다. 링클레이터 감독의 작품들이 대개 그러하듯 역시 젊음을 찬미한다. 빛남은 여기까지다, 라고 단호히 선언한다. 스무 살의 그들과 중년의 그들은 도저히 같은 종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러나 절대 잊을 수 없는 빅벤드의 그 반짝임, 그때의 희망과 착각이 바로 인생 나머지를 사는 동력이 되는 것은 아닌지. 지극히 아름답고도 지극히 차가운, 그야말로 인생 자체에 관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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