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 성탄 전야, 한 무리의 청년들이 서울 시내 한복판에 모여들었다. 첩첩 촌에서 대학 입학과 함께 처음으로 도 경계를 넘어본 이들. 가난한 집안의 촉망받는 장남들답게 물들인 야전잠바 하나로 온 겨울을 나면서 공부에만 몰두하던 이들에게도 크리스마스는 찾아왔고 며칠 훨씬 전부터 정체 모를 즐거움에 들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의기투합해 종로로 명동으로 진출해서는, 지금 돈으로 1만∼2만원도 채 안 될 얇은 주머니로 음악감상실을 찾아 차 한잔으로 몇 시간씩 버티며 시종일관 큰소리로 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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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야, 지금 종로 쪽은 워떻더냐?” “하이고, 말도 마라. 사람이 참말로 겁나게 많다.” “그냐? 느그덜은 시방 어디서 오는 길이냐?” “아, 우린 쩌그 명동 대호다방에서 오는 길인디?”
사실 아무런 내용도 없는 대화를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기밀을 주고받는 양 진지하게 교환하고 우르르 몰려나가 또다시 떠들고 웃으며 거리를 쏘다녔다. 무슨 약속이라도 있는 듯 시간을 서로 자꾸 물으며 바삐 걸었지만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러다 길 저쪽에서 오는 한 무리를 만나면 또, “야야, 어디서 오는 길이냐?” “우린 지금 서소문에서 오는데 거기도 참 사람 많다” “그냐? 사람이 그렇게 많더냐?” 하고 다시 한번 중요한 기밀을 교환하고.
남들이 모두 들뜨는 연말연시, 가난한 집안을 일으킬 책임감으로 오로지 공부에 매달리느라 여학생 단발머리 아래 솜털이 어떻게 생겼는지 제대로 쳐다본 적도 없던 이 시골 청년들은 평소의 수줍음과 열없음을 세와 분위기로 극복하고는 세련된 서울 청년들만의 영토 같았던 시내를 접수하고 돌아다니며 해방감과 야릇한 기대감을 만끽했다. 결국 자취방에 돌아오면 남은 것은 그나마 더 얄팍해진 주머니와 꽁꽁 동태가 된 몸뿐이지만 평생 잊을 수 없을 들뜨고 즐거운 성탄이었다. 그러나 이 어설픈 축제도 그것으로 마지막이 됐다. 1959년 겨울, 가슴 뿌듯했던 크리스마스를 보낸 이 청년들은 다음해에 4·19를, 그 다음해에 5·16을 맞았고 가혹한 유신체제와 군사독재하에 산업 역군으로 1970∼80년대를 보내다가 1990년대에 밖으로 밀려나 이제는 다시 어려워진 경제의 백세시대 노인이라는 눈총까지 받고 있다.
‘아버지께 드리는 송가’라는 영어 제목을 단 ,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의 파티 장면에서 나는 눈물이 쏟아졌다. 가난한 장남·장녀들로 어깨 가득히 책임감을 진 채 힘겨운 노동에 시달리던 이들이 이 순간만큼은 스물 몇 살 젊음 그 자체를 즐기고 있었다. 그 어떤 신산스러운 삶에도 존재했던 그 반짝이는 순간들. 역사의 가장 힘든 틈바구니에서 태어나 오로지 거름으로만 살았지만 그런 그들에게조차 존재했던 푸르른 순간을 향해 축배를 들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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